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는 어떻게 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키우며, 사회를 바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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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과학 연구는 시대와 떨어져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렇듯, 과학도 사회적 필요에 따라 탄생했고 또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사회의 후원이 없다면 연구를 시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이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곧 과학자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과학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까?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과학은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또한 오늘날 과학의 연구 대상은 중력파, 초끈 이론, 단백질 접힘, 메타물질, 지구시스템 등 일상을 훌쩍 벗어난 것들이다. 거기서 뭔가 발견한들, 당장 내가 먹고사는 데 뭐가 달라질까 싶다. 이렇듯 내가 지금 있는 위치에서 과학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거대한 역사의 서사로 보면 둘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 현대 인류문명은 과학의 진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하지만 이렇게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서 보면 과학과 사회는 서로 떨어져 있다.
15년 차 연구소 직원인 나도 이 문제를 늘 느낀다. 연구소의 운영에는 많은 물적, 인적, 제도적 자원이 필요하다. 즉 연구소는 사회의 탄탄한 지원이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연구소와 사회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연구소는 시민들의 시야 바깥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몇 년 전 그 간극을 실감한 일이 있었다. 대전역에서 택시에 올라 내가 근무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까지 가자고 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님이 반문했다.
“어디라고요?”
“도룡동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이요.”
“도룡동에 그런 데가 있었나?”
“예전 엑스포과학공원 자리에 있어요.”
“아~ 어딘지 알겠다.”
기사님은 그제야 수긍하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쓴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엑스포과학공원 그 좋은 땅을 말이야, 원래 롯데가 들어오려고 했던 거 알아요? 거기에 왜 엉뚱하게 연구소를 지었는지 모르겠어. 뭘 한다는 건지… 쓸모도 없는걸.”
내가 그곳 직원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사님의 비난은 계속되었다. 나는 적당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그분 생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공공부지가 화려한 상업 시설로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연구소의 직원인 나로서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님의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연구소는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 비슷한 일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인들은 문과 출신인 내가 연구소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의아해했다. “문과가 연구소에 있어?”라는 반응부터, “거기 사람들은 뭐 연구해?”, “그 연구해서 어디다 써?”까지 질문이 이어진다. 심지어 “세금 많이 쓰는 데 아니냐?”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연구소는 낯설고, 어렵고, 불투명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다수 국민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공감하는데도 이렇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과학기술 투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에 하나다. 그런데 그 일에 세금을 내는 국민은 정작 연구소가 뭘 하는지 모르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연구소 내부에 있다. 연구소가 그만큼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할 언어도 만들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 계기는 2012년 IBS에 입사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IBS는 설립 초기의 백지상태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떤 연구소를 만들어 나갈지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그때 내가 맡은 업무는 해외 선진 연구소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특히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일본 이화학 연구소, 미국 에너지부 국립연구소가 주요 대상이었다. 그런데 연구소들의 설립 배경과 성장 과정을 살펴볼수록, 이 작업이 단 순한 사례 조사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연구소들은 과학의 연구 공간을 넘어, 국가에 혁신을 일으키는 거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과학은 추상적 지식이 아닌 전략적 자원으로 존재했다. 비유하자면 연구소란 지식을 바탕으로 패권국가로 전환하는 거대한 엔진인 셈이다. 이 점은 역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국가의 재건을 이끌었다. 독일은 이미 20세기 초반 세계 과학을 선도했고, 그 중심에 카이저빌헬름협회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정치와 과학의 부정적 결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전후 막스플랑크협회로 새출발하면서는 철저히 자율적, 분산적인 구조를 택했다. 협회 산하 연구소들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연구에만 장기 집중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성과는 눈부셨다.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31명이 배출되었다. 평균으로 보면 3.6년마다 한 명씩인데, 즉 막스플랑크협회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는 것보다 자주 노벨상을 받는 셈이다. 이러한 최고 수준의 역량은 1990년 독일 통일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동·서독의 격차를 좁히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집단이 막스플랑크협회였다. 몇 년에 걸친 준비와 투자로 동독에도 서독과 같은 수준의 연구소들이 들어설 수 있었다. 이를 중심으로 동독 지역의 경쟁력이 되살아났고, 독일은 명실상부한 통일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도 국가 전략 연구소로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1917년 설립 이후 서양을 따라잡자는 목표에 따라 일본의 과학을 진두지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에는 해체 위기와 재정난 속에서도 연구를 이어갔고, 1949년과 1965년 일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룬 과학의 성취는 국민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현재 이곳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을 넘나드는 독특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전국에 구축된 중이온가속기, 방사광가속기, 슈퍼컴퓨터 같은 대형 연구시설이 과학자들을 모으는 거점으로 기능한다. 일본의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혁신은 대학과 기업 연구자들이 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가능했다. 2016년에는 10여 년의 도전 끝에 113번 원소 니호늄을 발견했다. 이로써 일본의 국호를 과학 교과서에 새겨넣는 위업까지 이루었다.
