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사가가 쓴 한 가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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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은 세효각世孝閣 사람들, 즉 글쓴이의 선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성은 백白이며 본관은 수원水原인데 지난 4백 년 동안 줄곧 전주에 살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 또는 황희 정승이나 다산 정약용처럼 이름 석 자만 들으면 누구나 알아차릴 만큼 유명한 인물은 없다. 조선시대 평범한 선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독자 가운데 ‘세효각’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먼저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세효각 사람들은 누구인지, 이 책은 왜 쓰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차례로 서술할 것이다.
세효각과 세효각 사람들
세효각世孝閣이라는 용어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글자를 한자씩 풀이하면 그 뜻이 금세 드러난다. 대대로世 효자孝가 나온 집안閣이란 말이다. 글쓴이의 집안에서는 14명의 효자와 3명의 열녀가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효자와 열녀가 나오면 정려旌閭를 내리기 마련이었다. 예전에는 고을마다 효자, 열녀 또는 충신을 기념하는 공간이 많았다.
전주에 살던 글쓴이의 선조 중에는 효자가 여럿이었으므로 헌종은 “세효려世孝閭”라고 하는 글씨를 어필御筆로 적은 현판을 만들어 하사했다고 한다. 후세에 별로 인기가 없는 헌종이지만 학문이 깊은 왕이었다고 한다. 궁궐박물관에는 헌종이 친히 새긴 인장印章도 여러 개 있었다. 바로 그 왕이 “세효”라는 표현으로 시골의 한 선비 집안을 일컬었다는 사실은, 가문의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세효각 사람들”이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세효각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 전주로 피난 왔던 영곡靈谷 백귀민白歸民이란 선비에서 시작된다. 그의 4대 종손인 중암重庵 백상희白尙熙로부터 효행의 역사가 대대로 이어졌다. 글쓴이는 중암의 8대손이자 영곡의 12대손이다.
한 집안의 소소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이 책을 쓰는 동안 글쓴이는 “종자저장소Seed Vault” 라는 단어를 가끔 떠올렸다. 이 시설은 핵전쟁, 기상이변 또는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식물 자원이 고갈될 사태에 대비하여, 전 세계의 식물 종자를 최대한 수집·보관하는 목적을 지닌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종자저장소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있으며, 더 정확히는 스피츠베르겐 섬의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봉화군에도 중요한 종자저장소 하나가 더 있다. 지하 깊숙이 저장고를 만들어 섭씨 영하 20도를 유지하며 100만 점에 달하는 종자를 영구 보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종자저장소가 식물에만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역사적 기록도 어딘가에 저장해두면 좋겠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책에서 서술할 자잘한 이야기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곧 망각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선조에 관한 글쓴이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별다르게 내세울 것 없는 그와 같은 소소한 역사적 경험들이 축적되어 현재의 글쓴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디 글쓴이 한 사람만 그렇겠는가. 이 책을 손에 쥔 여러분도 대개는 그와 비슷한 처지일 것으로 짐작한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와 거의 같거나 매우 닮은 또 다른 삶의 기억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각자 간직해온 소소한 역사적 기억들을 빠짐없이 채록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역사와 문화에 관한 종자저장소가 될 것이다. 그처럼 수집된 기억의 종자가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인류의 문화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며, 우리의 삶도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 있다.
세효각 이야기에 담긴 흥미로운 역사적 기록
이 책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글쓴이의 집안에서 일어난 이야기인데, 물샐틈없이 정밀한 기록은 아니다. 공사公私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거나 구전口傳으로 전해진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마침 글쓴이가 역사가라서 여러 자료와 기억을 각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 맞게 정리할 수 있었다.
세효각 백씨 이야기는 가까운 과거에서 먼 과거로 시점이 이동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따라서 글쓴이는 우선 한국 근현대의 가족사부터 털어놓는다. 먼저 자신의 할아버지 청계淸溪, 휘 남룡가 겪은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설명이 전개된다제1장. 이어 청계의 혼인을 주도한 처조부 긍농肯農, 휘 박준필의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 긍농은 학자이자 실무 관료로서 구한말의 역사 속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었다제2장. 곧이어 이야기는 청계의 어머니 신씨 부인과 외조모 이씨 부인 등 이 집안 여성들의 책에 대한 깊은 애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서술의 흐름에서, 청계의 아버지 수졸재휘낙기가 겪어야 했던 시대적 고통에 대해서도 일정한 지면이 할애된다제3장.
이후 글쓴이는 18~19세기 세효각의 전통에 관해 서술한다. 전주라는 조선시대의 대도시에 세거한 선비 집안의 학문적 취향과 생활방식에 나타난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글쓴이는 청계의 조부 흑석휘 인수과 증조부 이은휘 추진 및 고조부 풍암휘 동량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차례로 풀어낸다제4장~제6장. 흑석은 구한말 내우외환 속에서 깊은 고뇌에 빠졌으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삶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이은은 사회가 아직 덜 불안하였던 만큼 문중서당을 건립하는 등 한결 적극적으로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청계의 5대조 고암휘 사성과 6대조 중암휘 상희은 숙종부터 순조 때에 이르는 기간이었다제7장~제9장. 돌이켜 보면, 그들 부자父子가 곧 “세효각”이란 집안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만든 이였다. 특히 중암은 영조 때 전주 성안에 대형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때 신기하게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효행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다고 믿었는데, 이 사건으로 중암은 조정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세효각의 역사를 서술하는 글쓴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집안의 역사를 쓴다. 이야기는 조선 초기부터 고려시대를 가로질러 통일신라 말기 거침없이 달려간다제10장. 그러고는 시선을 다시 현대로 옮겨 청계휘 남룡의 아들과 딸들에 관하여, 특히 글쓴이의 아버지 인 은석휘 정기에 초점을 맞춘다제10장 끝, 끝으로, 글쓴이 자신이 역사가로 살아온 과정을 담담히 서술하며 이야기를 맺는다남은 이야기.
이 책은 이른바 “세효각 백씨”의 역사적 기록을 쌓아놓은 것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각 장에서 글쓴이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를 2~4가지씩 다루고 있다. 소소한 것이지만 쉽게 구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서도 소개한다. 예컨대 1949년에 작성한 자동차 매매계약서도 있고, 구한말에 탁지아문에서 지방 관서에 내려보낸 공문서도 등장한다. 또, 세효각 할머니들이 고소설을 읽고 쓴 독후감이라든가 필사본을 만들 때 기록한 일종의 작업일지도 있다. 조정의 유명 인사가 써 보낸 만사輓詞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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