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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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시간의 알갱이들이 공간을 가른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모래알
압축된 우주가 블랙홀을 왕복한다
선사의 바닷가에 부서져 내리던 고독한 빛
끊어진 유전자 정보들이
바람도 없는 사막을 창조한다
심해의 양수가 증발한 사막에는
입김이 배어들지 못해
오랜 잠결에 조각난 기억들만 유영한다
압축이 풀리며 바람의 씨앗이 눈을 뜨면
바다에 부는 사막의 폭풍
양수가 터지고 시간의 알이 깨어나
다시 붉게 일렁이며 침전하는 산맥
풍화하는 나의 분골은
어느 시계 속 입자로 흘러내릴까
해바라기
당신과 나 사이에는 늘 바람이 불었어요
때로는 비가 왔지요
먹구름 속에서도 흔들리며 자랐어요
어쩌면 너무 먼 곳을 바라보는지도 몰라
어둠 속에서 그만 고개를 꺾을 때도 있었지요
바다에서는 아직도 파도가 일렁이고 있어요
출렁임이 뿌리를 타고 전해올 때면 멀미가 나서
그만 주저앉고 싶어져요
하늘의 좌표를 좇던 레이더는
초점을 잃고 날개를 접지요
누군가는 기다림에 지쳐 쓰러졌다더니
누군가는 풀밭에 목을 떨구었다느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만 키를 낮출까 생각도 하죠
그럴 때는 또 다른 바람이 은밀히 암호를 전해 주고 지나가지요
바람에 숨겨진 양분이 그리도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씨앗이 까맣게 여물 때까지……
부질없이 전송했던 메시지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지
흑점이 하나 둘 내려와 박히도록 당신을 우려먹고 있어요
당신은 그렇게 멀리 있었던 것만은 아니군요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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