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책사’와 함께 Seize the book!
동탄에 낭독 모임이 생기다
2015년 5월 28일은 ‘동탄책읽는사람들’이하 ‘동책사’이 처음 생긴 날이다. 나는 그즈음 한 작가의 블로그에 모임이 공지된 것을 보고 메르스 때문에 다니던 직장이 잠시 쉬는 틈을 타 모임에 나갔다. 모임의 리더는 2014년 4월 16일을 무력하게 보낸 후 평범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안산의 아이들에게 편지와 책을 주기적으로 보내던 나에게 결이 맞는 모임인 것 같았다. 드디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서동아리의 회원이 되었다.
‘동책사’는 주 1회 함께 모여 고전을 낭독한다. 어려운 책을 천천히 깊게 읽자는 뜻에서 모임의 리더가 결정한 사항이었다. 처음 읽은 책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는데, 거의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소리 내어 읽으려니 꽤 힘이 들었다. 읽을 때 틀리지 않으려고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는 것에 너무 신경을 썼고,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을 들을 때는 나와 다른 목소리의 톤과 속도 때문에 맥락을 놓칠 때가 많았다. 좀 더 속도감 있게 읽고 싶었던 터라 모임의 탈퇴를 고민했지만, 우물거리는 사이 나는 서서히 낭독에 빠져들고 있었다.
함께하는 낭독의 매력은 체험해 보아야 알 수 있다. 책에 폭 빠져 있다가 읽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하하 웃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가끔 혼자 읽을 때면 매력적인 다른 회원의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흉내낸다. 어떨 때는 영혼을 마주하는 듯한 신기한 경험도 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낭독을 통해 고전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동책사’, 두 번의 어려움을 이기고 성장하다
회원 수가 20명을 막 넘기던 시점이었다. 3년째 공공도서관의 동아리실과 카페를 전전하던 ‘동책사’는 매번 모임 장소를 구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공공도서관의 동아리실을 빌려 쓰는 일은 난관이 많았다. 대실은 일주일에 한 번밖에 할 수 없었고, 그것마저도 다음 시간에 열릴 문화프로그램을 위해 예정 시간보다 일찍 자리를 정리하고 비워 주어야 했다. 카페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귓속말을 견뎌야 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마치 “도대체 여기서 왜 책을 읽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는데, 그럴 때마다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만의 낭독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적당한 크기와 회원들의 이동 거리, 주변에 얼마간의 주차가 가능한 장소여야 했다. 회원들의 회비로 유지해야 하므로 임대료도 비싸지 않아야 했다. 우리들의 마음에 든 자리는 도로에서 두 블록 들어간 작은 곳이었는데, 주변에 배달업종과 작은 카페가 입점해있는 9평 남짓의 조용한 공간이었다. 거창하게 ‘낭독 공간 읽다가’라는 간판까지 걸고 대청소를 하던 날, 우리는 한 회원이 준비한 열무국수를 비벼 먹으며 얼마나 좋았던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낭독의 즐거움에 빠진 지 6년째 되었을 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졌고, 오프라인 모임이 전부였던 ‘동책사’는 4인, 6인 집합 금지 등 정부의 방역 대책에 결국 모임을 쉴 수밖에 없었다. 밴드를 통해 간간이 소통하고 가까스로 공간을 유지하긴 했지만, 회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낭독으로 맺어진 인연은 생각보다 끈끈했다. 회원들은 힘든 와중에도 서로 마스크를 나누고, 공간에 기분 좋은 그림과 글귀를 써두며 서로를 응원했다. 어떤 회원은 모임이 곧 시작되기를 바라며 공간을 청소하고 사람 냄새가 계속 나도록 식물을 가꾸었다. 참 고맙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제 집합 금지는 풀렸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동책사’도 변화를 꾀했다. 오프라인 중심이던 모임 방식을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공간에 인터넷과 모니터를 설치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동시에 진행했다. 덕분에 남편을 따라 중국에 나가 있는 회원도, 가족과 캠핑을 간 회원도, 몸이 좋지 않아 공간에 나오지 못하는 회원도 온라인으로 참여해 함께 책을 읽는다.
느슨한 연대와 두 번의 축배
‘동책사’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느슨한 연대’이다. 회원들은 낭독 공간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만나지만, 개인적으로 따로 보는 일은 많지 않다. 물론 가끔 차를 마시기도 하고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함께 하는 회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 읽는 시간만을 공유한다. 그야말로 ‘찐’ 독서 모임인 것이다. 현재 30여 명의 성인 회원 중 대부분은 5년 이상 같이 한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읽으니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느슨한 연대’의 최고 장점은 바로 지속성이다.
그렇다고 ‘동책사’가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창립 기념일이 있는 5월과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축배를 든다. 물론 이날에도 책이 빠질 수는 없다. 어떤 날에는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단편을 하나 읽고 토론을 한다. 지난 5월에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으며, 삶에 대한 단상을 나누었다. 맛있는 음식, 약간의 술과 함께하는 낭독도 정말 즐거운 일이다.
‘동책사’와 함께 Seize the book!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 속삭인다.
“Carpe diem…… Carpe diem…….”
‘Carpe diem’을 영어로 하면 ‘Seize the day오늘을 붙잡아라’라고 한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라는 뜻이다. ‘동책사’는 한 책을 가지고 서너 달 읽는 일이 다반사다. 회원들은 책 한 권을 읽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책 한 권을 붙들고 그 안에 스며 있는 의미를 끌어내고 느끼는데 오늘의 시간을 충분히 쓴다. 그야말로 매 순간 ‘Seize the book!’의 마음으로 낭독을 하는 중이다.
2015년 5월 한 개의 모임이 있었던 ‘동책사’에는 지금 성인 모임 5개와 청소년 모임 1개, 총 6개의 모임이 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간에 불이 켜지고 책 읽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창문을 넘나든다. 문학기행까지 했던 『토지』, 공부하다시피 하며 읽은 『종의 기원』과 『꿈의 해석』, 매 순간 성찰하게 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이방인』, 읽고 나서 가장 뿌듯했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등 읽어온 책들도 상당하다. 그동안 ‘동책사’가 큰 성장을 한 만큼 회원들 개개인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올해 송년회의 주제는 ‘동책사와 나의 역사’로 해보자고 제안해봐야겠다. 저마다의 성장 스토리를 글로 써 와 낭독해봐도 좋을 것이다. 벌써 기대가 된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