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솔하고 조각난 남자에게 견딜 수 없는 역사의 무게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의 이 소설에 앞서 번역된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들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2018, 『살림비용』2021 등의 흥미로운 에세이로 짐작해 본다면,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본 남자』에서 솔 애들러처럼 무일푼의 유대인 역사학자였다. 그는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하다가 투옥된 좌파 지식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영국 백인 상류층 프로테스탄트 출신이었지만, 용감하게 그와 결혼한 대가로 혼자 남매를 키우면서 남편의 옥바라지까지 감당해야 했다. 탈출하다시피 영국으로 되돌아온 부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데버라는 학교에서 남아프리카식 영어 탓에 학급 아이들로부터 ‘미스 남아프리카’라는 놀림감이 되었다. 그녀는 어디서든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꼈다. 분식집에 앉아 냅킨에 뭔가를 긁적거리면서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살림비용』은 자기 어머니처럼 그녀도 홀로 자녀를 건사하면서 글쓰기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성애 결혼제도 바깥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친 바다다. 이제 ‘나’에게는 가정이라는 구멍 난 보트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익사하든지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남았다. 익사할 수도 있는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값비싼 삶의 비용을 화자는 여유와 유머로 보여준다. ‘나’는 가부장적 현실을 살아가는 e-가모장이다. 작가가 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본조차 없으므로 그녀 스스로 새로운 각본을 써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21세기 디지털 잉크로 글을 쓰는 노마드 작가인 그녀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전력을 공급해 줄 전기 연장선, 그리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각각 사용 가능한 어댑터들’이었다고 토로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고통스럽게 알아가면서 삶의 비용을 치러야 했던 작가의 소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모성 신화를 해체하는 익숙한 주제의 『핫 밀크』 대신에 신선한 각본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본 남자』에 집중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모든 것을 본 남자』는 1988년 9월, 런던의 애비 로드에서부터 시작한다. 14장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고 나면 독자는 당연히 15장이 뒤따라 나오리라 기대하게 된다. 어럽쇼, 14장 다음에 다시 1장이라니! 후반부 1장은 2016년 6월, 런던 애비 로드에서 다시 시작한다. 거의 30년을 가로지르면서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비슷한 듯 다르다. 책장을 덮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첫 1장의 출발점인 1988년 현재는 미래의 시점인 2016년에 본 과거다. 그렇다고 SF에서의 타임슬립처럼 과거 시점으로 단순히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1인칭 화자인 ‘나’ 솔 애들러의 자기 서사는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계처럼,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자신을 동유럽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스물여덟 살의 소장 역사학자라고 말하는데 뭔가 미심쩍다. 맥락에서 탈구된 것 같은 ‘나’의 이야기는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조각나고 어긋난 서사의 윤곽이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1988년 9월의 어느 날 ‘나’는 여자친구 제니퍼 모로의 요청으로 런던의 애비 로드를 건넌다.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애비 로드」의 재킷처럼 희고 검은 색이 칠해진 얼룩말 무늬 횡단보도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흘 후 ‘나’는 1930년대 파시즘의 부상에 관한 강연을 하려고 동베를린으로 갈 예정이다. 냉전 시대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복지 체계를 제대로 연구할 작정이다. ‘나’의 통역사 이름은 발터 뮐러였고 그의 여동생 카트린별명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루나은 비틀스의 광팬이었다. 거처가 마땅하지 않았던 ‘나’는 발터의 어머니 우르줄라의 아파트에서 머물기로 예정되었다. 루나에게 이 사진을 선물하자는 것은 제니퍼의 아이디어였다. 동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직전 ‘나’는 여자친구인 제니퍼와는 헤어졌지만, 결별은 결별이고 사진은 사진이다. 예술가인 제니퍼에게는 스탈린이나 에리히 호네커같은 정치가보다 클로드 카앵이나 신디 셔먼이 더욱 중요했다. 자기중심적인 그녀에게는 ‘나’와의 결혼보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커리어가 우선이었다. ‘나’는 애비 로드의 횡단보도에서 발을 내딛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가방에 들었던 물건들인 스탈린에 관한 강연 원고, 콘돔, 납작하고 직사각형 모양의 물건 등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진동이 느껴지는 직사각형 물건에서 “꺼져,”라고 악쓰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세하게 언급한 이 첫 장면은 ‘나’의 서사에서 두고두고 핵심적인 사건이 될 것처럼 보인다.
