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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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공기
새벽 4시 40분,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뜬 지는 이미 6~7분 정도 됐다. 진작부터 교회 스피커에서 익숙한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고, 내가 지내는 데서 키우는 개는 밤새도록 하이에나를 향해 짖어댔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에는 애초에 잠이 잘 오지도 않는다. 러닝쇼츠는 이미 입은 상태였고,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나머지 트레이닝복을 껴입는다. 5분 뒤 하일리에와 파실이 내 방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추위를 막으려 후드를 뒤집어쓰고 우리 그룹의 훈련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피곤하죠?” 나는 암하라어로 파실에게 묻는다. “하나도 안 피곤해요!” 파실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그가 피곤하다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칠흑 같은 거리의 인파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란다. 암하라어로 새벽은 ‘고흐’라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마치 누가 자기 귀에 대고 이 단어를 읽는 힘껏 외치기라도 하는 듯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는 것 같다. 일찌감치 자욱한 먼지를 해치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 시내행 미니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무리가 보인다. 미니버스는 새벽 4시쯤부터 운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피아자’나 ‘아랏킬로’ 같은 익숙한 행선지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빛바랜 아스널 셔츠를 입은 아이가 미니버스 문밖으로 몸을 내밀며 영어로 말을 건다. “어디 가세요?” 내가 “엔토토산山”이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미련 없이 버스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버스는 이미 꾸벅꾸벅 조는 선수들로 가득하다. 후드가 달린 트레이닝복을 입은 선수도 있고 전통 의상인 샴마를 두른 선수도 있어, 꼭 수도사와 권투선수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너나없이 모두 훈련 전에 몇 분이라도 더 자려는 모습이다. 보조 코치 겸 보조 에이전트인 하일리에는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운전기사에게 선수들을 태울 위치를 알려준다. 선수들은 조용히 고된 하루를 준비하는 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어두운 길가에 나란히 서서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희미한 새벽빛 아래 이따금 달리기를 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차량이 많아지기 전에 도로에서 훈련을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헤드라이트 불빛과 뿌연 배기가스 사이로 찰나의 유령처럼 나타났다 순식간에 다시 어둠에 묻힌다. 버스는 아직 캄캄한 마을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오른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서서히 동이 트고, 대시보드 위에 어수선하게 놓인 기독교 관련 물품과 앞유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 두 장이 드러난다. 왼쪽 스티커는 흰 비둘기, 오른쪽 스티커는 불룩한 나이키 스우시 로고다. 버스는 아스팔트 길에서 울퉁불퉁한 돌길로, 다시 흙길로 바뀌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기의 출발점을 향해 오른다. 그러다 길이 너무 좁아져 더 이상 차로 갈 수 없을 듯한 길목에 이르러 멈춰 선다. 다들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가운데 앞좌석에 앉은 메세렛 코치가 세 개의 스톱워치를 초기화하고, 숫자가 빼곡한 종이에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적어 넣는다. 마침내 코치는 뒤를 돌아보고, 모두 버스에서 내리라는 지시를 내린다.
오전 6시, 버스에서 내려 입김이 옅은 안개로 변해 산 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뒤로 우리가 곧 달릴 반쯤 어둑한 길이 더 흐려 보인다. 초조한 마음에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공기가 얼마나 더 희박해졌는지 느껴본다. 버스도 이곳까지 올라오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 터였다. 내가 아디스아바바이하 ‘아디스’에서 지내는 해발 2500미터 지역보다 몇백 미터는 더 높은 곳이다. 몇 주 전 에티오피아행을 계획하고 있을 때 하일리에에게서 문자가 왔다. “엔토토산은 무조건 가야 돼요.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베를린에서 압도적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이 산에 있어요.” 하지만 이 ‘비밀’은 아디스에서 그다지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훈련했던 숲에서 만난 많은 선수가 이미 어딘가 신화적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산에 대한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나누고 있었다. “지금 여긴 해발 3800미터예요.” 메세렛 코치가 말한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셔도 돼요.” 나는 그렇게 높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아니, 애초에 믿고 싶지 않았다. 설마 우리가 에베레스트산 중턱씩이나 되는 고도에 있으면서 더 위로 올라가겠단 건 아니겠지?
결국 정확한 고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고도에 대한 ‘믿음’이다. 높은 고도에서 달리는 건 폐활량에 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젊은 선수들이 꿈을 키우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이곳은 공기가 특별해요.” 아세파가 버스에서 내려 허리를 펴며 말한다. 달리기 선수로서는 이례적으로 건강한 체격을 지닌 아세파의 별명은 강철이란 뜻의 ‘비레투’로, 하일리에는 이를 ‘아이언맨’으로 통역한다. “헤모글로빈에 좋아요.” 그때 테클레마리암이 말했다. 헤어라인이 점점 뒤로 물러나 머리를 너무 많이 쓰는 탓 아니냐는 농담을 듣곤 하는 친구다. 그가 영어로 이런 단어를 말하는 걸 보고 놀란 기색을 보이자, 테클레마리암이 덧붙인다. “헤모글로빈, 아시죠?” 나는 잘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냥 ‘아주’ 천천히 달리면 돼요. ‘특별한’ 공기가 있는 데니까요.”
