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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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담 크루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한입 베어 물면 버터 향이 입안에 퍼지고, 부스러기는 겹의 바깥으로 바스스 쏟아져 내린다. 당신은 이미 어디에든 속해 있다.
1
“제 아버지는 한때 수재였습니다. 그가 서울대에 입학하던 해, 인구 십만의 고향 도시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그 해 그 도시의 서울대 합격자는 총 세 명이었는데 그중 여학생 한 명이 이듬해 여름 산에서 실족사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타까움이나 회한, 애도 같은 감정은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강조하고자 할 때 그는 그 불행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려면 아예 그런 일을 유발할 만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저를 데리고 뒷산이라도 올라갔다 오라고 하면 그 사고를 잊었느냐고 대꾸하는 식이었습니다. 기어이 어딘가에 서 핑계를 훔쳐오는 사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고 그것이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결혼과 함께 아버지는 고시 준비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필생의 꿈을 타의에 의해 접은 상실자 역할에 몰두했습니다. 직장에 들어갔다가 사소한 일로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패턴도 그 역할의 일부였을 겁니다.
어머니 친척의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다닐 때 매주 한 번씩 전 직원이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를 쏟아내면서 모욕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단어를 제가 처음 들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딴 것들과 내가 왜. 다 너 때문에. 제 귀에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까마귀의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어머니가 준비해둔 도시락을 현관 앞에 두고 갔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것을 발견하고 어머니는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도시락통을 들어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완전히 부서져버리기 전에. 저는 거기 남았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실패입니다.
아들은 원래 아버지에게 속하는 거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실패는 그의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제리는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여간해선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분했다.
2
난데없이 제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실패담 말하기 크루의 유일한 삼십대 회원이자 ‘젊은이’였다. 젊은이, 라는 고색창연한 호명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물론 농담이었지만 순도 백 퍼센트의 농담인 것만은 아니었다. 왁자하게 함께 웃다가 문득 “늙은이들 틈에서 괜히 고생이 많아요”라고 툭 건네받은 한마디에 마구 도리질을 치고 있으면 내가 갑자기 다정한 조직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모임의 멤버들은 모두 90년대 초중반 학번이었고, 나와는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차이가 났다. 기본적으로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식당의 좌석을 정하거나 메뉴를 고를 때 자연스럽게 ‘막내 먼저’라며 배려해주기도 했다. 삼십대 중반에 막내라니.
성지연은 모임 다음날이면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불편한 건 없었나 해서요.
—그럴 리가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혼자가 어색하면 친구를 데려와도 좋다고 성지연이 말했을 때 나는 거듭 사양했다.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 없는 막내 포지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성지연은 나를 그 모임에 초대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약 사 년 전이었다. 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해였다.
꽤 규모가 큰 로펌에서 의무 수습기간 육 개월을 보냈다. 로스쿨 시절부터 선망하던 곳이었다. 운이 좋았다. 수습기간이 끝나갈 즈음 대표 변호사 중 하나인 원대표가 수습 변호사 네 명 모두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비서에게 전달받은 주소는 종로구의 한 주상복합건물이었다. 수습 계약 종료를 앞둔 시기. 금요일 근무 외 시간에 자기 집으로 부르는 건 권력 남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비서가 보낸 메일에는 ‘당연히, 자유롭게 참석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이, 다음 줄에는 ‘알레르기 및 기타 사유로 드시지 않는 식재료가 있으면 사전 고지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수습 변호사 단톡방에 ‘부담스러워 죽겠다’고 써 올린 사람은 민이었다. 육성으로 들으면 진짜 투덜거림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겠지만 문자로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민의 말에 공감하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게요.
나도 소심하게 대답했다. 홍이 꽃다발과 케이크를 사자고 제안했다. 윤이 맞장구치면서 역시 고전적인 품목이 가장 낫다고 했다. 와인까지 있어야 3종 세트 완성이라고 부연하자 홍이 대꾸했다.
—와인도 너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잘 모르지만, 그런 분들은 하이엔드급만 드시지 않을까요. 혹시 와인에 대해 잘 아는 분 계실까요?
비싸서 안 된다는 뜻이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이런 완곡어법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느는 것만 같았다. 예의바르게 돌려 말하면서 정곡 찌르기. 공격적이지 않고 남 신경 거스르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교육 업체가 나만 모르는 곳에서 성업중인지도 몰랐다.
—하긴 너무 좋은 술 들고 가면 괜히 건방져 보일 수도 있을 듯요.
—그럼 꽃 어디서 할지 의견 주세요.
역시 그들은 결정이 빨랐다. 누군가 P호텔 플라워 숍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다른 누군가가 근방에서는 거기가 제일 괜찮더라고 호응했다. 그런 정보를 다들 어떻게 알고 있는지 나는 종종 의아했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 존재했다.
—설마 홈 쿠킹은 아니겠죠? 부담돼서 체할 듯요.
—원대표님이 요리 좋아해서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던데.
