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글
삶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라는 것
이경근 | 책읽는사회문화재단/북스타트코리아 이사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렇게 오래 고민해 보기는 처음이다. 지난 5년 동안 저자들에게 받은 감동과 배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입시경쟁을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던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서고 싶어서, 그럼으로써 자신의 행복과 교사로서의 만족감을 찾기 위해 ‘비경쟁 독서토론’이라는 형식으로 모였다. 모임의 목적이 간절했기 때문에 모든 내용과 형식은 자발적이면서도 주체적이었고 의미 없는 권위와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조율 같았고, 그 결과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합창 같았다. 이 소중한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저자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고 보여 주고 싶었던 건 바로, 삶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라는 것을.
책을 통한 세상질문
옹달샘
/ 박고은 | 성화초등학교, 전 명지초등학교
옹달샘, 만남
2015년 나무들이 잎을 떨구던 날, 초롱이네 도서관에 충북 독서 부흥을 꿈꾸는 비밀결사대 넷이 모였다. 독서 부흥을 일으키기에는 아무래도 수가 적다. 이들은 더 큰 조직을 꿈꾸며 독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암암리 연락했다. 그해 겨울 충북에서 독서 활동을 꾸준히 해 온 각 지역 도서관장님, 초등 교사, 중등 교사 그리고 책사회책읽는사회문화재단 분들 총 22명이 초롱이네 도서관에 모였다. 청주시 용암동에 있는 초롱이네 도서관은 1999년에 개관한 작은 도서관으로 그 마을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이곳에 온 교사들에게 던져진 미끼는 분명 “독서”였을 것이고 그것을 물어버린 교사들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책사회 실장님은 충북에 이렇게 많은 수의 선생님들이 독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란 듯했다. 책사회에서는 선생님들의 은밀하지만 위대한 독서 활동을 수면 위로 드러낼 방법을 고민했다. 곧 해가 바뀌면 책날개 직무연수가 있다. 책날개 연수 후 선생님들이 원하는 활동이 무엇인지를 논의해 보기로 하고 다음 만남에 다시 참석해 주시길 곡진히 부탁했다.
2016년 1월 책날개 직무연수가 끝날 때쯤, 지난 번 약속대로 “책 읽는 소모임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 잠깐 남아주세요.”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남아 주신 분은 11명. 지난번 모임보다 선생님들이 반이나 빠졌다. 적은 인원이지만 자리를 옮겨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정체성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미 독서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니 그분들을 지원하는 성격으로 활동을 해 보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2월 모임 때 독서 활동을 하실 선생님들을 좀 더 모셔오자고 하고 헤어졌다.
2월,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경근 실장님과 임광운 간사님, 지역 도서관 관장님들, 독서에 관심이 있던 몇 명의 교사들이 초롱이네 도서관에서 다시 모였다. 김밥과 컵라면을 준비해 온 책사회, 제천에서 온 백영숙 하소아동복지관장님, 초롱이네 도서관 오혜자 관장님과 낯선 선생님들이 동그랗게 마주 앉아보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따뜻하게 배를 채우고 새로운 선생님들도 왔으니 자기소개를 한다.
(중략)
우리가 선생님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첫 모임 이후 몇 차례 그분들과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간담회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있는 지역 활동가와 교사를 ‘옹달샘 선생님’으로 명명했다. 옹달샘 선생님들은 학교 현장에 뿔뿔이 흩어져 열심히 독서 교육을 하는 고수님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그분들을 ‘마중물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마중물 선생님들이 3월에 배워 바로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독서 교육 및 매력적인 독서 동아리 운영법 등을 내용으로 했다. 책사회, 지역 도서관 관장님들, 옹달샘 선생님들은 충북 독서 문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재능을 아낌없이 내주셨다.
