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9

조선의 유학은 근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저자소개

저자 · 백승종
독일 튀빙겐 대학교 문화학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를 비롯해,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일 보훔 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를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대우교수로 있다. 저서로 『역설, 백승종의 역사 에세이』, 『금서, 시대를 읽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등이 있다.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학술상)과 2012년 한국출판평론상(학술상)을 받았다.


머리말


유교적 산업사회


이 책은 유학儒學의 영향에 힘입어 현대 한국이 독특한 산업사회가 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유학이란 곧 신유학新儒學으로 흔히 성리학性理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다시피 유학은 산업사회와는 다른 목표를 가진 이념이자 사상이요, 실천 덕목이었다. 그러나 유학을 바탕으로 운영된 조선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바로 그 내공 덕분에 지난 1세기에 걸쳐 한국 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산업사회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한국은 “유교적 산업사회”이다. 필자는 유학이 근대 서구 문명과 만나 다양하게 융합하이브리드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혹자는 유학이 지나치게 미화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과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그 일에 종사하는 역사가는 과거에 관한 총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 이 책은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있지만, 한 사람의 역사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정을 거듭한 사색의 지도이다.


유학, 산업사회와는 전혀 다른 길


조선의 성리학 곧 유학은 산업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은데,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유학을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은 산업사회가 되려야 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첫째, 유학은 산업사회의 기본 원칙을 부정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상업과 수공업을 “말업末業”이라며 죄악시했다. 즉,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수공업자와 상인이 취하는 이득을 유학자들은 불로소득이라며 비판했다. 그들은 농민이 땀 흘려 얻은 농산물과 농가 부업으로 발생한 약간의 이익만을 정당한 소득으로 인정했다. 기계까지 동원한 대량생산 체계란 조선의 지배층이 용인할 수 없는 생산방식이었다.


둘째, 조선의 유학자는 국가 경제를 성장이란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 경제란 금검절약을 실천해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유학자들의 오랜 신념이었다. 원래부터 재화란 한정된 수량만 존재하므로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었다. 따라서 소비사회를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경영 철학을 수긍할 수는 없었다.


셋째,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사회는 부국강병을 지향했으나, 이 또한 유학자의 정치 사회적 이상과 충돌했다. 남의 나라를 빼앗아 식민지로 삼으면서까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라는 것이 유학자들의 판단이었다. 더구나 그런 목적을 위해서 군사적 침략까지 서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도無道한 짓이었다. 유학자들의 눈에 비친 서구 산업사회는 야만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지배층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유학을 존숭尊崇하였다. 따라서 위에 서술한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조선은 산업사회를 지향할 이유가 없었다. 서구의 산업사회와는 화해할 수 없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유학과 서구 근대 문명의 “하이브리드”


유교적 세계관을 고집하다가 조선은 끝내 망하고야 말았다. 힘이 부족해 도저히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다. 그러나 그 참담한 상실 이후, 사람들의 인식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유교적 가치와 서구 자본주의 문명이 서로 충돌하는 대신, 점차 융합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하듯, 실로 눈부시다. 아이러니하게도, 문명 간 융합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수용할 준비는 이미 우리 안에 잠재해 있었던 셈이다.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이 융합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은 고도로 표준화된 사회 체제를 바탕으로,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했다. 일례로, 조선의 모든 학교는 표준화된 유학 서적을 학습함으로써 과거시험을 준비했다. 더구나 서당과 향교와 서원에서 표준화된 교육을 받은 학생 수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교육 내용은 서구 산업사회와 달랐으나, 수업 방식부터 학습자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표준화되어 있었다. 이처럼 교육 전반에 걸쳐 고도의 표준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일단 산업화가 시작되기만 한다면 조선 사회는 신속히 변화할 수 있는 내공이 쌓여 있었던 셈이다.


