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말하며 공감하는 시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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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이 인용한 카프카의 말을 빌려 써 본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외로움, 무기력, 소외감, 방황 등으로 삶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고 기댈 곳이 없던 시절 습관처럼 자녀의 책을 대출받기 위해 찾았던 도서관에서 성인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을 만나 책 얘기를 하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용기를 내 프로그램을 신청하였다. 당시 나는 책을 통해 아집을 깨고 고독을 부수고 내 방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직장에 다녀와서 아직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자녀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던 시절, 소파에 앉아 공허한 마음과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잠만 청하던 시절에 독서동아리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건 독서동아리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첫 번째 매력은 서로 다른 연령대의 낯선 타인과 나누는 책 이야기에 있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은 내가 알지 못한 어떤 대상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이다. 동아리 회원들의 정확한 나이와 직업, 상황 등을 모르는 상태에서 책과 연관된 회원님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깊은 흡입력이 있다. 나를 포장해야 하는 많은 말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력이 독서동아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서로 모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시간으로 내 시절을 채우고 있다.
두 번째 매력은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거듭나는 책, 새 생명력을 얻게 되는 책에 있다. 평소에 별로 흥미롭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운 도서가 선정되어도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책 내용이 나의 인생과 맞물려 정리되고, 깊은 감명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 장소, 환대』에서는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라고 말한다. 독서동아리 세 번째 매력은 ‘환대’다. 책은 기꺼이 우리 개개인에게 그 자리를 마련해 주는 몸짓과 말을 던지므로 우리를 기꺼이 환대의 주인공이 되도록 이끈다. 책으로부터 환대받은 우리는 독서 토론을 통해 각자의 가치관, 고집, 부족한 신념의 세계가 확고해지거나 무너진다. 그래서 나만의 문제에 사로잡혔던 자아를 보다 큰 그릇에 담을 수 있게 돕고, 더욱 견고해지므로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떤 모임이든 오랜 시간 유지 못 하는 습성으로 끈기가 없던 내가 6년이라는 시간을 단단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중심에 둔 독서동아리가 있어서였다고 자부한다.
현재 어떤 내 모습보다 가장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에 중심에 놓고 있는 독서동아리는 격주로 모이며 영화 토론과 독서 토론을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책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중점으로 선정해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토론하면서 책에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종합예술이 갖는 특별한 영역에서 주인공들의 인생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영화는 배우의 연기력, 영상미, 음향, 미술 효과 등 작품의 줄거리와 더불어 다양한 토론 소재를 제공하여 책 읽기가 버거운 회원들을 토론의 장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 도서관 동아리실에서 진행되는 모임이지만 카페, 야외, 미술관, 박물관 등 장소를 옮겨가며 새로움 속에 다채로운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여 사고의 확장을 열어주고 있다. 최근 독서동아리 6년을 기념하여 모두 함께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각자 개인 사정으로 가고 오는 날들이 서로 달랐지만,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난 회원님들이 아주 지혜롭고 즐겁게 여행과 토론을 병행하여 사람, 장소, 환대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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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재 독서동아리는 책 읽는 즐거움에서 글쓰기의 즐거움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토론이 끝난 후 또는 문뜩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단체 카톡에 올려 글쓰기를 공유하므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고 나누는 시간이 종종 있는데, 책 읽기에 열심인 회원들이 글쓰기에도 애정이 있어 서로의 글을 격려하는 시간이 된다. 이를 통해 나의 사소한 글에 대해 자신감을 얻고 글쓰기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일상에 지쳐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만날 시간, 주인공을 만날 시간, 저자를 만날 시간이 늘 부족할 때, 얼어붙은 감성에 불을 지피는 책을 만나기 어려운 이들에게 독서동아리를 추천하고 싶다. 독서동아리는 지속적으로 책과 함께하게 되는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준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매번 우리의 잠을 깨우는, 내 안의 무언가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을 만나는 시간과 시절을 보내고 있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