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4

종교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저자소개

저자 · 로빈 던바
세계적 진화인류학자. 옥스퍼드 대학 진화심리학 교수로 같은 대학의 ‘사회 및 진화 신경과학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그의 주된 연구 주제는 영장류와 인간의 사회성 진화로, 특히 한 사람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지적 한계를 수치로 나타낸 ‘던바의 수’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사회적 뇌 가설, 언어 진화의 뒷담화 이론 등으로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대중 과학의 경탄할 만한 업적”(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찬사를 받은 《털 손질, 뒷담화, 언어의 진화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를 비롯해 《진화Evolution》, 《사랑에 관한 과학The Science of Love》,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 《사회성, 두뇌 진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 등 20여 권의 단독 및 공동 저서를 펴냈고, 550여 편에 달하는 논문과 기사를 발행하는 등 왕성한 집필과 강연 활동으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 있다. 1998년 영국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바 있으며, 영국영장류학회로부터 오스만힐 메달을, 핀란드 알토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영국왕립인류학회로부터 인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헉슬리 기념 메달을 수상하였다.
역자 · 구형찬
인지종교학자. 서강대학교 K종교학술확산연구소(ACKR) 연구교수. 인지과학과 진화행동과학을 통해 인류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한다. 진화의 과정이 만들어 낸 신체와 두뇌의 특징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같은 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종교학과와 인류학과의 강사이자 진화인류학실험실의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공저로 『십 대를 위한 다정한 미래과학』 『휴먼 디자인』 『감염병 인류』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 등이 있다.

머리말


역사가 우리와 함께해 온 세월만큼 종교는 인간 삶의 한 특징이었다. 민족지 기록 또는 고고학 기록에서, 어떤 형태의 종교도 갖지 않은 문화는 알려진 바 없다. 심지어 지난 몇 세기 동안 일반화된 세속 사회에도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느끼고 자기 종교의 의례를 실천하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수백 명 정도인 소규모 컬트cults부터, 수천만, 심지어 수억 명에 이르는 신자를 보유하고 모든 국가에 대표단을 둔 세계적인 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 스타일, 규모 면에서 다양하다. 일부는 불교처럼 개인주의적 태도를 취한다구원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대 아브라함 종교와 같은 일부 종교들은 적절한 의례 수행을 통한 집단적 활동을 구원으로 간주하는데, 몇몇 종교에는가령, 유대교 내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이 없다.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따르는 종교들의 총칭〕와 이슬람교 같은 일부 종교는 전능한 유일신을 믿는다. 힌두교와 신토神道, Shinto 같은 종교는 크고 작은 신들의 진정한 만신전pantheon을 가지고 있는 반면, 몇몇 종교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신도 전혀 믿지 않는다. 불교가 바로 그런 예다그러나 불교의 대부분 종파는 준-신적 존재인 보살에 대한 신앙을 허용하여 한낱 인간의 나약함을 보듬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동료 시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일부 힌두교 및 자이나교의 금욕주의자처럼 의복은 물론 일상생활의 장식조차 포기해야만 구원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 후기 로마 이집트의 아담파Adamite sect는 완전한 나체로 예식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의 스콥치Skoptsy, 문자적 의미는 ‘거세’와 같은 섹트는 더 나아가 여성의 유방과 생식기를 절단하고 남성의 음경과 고환을 모두 제거하는 것모두 벌겋게 달군 인두로 수행됨을 옹호하는데, 자신들의 몸을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의 본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것이다. 종교의 다양성은 당혹스럽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며, 오직 인간 상상력의 창의성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다.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통일적인 주제가 거의 없어 보일 정도다.


