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간
― 미래교육은 마을에서
공릉동을
찾는 사람들
공터는 지방자치단체인 노원구가 설립한 구립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공터는 청소년문화의집이자 도서관이다. 이름은 ‘공터’이지만 비어 있지 않고 늘 꽉 차 있다.
공터는 서울 변두리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데 공릉동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있지만 인정 넘치고, 교통이 편리하며, 경춘선숲길, 불암산 등 자연 녹지가 풍부한 아름다움 마을이다. 이처럼 살기 좋은 공릉동에도 한때 위기는 있었다. 학교 옆에 납골당이 들어선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행동이 장기간 이어졌고, 2008년경에는 이웃간에 심한 대립과 물리적 충돌을 겪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자녀를 키우기에 더 좋은 지역을 찾아서 이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마을 우물터의 구실을 하는 공터가 건립·운영되고, 2012년부터 공릉동 꿈마을공동체라는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이 시작되면서 마을의 교육력문화, 사회적 자본이 되살아나고 있다.
공터는 공릉동에서 청소년 그리고 주민과 만나며 마을교육공동체를 일구어 가고 있다. 변두리라고 해도 서울에서 마을, 공동체라는 단어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공릉동은 인구 8만명에 이르는 대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터의 생각에 동의하는 주민과 청소년들은 공릉동에서 10년 간 마을공동체, 교육공동체를 그리며 활동해 오고 있다. 초기 활동은 정말 작고 미미했지만 지금은 마을의 공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최근 전국적으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지역에서 공터와 마을로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학교 현장의 선생님과 마을 활동을 궁리하는 분이 공릉동으로 많이 견학을 오고 있다.
공터의 활동 사례는 대부분이 마을과 연결되어 있어서 공터 공간만 보고 가는 많은 분들이 ‘마을 활동을 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말했다. 그래서 공터가 속한 꿈마을공동체는 2014년부터 마을 주민들과 함께 꿈마을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마을해설사 양성과정을 통해 마을에 애정을 지닌 여러 해설사들이 배출되었고, 해설사들은 마을의 산과 개천, 문화유산과 옛이야기, 새로운 공간과 사람, 공동체 이야기들을 찾아 기록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 주민들이 함께 마을여행지도와 여행 상품을 개발하여 마을협동조합을 통해 판매하고도 이다. 마을여행은 마을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에게 우리가 사는 마을을 잘 알려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행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꾸며 공릉동으로 마을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을 맞이했다. 방방곡곡에서 서울 변두리 공릉동까지 찾아와 우리를 만났지만 이런 상상과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비주류다. 공동체 활동이 비교적 잘된다고 하는 공릉동에서도 변화를 위해 한발 내딛는 사람은 여전히 손에 꼽는 수준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마을의 변화를 위해 꿈틀대는 활력 넘치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꽤 반갑고, 흥분되고, 재미난 일임은 분명하다.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는 곳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개인의 개성이라는 모난 돌을 학교에서, 교과과정이라는 공정을 거쳐 가며 두드리고, 다듬는 과정이었다.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우리 사회를 아주 빠르게 성장시켰다. 사회에 잘 적응한 인간에게는 경제적 유익함이 주어졌다. 그런데 오늘날은 전환의 시대다. 시간의 흐름과 기슬의 발전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자율적이고, 개성이 넘치며, 쉽게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왔다. 세상 변화에 맞춰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미래교육에 대한 논의와 적용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개별화, 전문화, 표준화에만 익숙한 학교 교육적 해법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알파고 쇼크로 교육과 기술의 만남은 중요시되어 미래교육의 내용으로 인공지능AI, 코딩교육 등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명으로 인간이 해왔던 많은 것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면, 인류에게 필요한 교육은 더 이상 ‘지식 암기’ 중심의 단선적 경쟁교육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은 ‘인간성을 회복해 가는 일’이어야 한다. 많은 인력 대신 로봇으로 생산이 가능한 시대에 자신을 잉여로 지칭하며,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가치와 쓸모를 발견하고,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 일은 인류에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OECD 교육국에서 제시한 미래역량 정의에서도 그 방향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1958년 풀무학교를 열면서 밝맑 이찬갑 선생님『풀무학교를 열며』, 그물코, 2010께서는 교육은 ‘참 마음, 새 마음을 지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 될 것’이라 하셨다. 짧은 글을 붙잡고, 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공터의 활동 역시 “참 마음, 새 마음을 지어가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공터가 있었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이 공터를 그냥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없고, 경제성이 없는 공터는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중적 상식이다. 그런데 공터는 무용하기만 할까?
