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이 위원회를 통해 나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위원회가 출범한 지 꼭 1년 3개월하고 하루째인 2013년 7월 18일 제돌이와 춘삼이를 가두리에서 제주 바다로 내보내기 직전 제주 김녕항에서 조촐한 기념식을 열었다. 환영사를 하며 둘러본 위원들의 얼굴에는 공격성이나 적의는 온데간데없고 성취감과 기쁨의 미소만 가득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사람들이 과연 그동안 나를 그리도 힘겹게 했던 그 사람들인가 의아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우리는 할 얘기 못할 얘기를 죄다 쏟아냈다. 다른 위원회와 달리 위원 모두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해댔고 때론 그 주장이 관철되고 때론 좌절되는 걸 함께 지켜보았다. 그 긴 논쟁의 터널을 빠져나와 드디어 제돌이와 춘삼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위원 모두의 마음에는 아무런 앙금도 남지 않았다.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런 게 새 시대의 새로운 거버넌스라는 걸. 우리 정부는 너무나 자주 관료들이 기획하고 대체로 호의적인 전문가 몇 명만 초청해 회의 몇 차례 한 다음 사업을 공표한다.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 중에서 내가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놓든 그저 30분이면 초토화된다. 인터넷에는 비판이 넘쳐나고 정책의 영향을 입을 당사자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 비록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덜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이 전부 다 대의 민주제를 따를 필요도 없고 그게 언제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큰 틀에서는 대의민주제를 행하지만 그때그때 적절하게 직접민주제를 가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최재천, 『숙론』, 김영사2024, 136~13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