종교는 물론 현대적 현상이 아니다. 과거로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조상들이 어떤 형태로든 내세를 믿었다는 명백한 단서가 있다. 명백히 사후에 사용하도록 의도된 부장품을 동반하는 매장 풍습은 약 4만 년 전부터 점차 일반화되었다. 그중 가장 화려한 것들은 모스크바의 바로 동쪽 볼가강 상류의 숭기르Sunghir에 있다. 시기는 약 3만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덤 몇 개가 강둑의 작은 언덕 요새 근처에 모여 있다. 그중 두 개는 10세와 12세 정도 되는 아이들을 이중묘double grave에 머리를 맞대고 묻었다. 이 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의 많은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 매장지는 유난히 호화롭고 정교하다. 이는 매장 수행자들이 저승에서 아이들의 삶이 지속될 것을 믿었어야만 말이 되는 방식이다.


당시의 많은 매장지들이 그렇듯이, 아이들의 뼈는 몸 위에 뿌려진 붉은 황토로 심하게 얼룩져 있다. 그 황토는 적철광이 함유된 암석을 힘들게 갈아 만든 것이다. 이는 죽음 이후 몸에 벌어질 일에서 황토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마음먹지 않을 만큼 고된 작업이다. 게다가, 그들은 구멍 뚫린 매머드 상아 구슬 5000개로 각각 덮여 있었다. 아이들의 수의에 달아 꿰매는 작업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모양을 만들고 구멍을 뚫는 데만 수천 시간의 숙련된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각 아이들의 이마 주위에는 북극 여우 이빨 약 40개로 만든 장식고리가 있었는데, 머리띠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 상아로 만든 완장들도 있었다. 그리고 뼈로 만든 핀 하나가 목부분에 있었는데 아마도 그걸로 망토를 고정했을 것이다. 나이가 더 많은 아이남자로 생각됨의 허리 둘레에는 여우 이빨 250개에 구멍을 뚫어 만든 벨트가 있었다. 그 옆에는 상아를 깎아 만든 창 16개가 놓여 있는데 길이가 18인치에서 8피트까지로〔대략 45~243센티미터로 다양하다. 황토로 축이 채워진 인간의 허벅지 뼈, 끝에 구멍이 뚫린 사슴뿔 여러 개, 상아를 깎아 만든 원반 몇 개, 동물 한 마리가 새겨진 펜던트와 매머드 모양의 조각도 있다. 요컨대, 그 아이들은 수천 시간을 들여 만든 풍부한 부장품 꾸러미가 딸린 호화로운 옷을 입고 묻힐 정도로 깊은 애도를 받았던 것 같다. 소유물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준의 후한 대우였다. 내세에서 아이들이 그 물건들을 사용할 것으로 믿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런 매장이 내세에 대한 믿음 외에 다른 어떤 것을 반영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물론 그 증거는 간접적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 공동체의 종교적 관행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신들을 믿었을까, 아니면 심지어 이 세상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는 만유의 유일신을 믿었을까? 그들은 기도를 읊조리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는 사제들과 함께 예배를 했을까? 그들의 종교의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다. 행동은 화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대 매장은 우리가 종교를 발견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챌 것인가에 관해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한 가지 문제는 종교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지난 수천 년 동안 세계를 점유하게 된 대여섯 개 정도인 교리종교 또는 계시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세련된 신학적 교리, 기도와 희생 제의를 포함하기도 하는 복잡한 의례, 매우 특수한 문화 전통에 의해 정의되는 의식 행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종교들은 세계 무대에 늦게 등장했다. 지금은 그 수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수천 년 정도밖에 안 된 종교들이다. 현대의 모든 세계종교 중에서 조로아스터교현대 파르시의 종교, 〔‘파르시(Parsi)’는 인도 및 그 주변 국가에 사는 페르시아인을 말한다〕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1000년대기원전 2000년대일 수도 있음의 어느 시점에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 즉 차라투스트라가 창설했다고 여겨진다. 이는 또한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로서, 수많은 여타 세계종교에 이런저런 식으로 영향을 끼쳐 왔다. 이런 종교들의 문제는 우리 종이 실천해 온 종교들, 그리고 일부에서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종교들의 넓은 범위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종교의 정의는 아마도 종교학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는 주제일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계몽주의 이후 서유럽을 특징짓는 특정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계몽주의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의 장소와 신이 거하는 영적인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관점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주장한다. 많은 소규모 민족지 사회또는 부족사회〔민족지 사회란 전통적인 민족지 연구의 조사 대상인 소규모 인구 집단을 가리킨다〕에서 영적 세계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현세의 일부다. 환경의 모든 측면에 정령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령들은 벽을 통과하는 능력 혹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세계를 공유하고 우리만큼 실체적이다. 우리는 특정 문화의 신념이나 의례적 관행을 연구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라는 주장이 있다. 각 문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 문화의 종교가 다른 문화의 종교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찰하고 논평할 수 있고 어쩌면 감탄할 수도 있지만, 결국 가벼운 여행기 이상의 것은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문화 관광객의 입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견해로 보인다. 그것은 시작해 보기도 전에 그 현상을 탐구할 가능성 자체를 좌절시킨다. 그 견해는 결국 비생산적인 유아론solipsism으로 가차 없이 이어진다. 반면에, 과학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취하게 해 준다. 해석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더라도, 이는 결국 추가적인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수정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오직 관찰과 우리의 이론 및 신념을 경험적 사실에 비추어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요컨대, 많은 학자들이 아브라함 종교의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써 인류 종교경험의 풍부함을 많이 간과했다는 말과, 종교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사실, 많은 현실 세계의 현상들이 그렇듯이, 종교도 단지 경계가 다소 불분명한 것일 뿐이다. 철학자들은 이런 다소 모호한 종류의 정의들이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참’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정의의 몇몇 부분은 모든 사례에 적용되지만 각 사례에 반드시 동일한 부분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따르기에 괜찮은 모델이다. 정의의 자질구레한 세부 사항에 관한 길고 지루한 논쟁에 빠지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도 좋다. 따라서 무엇이 종교를 구성하는지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넓은 관점을 취하고, 그 관점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보자.