미안하지만 노땡큐인데, 라고 민이 말했다. 서른 살의 그는, 우리 중에서 가장 입학 점수가 높은 대학과 로스쿨 출신이었다. 어디서든 분위기를 주도하려 했고 늘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소스 반, 땀 반일지도.
민이 기어이 덧붙인 멘트를 보면서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평소 민이 하는 안 웃기는 얘기에도 가장 크게 웃곤 하던 홍이 ‘ㅋㅋ’를 붙이며 거들었다.
—ㅋㅋ치트키 있잖아죠. 무적의 엘메.
선을 한참 넘었다. 원대표는 프로 레슬러처럼 유난히 체구가 크고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었다. H문양이 선명한 에르메스 손수건으로 늘 이마를 눌러 닦으며 걸어 다녔다. 그때, 민이 이미지를 하나 올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땀을 닦는 사진이었다.
—헉! 이분 보기보다 겁 없는 분이네 ㅋㅋ
홍이 받았다. 시간차를 두고 윤도 ‘ㅋㅋ’를 입력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스크린 샷을 찍어두었다. 그들의 방식이 이것이라면 이것이 내 방식이었다.
원대표의 집은 지금껏 내가 가본 집 중에 현관 중문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가 가장 긴 집이었다. 원대표가 현관에 서서 우리를 맞고는 안쪽으로 안내했다. 거실 창으로 고궁의 안 뜰이 보였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아, 이런 위치에도 건축 허가가 나는구나. 그런 게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쇼트커트를 한 여성이 창가에 서 있었다. 소매를 걷어올린 흰색 리넨 셔츠에 흰색 데님 팬츠 차림이었다. 원대표의 아내라는 짐작이 자연스러웠다. 원대표가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성지연씨. 건축 회사를 경영하는.”
“거창하게 경영은 무슨. 전 그냥 벽돌 만드는 사람이에요.”
성지연이 활짝 웃으면서 인사했다. 벽돌이라는 단어가 성지연의 우아한 모습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그 순간이 강렬하게 남았다.
“환영합니다!”
성지연이 진정 환대한다는 듯이 두 손을 넓게 벌려 흔들었다. 다소 연극적인 제스처였다. 다이닝 테이블에는 다양한 음식이 가득 세팅되어 있었다. 중국식 고추잡채 옆에 참치 다타키가, 그 옆에는 부라타치즈 샐러드가 놓인 식이었다.
“중구난방이지만 흉보지들 말고 편하게 드세요.”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민과 윤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홍이 한 템포 늦게 인사했고 나는 입을 뗄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숙였다. 무성의하게 보일까 염려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항공 샷으로 테이블 사진을 찍었다. 원대표가 모두의 잔에 샴페인을 따랐다. 나도 조심스럽게 받았다. 민이 이렇게 맛있는 문어는 처음이라고, 얄따랗게 저며 토마토, 양파와 함께 올리브오일에 버무린 문어 한 점을 입에 넣자마자 감탄했다. 홈 쿠킹은 부담스럽다는 말 같은 건 왜 했나 싶었다. 문어 세비체는 이 사람 솜씨가 최고라면서 원대표가 성지연을 가리켰다. 그녀가 사뭇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뭘 하더라도 원대표보다는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우리 둘이 뚝딱거리며 만든 것도 있고, 사온 것도 있고, 그냥 이것저것 차렸어요. 그래야 다들 편하게 드실 것 같아서요.”
그들은 ‘편하게’라는 말을 그날 저녁의 키워드로 정한 모양이었다. 원대표가 주방에서 오렌지색 무쇠 주물 냄비를 들고 왔다. 부르고뉴식 소꼬리찜이라고 했다. 반드시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모두에게 덜어주었다. 진보랏빛 고깃점을 입에 넣자 알코올 향이 목구멍으로 화급히 퍼졌다.
“요즘 술을 강권하면 범죄라면서요. 마실 수 있으면 마시고, 못 마시겠으면 안 마시면 되는 겁니다.”
원대표가 말했다.
“안 마시고 싶은 분들도 물론이고요.”
성지연이 덧붙여 말했다. 사모님 멋지시다고 민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쯤에서 정정해드려야겠어요. 저는 사모님이 아니에요.”
그녀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이 현재 이 집에 서 함께 사는 것은 맞지만 원대표와 제도적으로 묶인 사이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제도와 제도 아닌 것.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왜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모인 이들은, 그 커플의 개인적인 친구도 무엇도 아니었다. 한참 어린 연배의, 오늘을 끝으로 다시 만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시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와, 멋지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다시 민의 목소리였다. 설마 이 정도로 분별력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그냥 뭐.”
원대표가 얼버무리는데 성지연이 끼어들었다.
“아마 둘 다 겁이 많아서일 거예요. 우리가 얼핏 멀쩡해 보여도 알고 보면 서울에서 제일가는 겁쟁이거든요. 책임도 무서워하고.”
“진심 너무 부럽습니다.”
민은 입을 열 때마다 영혼이 없는 소리만 했다. 그는 요즘 MZ들 중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사는 커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 중간에서 멈춰 섰다. 벽에 걸린 작품이 눈에 익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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