엔토토산은 잉글랜드의 최고봉보다 세 배 이상 높은 고도에 위치한다. 달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두통이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높은 고도로, 실제로 나는 손가락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엔토토산은 19세기 말 황제 메넬리크 2세가 아디스를 세운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너무 추워서, 얼마 지나지 않아 메넬리크 2세의 황후가 조금 더 따뜻하고 온천이 있는 계곡으로 궁전을 옮기자고 주장했다. 엔토토산은 호주에서 들여온 유칼립투스나무가 빼곡히 심겨 있어 ‘아디스아바바의 허파’로 불리지만, 산소가 풍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호흡기에 부담이 없을 거예요.” 메세렛이 말했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늘색 아디다스 재킷을 입었고, 후드 끈을 턱 밑에서 단단히 조여 추위를 막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그가 발끝으로 서서 온몸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한다. “내쉬어요.” 이번에는 폐에서 공기를 힘껏 내보내며 말을 잇는다.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그러더니 내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여준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버스 안엔 눈에 띄게 망설이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비좁은 좌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팔다리를 풀기까지 다들 꽤 시간이 걸렸고, 그 이름이 평소에 보이던 특유의 활발함 대신 졸음 섞인 긴장이 느껴졌다. 에티오피아인들도 나처럼 이 산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메세렛이 이번 메인 그룹 훈련은 1킬로미터에 3분 50초 페이스로 70분간 달린 뒤, 200미터 언덕 스프린트전력 질주를 12회 반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런데 마이클은 오늘 언덕 스프린트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도 그게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냥 90분 동안 가볍게 뛰세요.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을 거예요.” 메세렛이 걸어가는 길에 덧붙인다. 산 중턱의 어스름한 길 위에서, 그것도 아직 고도에 제대로 적응 못한 상태에서,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모호한 말이다. 나는 테클레마리암이 메인 그룹 대신 나와 함께 달리겠다고 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폐를 가진 60명이 내뿜는 입김으로 창문이 뿌옇게 서린 버스가 정차한 곳은 숲으로 둘러싸인 빈터 가장자리였다. 테클레마리암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다른 선수들 뒤에서 숲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달리기 시작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근육이 주변 공기보다 조금 더 빠르게 따뜻해지면서 몸이 슬슬 깨어나는 익숙한 감각 덕분에 조금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 한 달리기 중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하는 것이지만, 아침 달리기를 시작할 때의 익숙한 느낌은 다르지 않다. 이 점이 낯선 환경에 놓인 나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팔다리가 한층 더 풀리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테클레마리암이 이끄는 느긋한 템포에 걸음이 맞춰진다. 그러나 이내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느린 속도인데도 폐가 무리한다는 게 느껴진다. 호흡기에 부담이 갈 거라는 메세렛의 말은 사실이었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 동원되는 근육과 호흡의 메커니즘이 갑자기 선명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너무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당황스럽고 놀랍다. 내 몸이 산소 부족 상태를 감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인 것 같아서, 나는 메세렛이 알려준 대로 폐를 채워 깊이 채우려 노력한다.
이제 산길을 따라 늘어선 유칼립투스나무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비치기 시작하고, 러닝화가 땅에 부딪히는 규칙적인 소리만 들린다. 그러다 버스 안에서 우리가 언제 침묵을 했느냐는 듯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활기찬 수다가 시작된다. 우리 바로 앞의 메인 그룹 선수들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아직 달리기 강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라가는 흐릿한 길 위쪽으로 뻗어 있었고, 연달아 나타난 두 개의 언덕길이 각각 10분씩 이어졌다. 나무가 갈수록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나치게 고르고 정렬한 듯한 모습이다. 급기야 나무가 드문드문해지더니, 이제 벌거벗은 달 표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에티오피아의 방투산’이라고나 할까.
산소 부족 탓에 사고가 명료하지 않고 생각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그러는 사이, 길은 이제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의 내가 자란 곳 근처에 있는 햄스터리 숲을 떠올리게 한다. 동글고 거대한 유리 덮개 안에 갇힌 산소가 부족해진 숲을 상상한다. 처음에는 산의 기복에 따라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낮아지던 길이 산의 경사면을 따라가며 한층 예측하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경로로 바뀌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공기가 희박한 환경에서 피로가 쌓이자 다리로 전달되는 산소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데도 말이다.
앞에서 달리던 이들이 두세 명씩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페이스를 높이기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진 듯 하나둘 몸을 낮추고, 그러자 간격이 벌어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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