종교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를 보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마도 공정할 것이다. 하나는 19세기 사회학의 위대한 창시자인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에게서 나온 것으로, 종교는 도덕공동체, 즉 세상에 대한 일련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수용하는 통합된 관행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인류학의 관점을 취하며, 대다수 종교에서 의례를 비롯한 기타 관행이 수행하는 중요한 실제 역할을 강조한다. 즉 종교란 사람들이 행하는 어떤 것이다. 다른 견해는 좀 더 철학적인 혹은 심리학적인 접근을 취한다. 종교는 한 공동체가 증거의 요구 없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포괄적인 세계관, 즉 신념의 집합이다. 즉 종교란 한 집단의 사람들이 믿는 어떤 것이다.


이들은 극과 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두 가지 접근방식이 모두 옳다고 보고 믿음과 의례가 종교의 상이한 차원들을 나타낸다고 가정한다. 개별 종교는 두 가지 차원이 모두 높거나, 하나는 높지만 다른 하나는 낮거나, 둘 모두 낮을 수 있다. 한 정의가 맞고 다른 정의는 틀렸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단지 두 정의가 다차원적 현상의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두 가지 정의는 이전에 종교사학자들historians of religion이 끌어낸 구분을 반영한다. ‘애니미즘적’ 종교그 기원이 깊은 시간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최초의 보편적 종교 형태라고 불리던 것과 지난 몇천 년 동안 출현한 교리종교 또는 세계종교 사이의 구분이다. 사실상 그것은 의례와 믿음의 구분, 즉 행위와 생각의 구분이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것을 ‘개인 종교personal religion’와 ‘제도 종교institutional religion’라고 불렀다. 그러나 두 견해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전부는 아닐지라도 종교 대부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갖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는 영적 존재들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에 관심을 갖고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이 거주하는 일종의 초월적 세계관찰 가능한 물리적 세계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겠다. 그 정의는 공식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불교 같은 종교를 포함해 모든 세계종교를 포괄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다. 그것은 우주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비한 힘을 믿는 뉴에이지운동과 같은 비주류 신앙 체계pseudo-religions에도 똑같이 잘 맞는다. 만약 이 정의가 훗날 실제 종교가 아니라고 판정할 수 있는 모호한 활동을 포함한다고 해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단 실체를 파악하고서 이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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