미국은 연구소들이 발견한 지식을 바탕으로 패권국가가 되었다. 현재 에너지부에 소속된 국립연구소들의 초창기 임무는 원자력 개발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에너지는 무기와 동의어였던 탓이다. 미국은 이렇게 개발한 원자력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전후 평화의 시대에는 전혀 다른 활용 방향이 요구되었다. 이때부터 국립연구소들은 원자력을 산업, 에너지, 의학 등에 적용했다. 또한 대체에너지, 기후, 신소재, 생명공학 등 민간이 감당하기 힘든 주제로도 연구를 확장했다. 미국은 한편으로 항공우주국, 고등연구계획국 등을 설치해 우주 개발과 정보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고등연구계획국의 아파넷은 인터넷의 시초가 되었고, 항공우주국의 아폴로 계획은 달 착륙이라는 인류 과학의 위대한 승리를 이룩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연구소는 필수 불가결한 제도였다. 국가의 발전 전략을 설계·지휘하는 브레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일반 국민에게도 존재가 익숙할 수밖에 없다. 맨해튼 계획을 성공시킨 로스앨러모스연구소장 오펜하이머는 국민적 주목과 존경을 받았다. 또 일본에 첫 노벨상을 안기고 국호를 화학 주기율표에 새긴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인의 자긍심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연구소 운영의 역사가 짧고, 과학 연구가 주로 정부 관료 주도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을 대상으로 연구소 이름이나 대표적 성과를 물어본다면,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발전 전략의 수립에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게 되었다. 어쩌다 토론이 벌어져도 당사자 외에는 관심이 없는 채로 진행되곤 했다. 이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2023년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 논란이었다. 당시 정부는 2024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16.6퍼센트 삭감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무려 33년 만의 삭감이었고, 약 5조 3000억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연히 이 조치는 연구 현장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과학기술계는 반발했고,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담론의 수준은 실망스러웠다. 정부는 ‘비효율’, ‘카르텔’이라는 원색적 단어를 앞세워 과학기술을 매도했다. 삭감의 합리적 근거를 대기보다는 일단 깎고 보자는 고압적 태도로 일관했다. 야당은 예산 삭감을 반대했지만, 역시 깊이 있는 정책적 고민은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이 실책을 구실로 정권에 타격을 입히는 데만 관심을 두는 듯했다. 결국 전문성 있는 정책토론보다는 정치적 공방만 남았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의제들 ― 한정된 예산의 전략적 배분, 선진국형 연구제도 도입, 대학과 연구소의 협력,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활용 등 ― 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연구소의 역사와 기능, 그리고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갖췄다면 어땠을까. 원자력, 반도체, 인터넷, 백신처럼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연구소의 경험을 떠올렸다면, 논쟁의 초점은 단순한 예산 삭감 여부가 아니라 미래의 전략에 맞춰졌을 것이다. 연구소의 존재 가치는 바로 이러한 전략을 가능케 하는 집단지성에 있다. 연구소는 ‘돈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 해결 능력’ 그 자체다.
연구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해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인구절벽, 저성장, 국제적 기술경쟁, 기후변화, 신종 감염병 등과 같은 미증유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연구소야말로 이를 해결할 ‘오늘의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사회의 과제를 과학의 논리로 전환하고, 과학의 성과를 사회의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연구소는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학을 설명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시민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연구소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살펴본다. 1887년 독일 제국물리기술연구소부터 2022년 미국 항공우주국에 이르는, 약 135년에 걸친 연구소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엮었다. 1887년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근대적 국가 연구소가 탄생한 상징적인 해이기 때문이다. 반면 결말을 2022년으로 맺은 것은 국제협력이 활성화된 연구소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다. 즉 국가가 산업화의 기반을 다진 19세기 말 연구소에서 출발해,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21세기 초 연구소까지 아울렀다. 이로써 연구소가 어떻게 시대와 과학의 발전 속에서 변화·성장했는지 한눈에 조망하고자 했다. 이 기간 연구소들은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냉전기의 이념 경쟁, 전후의 경제성장, 그리고 현대의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무대마다 등장했다. 요컨대 연구소의 역사는 곧 근대 이후 인류가 과학을 통해 전진한 궤적과 맞닿아 있다.
특히 세 가지에 서술의 중점을 두었다. 첫째, 연구소들의 역사를 단순한 기관사機關史를 넘어 세계사와 과학사의 맥락으로 배치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연구소의 역할을 사회적 역사 속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했다. 각 연구소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당시 국가와 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소의 발전사를 당대의 과제들과 함께 살펴보면, 사회와 과학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과학자의 경영자적 면모에 주목했다. 이 책에는 막스 플랑크, 어니스트 로런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니시나 요시오 등 현대과학의 발전을 이끈 거장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학문적 업적은 물론, 연구소장으로서의 리더십도 비중 있게 서술했다. 이들에게는 과학자이면서도 과학 제도의 근본을 바꾼 혁신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플랑크는 극도의 정치적 불안 상황에서도 과학의 자율을 지켰고, 로런스와 오펜하이머는 거대과학 프로젝트를 이끌며 조직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보어는 연구자들의 협력과 소통을 활성화해 양자역학 혁명을 이끌었고, 니시나는 후발 국가에서도 과학의 성장이 가능함을 보였다. 이처럼 뛰어난 과학자 겸 경영자들이 과학 제도의 혁신에 기여한 점들을 상세히 다뤘다. 셋째, 역사에서 시사점을 찾는 해석적 관점을 분명히 했다. 나는 과학기술정책 업무를 하면서, 세계 연구소의 경험에서 우리의 진로를 모색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역사 속 연구소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여 현재의 과학기술 정책에 주는 함의를 찾고자 했다. 즉 이 책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우리 현실에 적용해 보려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이러한 시각이 드러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과학기술이 나아갈 바를, 바로 지금의 현실과 연결하여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생물학자 존 마이클 비숍은 “현대의 연구소는 크고 복잡한 사회 유기체”라고 했다. 즉 연구소란 물리적 공간을 넘어, 과학이 제도 속에 뿌리내리고,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기 위해 구성된 사회적 실체라는 의미다. 비숍의 통찰은 이 책이 그려내려는 연구소의 다층적 의미 ― 사회와 과학이 어떻게 연결되고, 과학자는 어떻게 조직을 설계하며, 제도는 어떻게 시대정신을 구현하는가 ― 를 함축한다. 요컨대 연구소는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무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 역동적인 무대에서 펼쳐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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