‘나’는 화장한 아버지의 재를 동베를린으로 조금 가져간다. 아버지는 평생 공산주의 신봉자였으므로 그곳에 묻힌다면 좋아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 탓인지 동베를린 알렉산더 플라츠의 세계 시계탑 곁으로 지나가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잘생긴 통역사 발터 곁에서 초면부터 눈물 흘리는 나약한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빈한한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신조는 나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절대로 착취하지 않는 고결한 삶을 살아가기였다.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나’는 부르주아이고 전기공인 남동생 맷은 볼셰비키 영웅이라고 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투명한 푸른 눈 주위에 아이라인을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인 진주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나’를 아버지와 동생이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무지막지한 남동생에게 얻어터지는 형이었다. 케임브리지에 들어감으로써 ‘나’는 계급 탈주자가 될 수 있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에리에 디디봉처럼, 케임브리지의 부르주아 비둘기들 사이에서 신좌파, 프롤레타리아, 성적 소수자 ‘정체성’을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나’는 내가 누릴 자격이 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불과 1년 후면 철벽처럼 여겨졌던 베를린 장벽이 그토록 쉽게 무너질 것으로 1988년에 예상했던 역사학자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예측한다. 1988년 동서독은 여전한 분단상태였고 베를린 장벽의 경비는 삼엄했다. 히틀러가 칭송한 아리아인 외모를 지닌 듬직한 통역사 발터 뮐러는 통역사일 뿐만 아니라 ‘니’의 감시자로 국가기관이 심어놓은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발터에게 ‘나’는 빠져들었다. 제3 제국 시대에도 그가 유대인인 ‘나’를 밀고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슈타지비밀경찰의 감시를 그토록 두려워했음에도 ‘나’는 경솔하게 사랑한다고 그에게 고백한다. ‘나’의 무해한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자기 목숨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목숨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훔볼트 대학 총장 볼프의 지적처럼.
동독을 탈출하고 싶어 했던 루나는 나’에게 결혼해달라고 강요한다. 그것이 동독을 탈출하는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1989년 11월 9일, 즉 내년이면 베를린 장벽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 지금 목숨 걸고 탈출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어림없는 거짓말이라면서 광기를 부린다. ‘나’는 루나의 광기와 열망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자가 귀한 동독에서 루나의 생일선물로 파인애플 한 통을 가져와 달라는 발터의 부탁마저 잊어버렸던 ‘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장벽이 열리고 독일통일이 된 지 오랜 후 ‘나’는 발터를 다시 만났다. 그는 루나가 장벽이 열리기 한 달 전에 사선을 넘었다고 전해준다. 한 살이 채 안 된 아이까지 자신에게 맡기고 떠난 루나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간호사였던 루나는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의 ‘페니 레인’으로 가서 의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타령했었다. 그녀가 의사가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발터는 통독 후 과거에는 공짜였던 것들이 유료가 되고 세금을 내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해야 하는 생활은 힘들지만 견뎌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발터가 맑고 밝은 푸른 눈을 가진 루나의 아들 카를 토마스와 함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 흘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된 제니퍼의 「조각난 남자」 전시는 ‘나’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뮤즈였지만 치사하게 전시에 초대받지는 못했다. 불청객으로 전시장에 갔을 때,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천 개의 유리 파편들처럼 작품 속의 ‘나’는 조각난 남자 자체였다. 제니퍼는 우아했지만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다. 스물여덟인 ‘나’가 보기에 제니퍼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 제니퍼는 쉰하나라고 대답한다. 지금, 여기는 2016년 유스턴 로드 병원이다.
“이런 거야, 제니퍼 모로. 우리는 젊고 어리석고 경솔했지만, 그래도 난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이런 거야, 솔 애들러” “너는 너무 무심하고 다른 데에 가 있어서 나로서는 너에게 가닿는 유일한 길이 카메라를 통하는 것이었어.”(276쪽)
후반부 1장으로 넘어가면 앞서 전개한 ‘나’의 서사는 생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교통사고로 지남력사람, 시간, 장소를 구별하는 능력이 망가진 중증 인지장애 환자의 것임이 드러난다. 당혹스러워진 독자는 앞으로 돌아가서 ‘나’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환각과 현실, 기억과 경험, 과거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나’의 조각난 서사를 꿰매 볼 수 있다. 독자는 작가가 공들여 설치한 ‘나’의 역사에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서글퍼진다.
벤야민이 말한 ‘좌파 멜랑콜리아’를 넘어서 실천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남자. 남을 착취하지 말라고 했던 원조 공산주의자 아버지의 고결한 신조를 배신하고 결국 주변 모두에게 기생한 신좌파 남자.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자기가 있는 곳에 있지 못했던 남자. 남자든 여자든 마주 보는 상대 너머를 보았던 남자.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못했던 남자. 무해한 사랑이 결과적으로 유해해지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되는 남자. 역사학자라기보다 역사 자체가 되어버려 자신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남자. 그래서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무지한 남자.
그럼에도 훼손되고 망가진 기억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늙은 남자가 ‘가엾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자가당착의 역사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짜증 나는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독자로서 나는 조각난 마음으로 갈팡질팡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