둘째, 이미 고려 후기부터 인쇄술이 발전하여 조선은 그 나름으로 지식혁명을 경험한 사회였다. 서구 산업사회와 마찬가지로 지식혁명을 체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다시피 16세기에 서구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등 일련의 지식혁명을 겪었다. 금속활자의 등장에 힘입어 종교개혁이 가능했고, 이로써 가톨릭교회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했다. 그 결과 서구 사회에서는 점차 연구의 자유가 보장되어 마침내 과학혁명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통해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조선에서는 종교개혁이나 과학혁명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서구보다 먼저 인쇄술에 혁신이 일어나 다종다양한 도서가 간행되었으며, 그 바탕 위에 불교와 유교 문명이 크게 융성했다. 이는 조선식 지식혁명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만일 조선사회에서도 산업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분명히 설정되었다면, 단기간에 실현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 조선은 유학 연구와 실천을 최고의 과제로 삼았다. 오늘날 한국 발전의 토대를 만든 한글 역시 유교 문명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었다. 15세기 초반,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를 창제함으로써, 장차 한국 사회에서 문맹을 해소하고 지식을 널리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글이란 문자 체계는 디지털 문화의 급속한 발전을 촉진하여 한국 문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한류”의 유행을 낳았다. 조선 유학은 계층의 장벽을 넘어선 소통과 교육의 발전, 지식의 축적을 이끌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셈이다. 요컨대 조선의 유학자들은 산업사회를 이상으로 삼은 적도 없었고, 여러 측면에서 오히려 그와는 대립적이었다. 하지만 유교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결과, 산업사회로 전환할 준비는 예상외로 탄탄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한국이 산업사회를 국가적 목표로 설정한 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런데 불과 반세기 남짓 만에, 한국은 세계 유수의 고도 산업 사회로 도약했다. 유교 문명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유교적 산업사회”의 특징


현대 한국 사회에도 유학의 가치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이라는 산업사회는 서구는 물론이요, 이웃인 일본이나 중국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유교적 산업사회”라고 보아도 좋겠다. 한국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삼아 5백 년 동안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그 가치를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일반 백성들까지 평민 지식인으로 성장하며 정치·사회·문화의 주체로서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 시민사회의 높은 참여 의식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현대 한국에서는 시민의 정치 참여가 서구와는 비할 수 없이 활발한데, 이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물론 시민의 적극성은 정치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처럼 역동적인 에너지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표현을 낳게 했다.


둘째, 현대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다른 산업사회와는 한 눈에 구별되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거대 기업을 이끄는 자본가라 할지라도 생활 태도가 매우 검소해 “유학적 금욕주의”를 연상하게 할 정도이다. 한국의 자본가는 회사를 운영하는 근본 목적을 서구의 자본가와는 달리 상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한국의 재벌은 자본 축적과 이익의 극대화를 지상 목표로 삼기보다는 수만 명의 생계가 달린 회사를 유지하고, 기술력을 향상하는 것 자체를 경영의 목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 시민들의 정서도 다분히 유학적이다. 그들은 유학의 이상인 “대동大同”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힘써,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보다 함께하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하므로, 설사 살벌한 재벌이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유교적 자본주의 사회”이다.


셋째, 한국인은 유학을 통해 무슨 문제든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신념을 키워왔다. 그러므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한때는 폭력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대립을 해소하려 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한국인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그러했듯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있다. 예컨대 서구 산업사회에서는 집단 시위를 벌일 때면 폭력을 동반 하는 일이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백만 시민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라도 평화롭게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유학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 책의 내용


오늘날의 한국이 “유교적 산업사회”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5개 장으로 편성했다. 1장에서는 서구의 산업사회와 그 이념에 해당 하는 개신교Protestant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개신교는 전반적으로 서구의 근대화 또는 산업사회의 도래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특히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개혁주의 사상이 공헌한 바가 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양자의 관계를 부정하는 흐름도 만만치 않으나, 그렇게 간단하게 취급할 일이 아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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