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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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환상
이걸 어떻게 읽어요
중학교 2학년 학생들 몇 명과 함께 문해력 증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다. 총 10회차의 수업 중 절반 인상이 지나, 이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문해력 수업에 흥미를 붙이고 나름대로 즐겁게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날 담당 교사는 큰 결심을 하고 아이들이 읽기 싫어하는 ‘소설’ 파트를 수업하기로 했다. 선정한 작품은 알퐁스 도데의 〈별〉로, 고르고 고른 것이었다. 단어와 문장의 수준이 어렵지 않고, 소년소녀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중학생이 공감하기 쉬우리라는 것이 선정의 이유였다. 부분을 발췌한 것이긴 해도 A4 용지 6페이지 정도라 약간 길긴 했지만, 그래도 금방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수업을 준비했다.
담당 교사가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제작진이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해 안내했다. 오늘 배울 페이지를 알려주고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내용을 훑어보자고 권한 것이었다. 또랑또랑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오늘의 수업을 기대하던 아이들은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탄식했다.
“너무 길어요. 이걸 언제 다 읽어요.”
“찬찬히 읽어보면 재밌어. 시간 충분히 줄 테니까 차근차근 읽어봐.”
이런저런 말로 어르고 달래니 아이들은 끙끙대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겨우 한 페이지를 넘긴 후부터는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정말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
“응.”
단호한 대답에 또다시 한숨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6페이지를 다 읽기까지는 30분이 넘게 걸렸다. 고생한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내심 기대하며 물어보았다.
“재밌지 않았어?”
제작진과 선생님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읽어낸 아이들은 하나 같이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글자가 가득 있는 건 숨막혀요.”
“흰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글자만 가득 적어주면 어떡해요.”
최근 일본에서는 책 한 권을 10분 만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서 제공하는 독서 모바일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제 경영 관련 서적이나 직장인을 위한 교양서적을 요약해서 텍스트와 음성으로 제공하는데, 대략 6시간 정도 걸릴 독서 시간을 10분으로 줄여준다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누적 이용자 수도 1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꽤 인기가 높다. 짧은 시간에 내용을 습득할 수 있으니 무척 효율적이라는 것이 이용자들의 평이다.
한국에서도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들이 꽤 인기가 높다. 서울대 도서관 인기 대출 도서인 《총, 균, 쇠》도 유튜브로 보면 9분 만에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총, 균, 쇠》 요약 동영상의 조회수는 200만 회가 넘는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대형 인터넷 포털도 지식 검색이 아닌 짧은 영상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에는 글자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지식 검색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사진과 이미지로 내용을 제시하는 ‘카드뉴스’도 지나, 주요 내용을 1분 이내로 짧게 만들어 보여주는 ‘쇼츠’ 검색의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직접 ‘읽기’보다는 빠르고 편하게 ‘보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읽기는 재미없고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언제부터 이렇게 읽기가 어려운 것이 되었을까?
읽지 못하는 사람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한글이 워낙 배우기 쉽기 때문에 한국에서 문맹은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유난히 글자를 읽는 행위를 ‘당연히’ 할 수 있는 행위라고 믿었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누구나 당연하게 ‘읽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우리는 읽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 인간의 DNA에는 읽기라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읽기’에 대한 여러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읽기를 짚어봐야 한다. ‘읽기’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말이다.
‘읽기reading’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보기seeing’라는 행위와 만난다. 일반적으로 문자로 쓰인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뇌에서 처리한다는 점에서 읽기와 보기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보기에 비해 읽기는 활용 가능한 능력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말하는 인간의 능력은 대개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가능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익히지만, 읽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읽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읽기가 힘든 이유는 결국 이 행위가 시각적, 청각적 능력과 달리 타고난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매우 자동화된 상태로 익숙하게 하고 있기에 이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뇌는 인간이 읽기 능력을 태생적으로는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뇌에는 시각 단어 형태 영역Visual Word Form Area, VWFA이라는 곳이 있다. VWFA는 뇌의 좌반구 후두엽과 측두엽의 경계부에 위치하며, 안구를 통해 입력된 문자 정보가 뇌의 여러 영역으로 전달되기 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 뇌에 존재하는 시각 정보, 특히 문자 정보를 처리하는 전문화된 영역이다.
프랑스의 인지신경학자인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은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같은 마을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뇌와 읽지 못하는 사람의 뇌를 스캔했는데, 문자를 제시했을 때 VWFA 영역의 반응 정도와 뇌의 활성화 정도가 각기 달랐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시각피질 영역이 조금 활성화되었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각피질 영역뿐만 아니라 VWFA를 비롯하여 뇌의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들이 활성화되었다. 시각 정보인 문자가 입력되자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뇌의 영역들이 그에 반응하여 작동한 것은 ‘보기’라는 행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에 무슨 의미가 있고, 그 의미에 대해 해석하며, 그 해석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읽기’라는 행위는 VWFA를 포함해 뇌의 많은 영역이 동시에 매우 활발히 활동하게 한다.
드앤은 VWFA가 글자의 크기, 위치, 서체, 대소문자에 상관없이 단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며, 그렇기에 ‘문자 상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VWFA는 문자를 읽을 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데 그 정도는 개인의 읽기 능력에 정비례한다. 때문에 문맹인 사람뿐 아니라 글 읽기를 아직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뇌에서는 VWFA가 활성화되지 않으며, 난독증이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VWFA는 읽는 행위가 점점 더 능숙해지고 발달할수록 활성화 정도가 더 커지며, 그에 따라 뇌의 더 많은 영역이 활성화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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