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1

왜 그림책의 해인가?

저자소개

조성순
아동문학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서 공부하였으며, 논문 『한국 그림책 발달 과정 연구—삽화에서 그림책으로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론 「공간의 제한성을 넘어서는 소통방식」으로 제8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평론 부문)을 수상하였다. 인하대학교 강사, 계간 『어린이책이야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군포 그림책꿈마루 상설전시관 ‘한국 그림책의 역사’ 큐레이션을 맡아 진행하였다. 현재 KBBY 도서추천위원장, 작가연구회 연구원, 한우리열린교육 미래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우리평생교육원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독서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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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과거와 현재를 잇다 


세계 그림책 시장에서 늦은 출발에도 한국의 그림책은 K-콘텐츠의 주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 그림책이 미학적으로 더욱 공고해져 간다는 것은 우리 그림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2020년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상 수상, 2022년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HCAA’ 수상은 한국 그림책의 위상을 세계무대로 옮겨 놓았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의 한국 그림책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이례적으로 2022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는 170권의 그림책을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 기획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 그림책의 성과를 정의하는 근원은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림책 출판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진화의 결과이다. 그림책의 출판은 과거에는 인쇄 기술의 발달과 그 맥을 함께 하였고, 현대에는 작가의 창조적인 예술성을 기반으로 신기술이 더해져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근대 계몽기에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어린이의 발견’은 그림책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22~1938년까지 시행된 조선교육령에 포함된 「유치원규정」은 조선의 현실에서 유년 아동의 교육을 자각하고 유치원 설립 운동과 함께 유년 아동에 관한 관심의 발아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1920년대 후반에는 이주홍, 정인섭, 홍은성 등이 유년 아동을 위한 ‘繪本’그림책의 필요를 주장하였다.1)


비록 현대 그림책의 형식을 갖춘 그림책의 출발은 서구에 비해 늦었지만, 우리나라는 1920년대 말부터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1930년에만 하더라도 좋은 그림책이란 교육적인 것이 주를 이루었고, 현실의 어린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환상적인 요소는 배제되었다. 하지만 불과 1~2년 사이에 좋은 그림책에 대한 논의는 빠른 흐름으로 변화하였고, 1932년에 와서는 그림책은 “예술적”이어야 하며 “다방면”에 있어서 어린이들의 인식을 넓혀주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책의 파라텍스트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2) 그리고 “어린이들이 읽는 책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어른이 보더라도 재미있는 것이니 이런 책을 어린이들에게만 익힐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보며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림책 개념의 변화는3) 현대적인 의미의 그림책의 개념과 견주어도 될 만큼 진보적이었다. 이로 본다면 현대의 그림책의 개념은 서양 그림책의 유입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논의하며 고민해 온 과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후 1980년대를 전후로 우리 그림책은 다시 변화의 흐름을 맞이하게 된다. 아시아 유네스코에서 기획한 옛이야기 그림책 시리즈 발간 이후 동화서적에서 준비한 세계 그림책 축제를 통해 접한 세계 그림책의 현황은 우리 출판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발간이 촉구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전통적인 화법과 일본의 화법을 재현하는 방식 그리고 서구의 화법이 혼재된 상태에서 우리만의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이어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그림책 작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림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옛이야기 그림책 시대에서 창작 그림책 시대로의 전환은 그림책에 대한 개념과 장르적인 인식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현대 그림책에 관한 관심은 출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창작 그림책 읽기 지도까지 확장하며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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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로서의 그림책을 보다


현대에 와서 그림책은 문학예술로서 그 의미가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림책의 과거를 들여다본다면 문학예술로서의 그림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30년대부터 꾸준히 그림책의 장르적인 특징에 관한 논의를 하며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 왔다. 이미 1930년대부터 ‘그림책’이라는 장르 명칭을 사용해 왔고, 그림책은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토대를 형성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1980년대 서구의 그림책을 접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의 의미가 확대되었다. 1930년대부터 일관적으로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어린이가 보아도 즐겁고, 어른이 보아도 즐거운’이라는 책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로 본다면 그림책의 독자를 0~100세로 보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에서 우리는 다시 현재의 우리 그림책과 견주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독자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0~100세까지 읽는 그림책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분명 ‘어린이를 배제한’ 그림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1930년대부터 논의된 ‘어린이가 보아도 즐겁고, 어른이 보아도 즐거운’ 그림책이라는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그림책의 폭발적인 성장은 과거를 정리하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의 흐름을 남기고 있다. 그림책은 이미 10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어린이와 어른의 가교역할을 하며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림책 작가들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림책의 소재나 주제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문학·예술로서의 그림책은 전쟁, 이별, 죽음과 같이 어린이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도 장벽이 낮춰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 및 생활사 일부의 기록뿐만 아니라 소시민적인 삶의 기록이 정서적으로 따뜻하면서도 치밀한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개의 매체로 전달되는 정보의 상호작용으로 의미가 창출되는, 아주 특별한 예술 형식이다.4) 이런 점에서 그림책은 매체변환의 폭이 넓은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림책의 장르 독립은 그림책 장르적인 특징을 정리함으로써 단일의 장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장르와 통합가능한, 더 광범위한 범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림책은 대체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어린이를 배제하고 좋은 그림책으로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그림책은 다른 장르에 비해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장르임에 틀림없다. 그림책의 장르적인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서 일반 비평론에서 몇몇 개념과 용어를 차용해 올 수는 있으나 그림책의 본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림책이 하나의 분리된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림책을 특징짓는 반복적인 요소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 출판 및 만화 등을 말한다. 이에 의하면 그림책은 문학의 하위 분야에 속하는데, 그림책을 따로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의 상호작용을 통한 서사로 이루어지지만, 그림이 주를 이루는 장르이므로 서사만으로는 그림책의 특성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문학 안에서 아동문학은 소외된 장르이고, 이 안에서 그림책은 더 변방에 위치하게 된다. 그림책 진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림책의 세부 사항에 맞추어 그림책의 장르적인 특징을 정의 내리기 위해 이전의 다른 장르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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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가치 온전히 바로 세우다