공터는 빈 땅이지만 그냥 비어 있지 않다. 공터는 생명이 깃든 땅이다. 지렁이도 살고, 수많은 식물과 미생물이 꿈틀대며 살고 있다. 공터는 놀이터가 되고, 배움터가 된다. 두꺼비 집도 짓고, 숨바꼭질도 한다. 만남의 광장이고, 친구와 함께 놀이를 하며 살고, 죽고를 반복하는 재탄생, 재구성의 공간이다. 마을 공터에서 우리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놀면서 개성을 찾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키워냈다. 인간의 마음을 키우는 미래교육은 공터에 이미 와 있었다.
마을에서
시작하는 상상
사람은 만남과 사귐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 이것은 공동체가 지닌 속성으로 모든 공동체에는 만남과 사귐을 통한 교육적 기능이 있다. 오늘날에는 1인 가구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가족 공동체는 한 개인이 사회화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가족공동체를 교육공동체로 말하지 않는다. 아파트공동체, 직장공동체, 교회공동체, 마을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교육공동체를 구별할 때는 한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 실천의 모습 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공동체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공동체와는 달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일궈 가야 하기 때문에 인위적이다. 인위적 공동체라는 말이 불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희망적이다. 태어난 곳, 사는 곳, 소속된 곳이 어디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마을은 가족보다는 크지만,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대한 도시나 국가보다는 작다. 또 마을은 점수로 평가받는 교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공간이며, 어린이·청소년의 삶과 매우 가깝다. 마을은 사람들이 함께 구체적인 상상을 펼치고, 힘을 모아서 작은 변화를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는 생활 범위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자체, 교육청, 학교 그리고 마을주민회, 학부모모임, 도서관, 청소년센터 등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주체와 여러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이끌어가기도 한다. 교육청과 학교가 나서서 지자체와 지역사회를 설득해 마을교육공동체를 확산해가는 지역도 있다. 공터와 같은 도서관, 청소년센터, 복지관 등 작은 공공시설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학부모회, 육아모임, 주민들의 작은 모임들에서 움트기도 한다.
이렇게 전국이 마을교육공동체 논의로 들썩이는 이유는 뭘까? 마을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끈끈한 전통적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끈끈함은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고, 적대시하며, 추위에 떨게 내버려 둔다. 종교, 고향, 사는 지역, 거주하는 아파트 브랜드, 자격증, 다니는 직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나이와 성별, 각종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높은 울타리를 친 ‘닫힌 마을’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뭉쳐야 산다’, ‘우리 편 이겨라’고 외치며 ‘내 편 네 편’ 가르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결정을 주도한다. 권력을 쥔 소수가 사회의 많은 것을 가져가는 시스템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스카이캐슬 같은 울타리 높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에 기대를 걸며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위권 대학, 상류사회 진입이라는 절대적 목표로 학생들에게 중심만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이런 교육적 목표는 모두를 쉽게 통제할 수 있게 해주지만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은 패배자라는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상류 사회에 진입했을 때 그들은 어디에 헌신할까? 자신이 자라온 공동체일까, 소속되길 바랐던 공동체일까?
이런 점에서 볼 때 마을교육공동체는 ‘우리끼리 잘 살아 보자’는 폐쇄적 공동체 논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마을을 디자인해가야 한다. 따뜻하면서도, 느슨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공동체로서 마을을 상상해 보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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