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3

삶의 전환점이 된 독서동아리

저자소개

김동구
독서동아리 ‘온공감독서회’ 회원


첫 만남은 소소했다. 2021년 9월 10일, 작은도서관 매니저가 애써 네 사람이 모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숲속책마실 작은도서관 동아리 ‘공감독서회’, 회원을 모집합니다. 책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으신 분, 주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원하시는 분 작은도서관으로 오세요! 이 가을 책에 빠질 타이밍!”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을까? 팬데믹에 지친 나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독서회 홍보 문구에 적힌 타이밍이라는 단어는 기막히게 들어맞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건대 독서회는 정말 적절한 시기에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첫 모임에서 얼떨결에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오랜 기간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기에, 내가 알던 것들을 표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것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거기에다 여태껏 남의 책만 만들다 고향으로 돌아와 내 글과 내 작품을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작가’라는 별명갓작가을 지었고, 독서회 회원들에게 그렇게 소개했다. 그때부터 회원들에게 나는 ‘작가님’이 되었다. 글 한 편, 책 한 권 출간하지 않은 채 어느 순간 작가가 된 것이다. 부끄럽지만 독서 모임이라는 기회를 통해 내 꿈에 도전이라도 해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첫 독서 모임은 시각디자인 전문 강사, 주부, 작은도서관 매니저, 그리고 글 한 편 내지 않은 자칭 작가, 이렇게 4명이 시작하였다. 독서 모임 초기에는 개인적 취향에 의존하는 책들을 회원들에게 추천하는 식이었다.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것이 회원 대부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만들며, 독서 모임을 오랫동안 해왔던 내가 제시하는 것이 당연했을지 몰라도 이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책 읽기 생활화, 책 내용 생활화’라는 두 가지 목적과 독서를 통해 서로에 대한 공감을 넓혀간다는 취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항해를 시작한 ‘공감독서회’는 회원들 각자의 특징들이 살아나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목적은 명확히 하지만 책의 종류와 방법은 각자에게 맡겼다. 젊은 시절 사교육계에 몸담으셨던 매니저는 그림책을 무척 좋아해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함께 읽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그 외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자기 말로 다른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다.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며 매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주일 후에 신입회원이 추가로 생겼다. 취준생인 30대 여성이 참여하며 회원이 5명이 되자 회원들이 읽어오는 책의 장르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판타지 소설부터 수학에 대한 예찬서까지 혼자만의 독서라면 절대 손에 닿지 못했을 책들을 일주일에 5권씩 읽어내는 셈이었다. 그렇게 2021년 ‘공감독서회’ 회원들은 함께 읽기를 통해 팬데믹 정점을 관통하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했던 대표적인 책들을 살펴보면, 『채식주의자』, 『꼬마 거미 당당이』, 『미움받을 용기』 시리즈, 『토지 1권』, 『스토리텔링 바이블』, 『태평천하』, 『알사탕』, 『나는 개다』, 『곰씨의 의자』, 『알레나의 채소밭』, 『파피용』, 『왜냐면』, 『안녕』, 『메리』, 『할머니의 여름휴가』, 『상실의 시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정의란 무엇인가』, 『노자의 도덕경』, 『이유가 있어요』, 『규제의 역설』, 『라이카는 말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2』 등이었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공감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기에는 각자의 책을 읽기에 바빴다. 이는 예산상의 이유로 같은 책을 구매하는 것을 꺼리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다. 독서회의 변화가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회원들에게 신상의 변화가 생기자 모임 인원이 급격히 줄고 위기가 찾아왔다. 리더와 도서관 매니저를 제외하고 회원 3명이 모두 빠지는 상황이 와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빠진 자리를 새로운 회원들이 채워주었다. 동갑내기 고등학교 동창, 졸업 이후 서로 모르고 살다 독서동아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두 친구.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만삭의 몸으로 아이에게 사교육 없는 엄마표 공부를 시키겠다는 엄마. 이렇게 다시 회원들이 채워졌다.



2022년은 행운이 찾아와 독서회를 위해 쓸 수 있는 재원도 마련되었다. 독서동아리지원센터를 알게 되었고 지원하였지만, 처음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독서회를 꾸리기 위한 이런저런 궁리 중이었는데, 연락이 왔다. 추가 선정이 되었다고. 회원들이 바라는 독서 활동을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어 너무나 기뻤다. 그림책을 원작으로는 하는 공연도 함께 관람하고, 이제 우리가 함께 읽고 싶은 책도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독서동아리지원센터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서회도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이름도 ‘공감독서회’에서 ‘온공감독서회’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따뜻할 온, 스위치 온, 온라인 온, 모두 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더욱 확장된 모임을 시도하고자 계획도 세웠다. 엄마들의 그림책, 수요 책식회, 온라인 독서 모임 등 새로운 계획에 도전 중이다. 


최근에는 독서회의 계획에 맞는 신입회원도 들어왔다. 한국에 온 지 25년 차 일본인 주부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최근 모임에서는 일본 작가인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이게 정말 나일까?』를 통해 자기 자신에 관해 탐구해 보고, 서로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일본과 인연이 많은 한국인, 한국과 인연이 많은 일본인 사이에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한·일 간 문화 차이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모임이 어느 순간 글로벌 독서 모임이 된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병행하며 서로에 대한 공감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서두에 독서회가 삶의 전환점이라 언급했다. 사실이다. 나는 지금 글로벌 독서 모임의 리더가 되어 있고, 독서회 활동을 시작으로 이어진 작은도서관 봉사와 더불어 이제는 작은도서관 매니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책과 관련해서는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늘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 매일 출근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꿈만 같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소위 덕업일치의 삶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독서 모임이 그 발판이 되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