한국 그림책의 질적, 양적 성장세는 나날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에 따른 작가들의 안정적 활동이나 그림책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더욱이 만화와 그림책은 삽화 즉 그림을 주요 매체로 한다는 점에서 경계가 모호하여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나 이와 관련한 연구도 미진한 상태이다. 몇 년 전 군포에서 그림책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며 한국 그림책 역사 상설전시관과 그림책 관련 분야의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지는 듯하였으나 이마저도 민간 위탁으로 전환되어 아쉬움을 더했다. 더욱이 현 그림책꿈마루는 초기부터 ‘그림책’이라는 장르로 출발하였음에도 전시 관련 실무 담당자는 만화연구가였다는 점에서 우리 그림책의 이해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아동문학에서 동시는 1926년 손진태孫晉泰의 「옵바 인제는 돌아오서요」어린이로 시작하여 1933년 간행된 윤석중尹⽯重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 이후 단독 장르로 자리매김하였고, 만화는 만화사의 정리를 기반으로 부천 만화박물관을 건립하고 다양한 지원제도를 완성하였다. 그림책은 192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의 논의가 이루어졌고, 1938년 ‘그림책’이라는 장르명을 사용한 「아기네동산」 앤솔로지가 출간되었음에도 그 자리를 온전히 찾지 못하였다. 이후 꾸준히 그림책이라는 장르적인 인식하에 우리 그림책의 성장을 담보해 왔다. 현재에는 어느 장르보다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k-그림책으로써 우뚝 서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림책은 학문적인 위치를 찾지 못할 뿐 아니라 대학에서 그림책을 전공으로 하는 과도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그림책은 제도권 밖에서만 향유되는 장르로 존재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책의 향유 주체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어린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연령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연령층이 선호하는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그림책 독자의 생태계 변화는 그림책을 읽고 자란 어린이가 성인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그림책 독자의 생태계의 변화는 그림책의 주제와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그림책 연구의 결과를 보면 교육학적인 접근, 심리학적인 접근, 문학사적인 접근, 미술사적인 접근 등 통합적인 연구보다는 일부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림책은 문학예술로서 접근해야 하며, 그림책의 개별 그림만을 연구하거나 서사만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독자의 생태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본다면 특정 연령의 독자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인 효용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림책의 가치를 온전히 바로 세우기는 어렵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 속에서 문학예술로서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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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미래로 나아가다


그림책 작가 한 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기관, 동료 작가, 평론가, 출판사, 연구자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와 관람객이 협력하는 일이 필요하다.5) 어느 한 분야의 혹은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는 한국 그림책의 미래의 성장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2025년 그림책의 해를 맞아 우리 그림책이 제대로 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림책 과거의 미래를 잇는 제도적 뒷받침을 토대로 다양한 지원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그림책의 지형을 보면 작가들의 역량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림책의 토대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에서 그림책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쌓아 놓은 작가들의 활동과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존하여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작가들의 창작의 동력에는 이전 작가들의 활동과 작품이 분명히 존재하였다. 폴리머 클레이polymer clay로 만든 인형 캐릭터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더하여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백희나 작가의 작품은 독보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비슷한 형식의 시도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인형전문가’로 불리던 이승은 작가는 소창으로 만든 인형 캐릭터를 만들어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그림책 장면을 만들어 냈고, 학전 김민기의 『아빠 얼굴 예쁘네요』 그림책에서 찰흙으로 빚은 캐릭터로 탄광 마을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이것뿐만 아니라 지금의 그림책과 견주어도 될 만큼 역동적인 타이포그래피의 활용을 놀라울 정도이다. 


현대의 시그림책은 1930년대 그림동요에서부터 시작해 1937년 유년과 1946년 우리마을, 1947년 우리들 노래에 이어 1966년 어깨동무 씨동무로 이어져 현대의 시그림책에 이른다. 동요의 심상을 삽화 하나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글과 그림의 밀착도는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현재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의 성과는 당시 한국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1982년 이원복 작가의 우수 일러스트레이션 「쥐들의 성대한 치즈 파티」에서부터 이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토대에는 그림책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기 이전부터 활동하던 1세대 그림책 작가의 노력과 그 이전 아동삽화가로 활동하던 많은 작가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는 이들에 관한 연구나 자료수집 및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학예술 행사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1) 조성순, 「한국 그림책의 오늘과 내일」, 『출판N』 VOL. 57, 2025. 1+2호

2) 「예술적이고도 건전한 것이 제일-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그림책 선택 방법」, 《동아일보》 1932년 2월 27일.

3) 「가정-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조선중앙일보》 1936년 9월 3일

4) 마리아 리콜라예바, 아동문학의 미학적 접근, 조희숙 외 옮김, 교문사, 2009, 280쪽 



★ 2025년 3월 5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세마홀에서 개최된 「2025 그림책의 해 출범식 및 제1차 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