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5

다정한 양육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저자소개

저자 · 애비게일 슈라이어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 맨해튼 정책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컬럼비아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시티 저널》, 《뉴욕 포스트》 등 유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2020년 출간한 『돌이킬 수 없는 피해(Irreversible Damage)』는 미국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급증하는 성별불쾌감(Gender dysphoria) 현상을 다룬 문제작으로 출간 직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영국에서 《이코노미스트》와 《런던 타임스》가 선정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꼽혔으며, 같은 해 저널리즘 분야의 독립성과 우수성을 치하하는 ‘바바라 올슨 상(Barbara Olson Award)’을 수상했다.
역자 · 이수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교양, 경제경영, 심리학, 자기계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영미권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불변의 법칙』 『케플러』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완벽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저자의 말


우리 아이들은 왜

병들어가고 있는가


올해 여름 캠프에서 돌아온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증세가 계속되어 서둘러 소아과 급성 클리닉에 데려갔다. 의사는 맹장염은 아니라면서 탈수증으로 보인다고 진단한 후 몇 가지 질문할 게 있으니 집에 돌아가기 전에 간호사를 잠깐 만나라고 했다.


검은색 간호복을 입은 거구의 남자 간호사가 클립보드를 들고 방에 들어와서 말했다. “정신 건강 검사를 해야 하니 둘만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잠시 후 나는 간호사가 말하는 둘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질문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연방 정부 기관인 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에서 제공하는 자료였다. 다음은 간호사가 12세인 내 아들에게 던지려 했던 질문 목록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은 것이다.


1. 최근 몇 주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요?

2. 최근 몇 주 동안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 더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3. 지난 일주일 동안 자살에 대해 생각했나요?

4. 자살을 시도한 적 있나요? 만일 있다면 어떤 방법이었나요? 언제 그랬나요?

5. 현재 자살과 관련한 생각을 하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세요.

 

간호사가 나에게 방에서 나가달라고 한 것은 임의적 요청이 아니었다. 그는 정해진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간호사용 지침’에 따르면 간호사는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없는 공간에서 답해야 합니다. 그러니 잠시 방에서 나가주십시오. 아이의 안전이 조금이라도 걱정되는 상황이 생기면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상담을 거부하고 클리닉을 나와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들았다. ‘만일 내가 협조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들은 어른을 기쁘게 하려고 그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은 대답을 할 때가 많다. 만일 아들이 거구의 간호사와 단둘이 있는 방에서 ‘네’를 유도하는 듯한 질문들에 “네”라고 대답했다면? 그들은 내가 아들을 집에 데려가지 못하게 막았을까?


만일 ‘실제로’ 우울한 생각을 자주 하는 아이라면 어떨까? 부모와 분리한 뒤 자살에 대한 점차 강도 높은 일련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정말로 아이를 돕는 최선의 방법일까?


나는 아들의 심리 치료를 신청하지 않았다. 신경심리학적 검사를 받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배가 아픈 아들을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갔을 뿐이다. 아들에게 정신 질환이 있다는 징후도, 그렇게 추측할 만한 이유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간호사가 정신 건강 검사를 진행하는 데 그런 징후나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녀의 정신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강박에 가까울 만큼 신경 쓰기 때문에 방에서 나가달라는 전문가의 말을 의심 없이 따른다그들은 늘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워야 한다고 믿으며 의존해왔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과거 부모 세대의 가치관 때문에 받은 상처를 과잉 보상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심리학자 같은 사람들의 조언은 필요없다고 여겼던 관점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말이다.


나와 남동생이 어렸을 때 부모님은 종종 우리를 체벌했다.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의 감정이나 의견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 학교에 다닐지, 주요 축일에 유대교 회당에 갈지 말지, 특정 행사에 갈 때 어떤 옷을 입을지 등의 문제에서 우리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저녁 밥상에 오른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안은 없었다. 우리는 자기표현이라는 중요한 권리를, 억눌린 정체성을 탐구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1980년대의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정서적 상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 수많은 사람이 성인이 된 후 심리 치료를 받았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부모님이 정서적으로 미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녀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했고, 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몰랐으며, 자녀가 받는 감정적 고통에 둔감했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는 아이에게 정서적 상해를 입혔다.


성인이 된 우리는 당연히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부모님 세대와 달리 아이의 정서적 건강에 민감한 양육자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감정과 생각을 자주 묻고, 기분을 살피고, 집안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아이의 의견을 수용하고, 가능하다면 아이의 괴로움과 고민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아이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과거 세대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만들어놓은 권위의 장벽을 허물고 아이를 팀원이자 멘티, 친구로 바라보는 부모가 되고자 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으려고 웰니스 전문가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쓴 유명한 양육서를 열심히 읽었다. 아이를 교육하고, 잘못했을 때 타이르고,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말이다.


우리는 전문가의 말대로 양육에 치료적 접근법을 취했다. 아이에게 모든 규칙과 요구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체벌은 절대 하지 않았다. ‘타임아웃time-out, 아이가 잘못했을 때 일정한 장소로 격리해 조용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훈육법―옮긴이’을 숙지해 활용했고 어떤 종류든 벌을 줄 때는 충분히 설명했다. 이때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는 걸 막고 권위적인 부모라는 느낌을 덜기 위해 ‘벌’ 대신 ‘결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훌륭한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아이가 항상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떤 괴로움도, 심리적 불편함도, 싸움도, 실패도 경험하지 않고 그 어떤 ‘트라우마’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감정을 세심히 살필수록 우리는 아이의 일시적인 불안도 참고 넘어가기 힘들어졌다. 아이를 자세히 관찰할수록 학업 성취도, 언어능력, 대인관계 능력, 정서 발달 등 온갖 측면에서 기준에 못 미치는 지점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느껴졌다.


우리는 양육 방법을 가르쳐준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서둘러 아이를 데려갔다. 이번에는 검사와 진단, 상담,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아이도 주변 사람들도 알아야 했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또는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 있다는 것을, 삐딱한 것이 아니라 ‘적대적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를 앓고 있다는 것을, 파괴적인 학생이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진단명을 둘러싼 부정적 시선에 맞서 그런 인식을 없애고 싶었다. 이와 같은 진단을 받는 아이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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