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책 읽기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흐른 상태여서 어떻게 지금의 책 읽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물가물해졌기에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2016년에 막 들어선 겨울 무렵이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구립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디아스포라’라는 제목을 통해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은 특히 현대사에 관한 관심을 키워가던 시기였던지라 새로운 주제에 대한 관심은 강한 궁금증으로 변모했고, 그 와중에 찾아간 곳이 현재 우리 독서동아리가 소속되어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라는 단체였습니다. 여기에서 나보다 먼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게 다양한 설명을 듣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직접 일본으로 가서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만나면서 애초의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8년에 뜻맞는 몇몇 회원들과 책 읽는 모임을 한 번 만들어 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공식적인 독서 모임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의 시범운영을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고,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2019년 1월부터 지금의 모임을 정식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잘못된 역사는 지우고, 올바른 역사를 다시 써나간다’라는 의미의 제목인 ‘연필과 지우개’이하 연지라는 나름 거창한 이름을 짓게 되면서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잘못된 역사니 올바른 역사니 하는 말에 어느 정도의 비장함과 무거움을 가지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매월 한 번씩 모여서 재일조선인과 재일조선학교 관련 책들을 읽으며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4년은 제법 길었습니다. 그 시간을 어찌 보냈나 싶어서 그간의 기록들을 오랜만에 살펴보았습니다. 저희는 매월 모임을 가진 후 되도록 후기를 남기려 노력했었거든요. 후기들을 살펴보니 함께 읽은 책들이 50여 권이 다 되어가더군요. 그 책들은 재일조선인과 재일조선학교 관련 문학, 문화,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었습니다. 우리 모임이 특수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독특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내국인 저작물보다는 동포 작가의 저작물이 더 많았으며, 국내에 공식 출판이 되지 않아서 일본어를 잘하는 회원의 번역을 통해 읽은 책들도 있었고, 오래전 절판된 책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사리 한 권을 구해서 복사해 본 책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 분야 연구자들의 연구활동물이나 학위 논문들도 소개받아 읽어내기도 했었고요. 이러한 책 선정 기록들을 더듬어 보니 이 분야에서 제법 많은 책을 읽었다는 약간의 뿌듯함도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다녀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10명 정도로 시작하였다가 한 해의 끝으로 갈수록 인원은 줄어들어 어느 시기에는 세 명만 남아서 진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에 맞추어 새로운 회원들을 모집해 다시 출발하곤 했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모든 것이 흐트러졌던 2020년은 우리 모임의 가장 힘든 시기었습니다.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어떠한 판단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우리는 온라인 ZOOM으로 모이기도 하고, 상황이 좀 호전되면 조심스럽게 오프라인 모임을 재개하면서 견뎌왔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지난 4년여 시간을 차분히 복기하다 보니 몇 가지 의미있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첫째로 2019년 가을 무렵 난생처음 일본 도쿄로 독서 기행을 떠난 일입니다. 그해 여름 무렵 재일 교포 2세인 박기석 작가의 『우리들의 깃발』이라는 자전적 성장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 속에 나오는 무대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졌고, 박기석 작가도 뵙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몇몇이 의기투합하여 독서기행단을 모집해 책의 무대가 된 도쿄를 다녀온 기억은 두고두고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러한 독서 기행을 또 다녀오고 싶습니다.
둘째는 코로나19가 시작되었던 2020년 우여곡절 끝에 저자 초청 강연회를 강행한 일입니다. 기획했다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져 7월로, 다시 8월로 옮겨가면서 어렵사리 강연회를 진행했었고, 긴장 속에서 준비했던 시간이기에 이제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4년여 독서동아리를 하다 보니 항상 부딪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는 방법과 토론 혹은 논쟁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모임이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론하는 방법과 논쟁의 태도에 기인하는 관계의 충돌을 경험하였기에, 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은 저를 조금씩 발전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임 4년 차인 2022년은 예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독서주제가 확장된 것입니다. 재일조선인문제를 공부하다 보니 남북분단 현실에 기인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어, 올해는 ‘북한 많이 알기’라는 주제로 공부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어 달마다 한 발씩 내딛는 중입니다. 이처럼 주제의 확장이 추후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몇 달을 진행하면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관련 주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 한 분,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일본인 한 분도 합류하였습니다. 앞으로 시선의 변화 또는 다양화를 기대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은 저희 모임의 작가 초청 강연회가 있는 달입니다. 이번에는 사진전도 함께 곁들인 색다른 강연회를 준비 중인 만큼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확장하고 그 감동을 주변과 함께 공유해보자는 마음에서 많이 설레는 상황입니다. 이런 기대감을 어찌 가져보겠는가 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독서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겠죠. 앞으로도 지난 4년여 시간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꾸준히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