마중물, 설렘
2016년 3월 첫 주 토요일, 일 년 중 교사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에 100여 명의 선생님들이 청주 기적의 도서관에 모였다. 자율연수에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오시다니!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3월 워크숍을 첫사랑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두통 때문이다. 기적의 도서관 지하 1층 강당은 100여 명의 마중물 선생님들로 비좁아졌고, 강사님과 연수생이 만들어낸 열정이 금세 좁은 공간의 산소를 모두 태워 버렸으니 두통이 오는 건 당연했다. 책사회에서는 과자와 음료, 김밥, 라면 등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백영숙 관장님은 즐거운 놀이로 모인 선생님들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책사회 이경근 실장님이 강사가 되어 “왜 함께 읽기인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던져 주셨고, 교사들은 처음으로 비경쟁 독서토론이라는 형식을 갖고 독서 후 활동을 경험했다. 마지막 시간에는 오혜자 관장님으로부터 독서 동아리 운영 방법을 배웠다.
독서 동아리 운영 방법은 다음과 같다.
Tip: 독서 동아리 운영 방법 책 모임 시작 (운영규칙)
① 모임 이름 정하기
② 모임 시간과 횟수 결정하기
③ 신규 회원 참여 방식 및 새 운영진 선출방식 정하기
④ 회원 역할 나누기
- 회원에게 연락하는 사람
- 모임장
- 발제 또는 당번간식
- 온라인에 자료 누적할 회원
- 간간히 독서 기행 추진 회원
- 강사 초청 진행 및 공간 확보하는 회원
- 뒷정리 회원
- 홍보 담당자
*마중물 워크숍 때 배웠던 독서동아리 운영 방법으로 4년째 세상질문이 운영되고 있으니 검증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해 시작된 마중물 워크숍은 교사 역량 강화를 주안점으로 두고 7월과 11월 두 차례 더 열렸다. 옹달샘 선생님들은 마중물 교사 워크숍에는 감성을 나누는 활동을 꼭 넣어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그 힘으로 학교에서도 실천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중물 워크숍은 교육청에서 예산 지원을 받았고 지역 도서관과 연계하여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교사를 만나며 확장된 독서 활동을 마련해갔다. 마중물 워크숍을 위한 옹달샘 간담회는 워크숍 전 적어도 3회 이상 가졌다. 자발적인 모임은 즐겁기에 쉽게 지치지 않았다.
두 번째 워크숍의 주제는 ‘서로를 보다’였다. 『갈색아침』과 『서로를 보다』라는 그림책을 읽고 비경쟁 독서토론을 경험했다. 책사회에서 기획과 섭외를 맡아 다른 지역에서 독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신 선생님을 강사로 섭외해 충북과 다른 지역을 연결시켜줬다. 장소는 넓고 쾌적한 교육청 화합관을 빌렸다. 제천, 충주, 영동, 음성 등 각 지역에서 마중물 선생님들이 모였다. 1차 워크숍 이후 모둠별로 자신이 경험한 독서 동아리학생, 교사, 학부모 사례를 이야기하고 전체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답게 재미있는 정크 북아트도 경험했다. 이렇게 즐거운데 3차 워크숍을 미룰 수 없었다.
세 번째 워크숍은 『소설처럼』으로 비경쟁 독서토론을 하면서 어떠한 목적이 없이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해 인문학 대회, 상주 낭송의 밤을 견학하고 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충북에서 청소년에게 책 읽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비블리오 배틀 방법으로 읽을 책도 정해보고, 장서인도 만들어 봤다.
세 번의 워크숍을 거치면서 분기별로 진행하는 워크숍보다는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서 모임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마중물 선생님들의 자발적 책모임인 ‘세상에 질문을 던지다!’―청주지역 교사 책모임 ‘세상질문’이 만들어졌다.
