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어어, 우우, 하는 분절되지 않은 음성으로만 소통하던 이간이 처음 몇 개의 단어들을 만들어낸 뒤, 언어는 서서히 체계를 갖추어나갑니다. 체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언어는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규칙들을 갖습니다. 고어를 배우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그는 백묵으로 흑판에 포물선을 그린다. 왼쪽 오르막의 경사는 가파르고, 오른쪽의 내리막길은 완만하고 깊다. 포물선의 정점을 검지손가락으로 짚으며 그는 말을 잇는다.
정점에 이른 언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디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좀더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해갑니다. 어떤 의미에서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오늘날의 유럽어는 그 오랜 과정을 거쳐 덜 엄격하게, 덜 정교하게, 덜 복잡하게 변화한 결과물입니다. 플라톤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 정점에 이르렀던 고어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의 말을 잇기 전에 그는 침묵한다. 기둥 뒤에 앉은 중년 남자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는 짧고 낮게 헛기침을 한다. 한번 더 길게 헛기침을 하자, 이마에 여드름이 익은 대학생이 남자를 흘긋 돌아본다.
말하자면, 플라톤이 구사한 희랍어는 마치 막 떨어지려 하는 단단한 열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대 이후 고대 희랍어는 급격하게 저물어갑니다. 언어와 함께 희랍 국가들 역시 쇠망을 맞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플라톤은 언어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석양 앞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2011,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