1
거위 부리처럼 길쭉이 튀어나온 발판 위에 두 남자가 엉거주춤히 서 있다. 푸른 작업복을 입어서 멀리서 보면 파리들 같다.
“여긴 너무 높아…… 아래를 못 내려다보겠어.”
“내려다봐 봐야 별거 없어.”
“어지러워……”
“겨우 3층 높이야.”
“3층?”
“떨어져도 죽지 않는 높이지.”
“하지만 여기 우리 말고 아무도 없잖아.”
발판 밑으로 남자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하나같이 푸른 작업복 차림에 노란 안전모를 쓰고 있어서 한 남자가 똑같은 생生을 반복하는 듯하다.
“내가 이렇게 높은 데 올라와 있다니……”
“그만 좀 해. 네가 자꾸 그러니까 발판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잖아.”
“너무 높아서 숨도 잘 안 쉬어져……”
“그건 들끓는 쇳가루하고 페인트 냄새 때문이야.”
“아주 높은 데서는 모든 걸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던데……”
“누가 그래?”
“세상에서 가장 높고 추운 얼음 산에 올라갔다 내려온 사람이 그랬어. 모든 게 저절로 이해되더래. 탄생도, 죽음도…… 삶도…… 그래서 높은 데서는 종교나 어려운 철학책 같은 게 필요 없다고 했어. 그리고 여러 가지 빛깔을 띠게 된다던데……”
“빛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흰색, 갈색, 연두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검은색…… 한꺼번에 띠는 게 아니라 햇빛을 받은 피라미처럼 시시각각 빛깔이 변하게 된다고……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희미해져서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안 들리게 된다던걸.”
발판에서 1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손에 망치를 든 남자들이 성문처럼 서 있는 철덩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들도 푸른 작업복을 헐거워진 허물처럼 걸쳤다. 부단히 발을 앞으로 내딛는데도 등허리가 굽은 데다 걸음이 무겁고 느려서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당신 손의 살과 피와 뼈로 내 손을 채워주시고.”
“사다리!”
“미끄러지지 않게……”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뛰지 마!”
“빨간 페인트 두 통 더!”
“제 날짜에는 배가 바다로 나가야 하니까.”
발판 밑으로 푸른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이 계속 줄지어 지나간다.
그라인더 날들이 회전하며 철판을 절단하는 소리, 철파이프 구르는 소리, 전동 드릴 헛도는 소리, 아르곤 가스통 굴리는 소리……
머리에 나리꽃색 스카프를 두른 여자와 연두색 스카프를 두른 여자가 양손에 페인트통과 붓을 나눠 들고 철계단을 내려온다. 여자들도 푸른 작업복 차림이다. 꽃밭을 구르다 온 여자애들처럼 작업복에 알록달록 페인트 얼룩이 묻었다.
“작년 이맘때였어. 복주 언니는 일자 사다리를 타고 탱크로 내려갔어. 한 손에 페인트통을 들고 목에 랜턴을 걸고.”
“붓은?”
“웃옷 주머니에 꽂고. 내려간 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탱크 속에서 복주 언니 목소리가 들려왔어.”
2
“반장, 창문 좀 넣어줘!”
“반장, 전구 좀 넣어줘!”
“반장, 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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