세상질문, 성장
마중물 샘 워크숍, 세상질문이 운영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교사들의 독서에 대한 열정과 책사회와 지역 도서관장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과 제천에서 큰 전지와 사인펜, 간식과 물을 트렁크에 싣고 달려오는 책사회 실장님과 간사님과 관장님들은 우리 동아리의 원더우먼과 슈퍼맨이었다.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물질적 정신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함께 참여하는 구성원들에게 염치를 알게 하고 책임감을 갖게 한다. 어쩜 원더우먼과 슈퍼맨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2017년 2월 출범된 세상질문은 월 1회 순탄하게 모임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폭풍우 치던 어느 4월 간식과 전지, 사인펜을 싣고 오던 슈퍼맨과 원더우먼이 엄청난 교통정체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60여 명의 선생님들이 오후 6시 30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에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옹달샘 사회자까지 늦어지는 바람에 운영진들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전지가 없어 총무과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A4용지를 빌려 빠르게 토론 준비를 하면서 책사회와 도서관장님들에게 기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폭풍우 치던 그 날이 세상질문 독서 동아리 살림을 오롯이 꾸리고 충북 선생님들이 자립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첫해는 충북교육과학연구원, 2018년에는 진로교육원에 있는 빈 공간을 대여하고 월 1회 꾸준히 교사 독서 모임을 이어 갔다. 충북중앙도서관이 학생과 교사가 교육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충북교육도서관으로 새롭게 단장2019년하면서 여기저기 떠돌며 토론했던 세상질문 교사 독서모임은 이곳에 안착했다.
마중물 첫 회 워크숍 때 강사님이 이야기했던 방식을 착실하게 실행했다. 1년에 한 번은 꼭 강사를 초대했고, 선생님들의 에너지가 소진될 때쯤 가벼운 나들이를 갔으며, 겨울엔 초롱이네 도서관에 모여 한 해를 잘 꾸려간 우리를 서로 격려했다.
세상질문은 운영진옹달샘과 회원들로 구성된다. 회원들은 유치원, 초등, 중등, 특수 교사, 보건 교사, 사서 교사다. 초기에는 학부모님들도 회원이셨는데 교사의 비중이 높아 부담스러웠는지 다음 해에는 오지 않았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6시 30분 특별한 일이 있지 않다면 모여 질문을 만들고 토론을 했다. 자세한 세상질문 운영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목적지가 다른 기차 여행을 함께 떠나는 기분이 든다. 기차에 올라 마주 앉은 사람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환승역에서 다음 기차에 오른다. 짧은 환승시간에 플랫폼에 혼자 남지 않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잘 보고 타야 한다. 올라탄 기차에서 처음과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3번 환승하고 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한 달에 한 번 세상질문 모임을 하기 전에 선정도서를 다 읽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선생님들을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렌다. 비경쟁 독서토론 중 질문을 찾아 자리를 이동할 때면 환승 플랫폼에서 다음 기차에 잘 올라타야 할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다. 토론이 끝난 뒤 성찰을 할 때면 같은 책을 읽었지만 갖고 가는 것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월 1회 주제 도서로 만나 삶을 확장해 가는 책 모임도 약간의 변주가 있으면 더욱 오래 지속이 된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여행하는 인간호모 비아토르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가을 독서 여행으로 학교 생활로 지쳐가는 교사들에게 충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물론 이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서 옹달샘 선생님들은 주말에도 회의를 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장소가 정해지면 바로 장소 섭외를 했다. 여행자는 대부분 지역 도서관과 작은 책방이었다. 지역과 교사를 연결하고 그곳을 경험한 교사는 학생들과 다시 방문하여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낭성에 있는 쌍샘 봄눈 생태도서관이었다. 백영기 목사님의 생태적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정갈한 음식도 먹었다. 선생님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넘겨보기도 하고 차 한잔을 하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충전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여행지는 괴산 숲속작은책방이다. 이곳에서는 보물 찾기를 했다. 괴산 미루 마을에서 찾은 가을을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리고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선생님에게 작은 선물을 드렸다. 북 큐레이션을 하시는 백창화 선생님의 이야기도 듣고 아름다운 그림책도 감상했다. 마침 책방을 방문한 『앨비스 의상실』의 저자 최향랑 님을 만나 사인도 받고 책 이야기도 들었다. 가을볕이 너무 따사로워 근처 산막이 옛길을 걸으며 2018년 가을을 마음 깊이 담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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