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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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있는 그대로의 하마스를 욕하라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에서 ‘세속주의자’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세속적이거나 속물 같다는 뜻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겐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가 기본이고, 이슬람주의는 그 전제부터 낯설다.
나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당연한 그 ‘세속주의자’로서 20년간 팔레스타인에 연대해온 그동안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대해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서구가 기획한 ‘이스라엘’이라는 식민주의 프로젝트에 맞서 100년 넘게 싸워왔다. 가장 보수적인 국제법의 언어로도 팔레스타인인에겐 무장 저항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투쟁의 권리가 보장된다. 너무나 정당해서 그 이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중요한 위상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회에 대해서나,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의 한 조류를 구성하고 있는 이슬람주의에 대해 모르더라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온 한국 동료 시민들이 그 정당성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어진 시간 내에 팔레스타인 세속주의 좌파,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에 대해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 사회 전반에 이슬람혐오가 짙게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 집단학살을 시작하자마자 이슬람혐오에 기반한 가짜 뉴스허위 조작 정보를 퍼뜨렸다. ‘ISIS=하마스’라는 공식을 만들어 하마스를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이스라엘이야 원래 그랬다. 서구 언론 역시 원래 이스라엘 프로파간다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해왔다. 서구 언론으로부터 외신을 받아쓰기해온 한국 언론이 부화뇌동한 것도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가 동요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것도 매일 이스라엘에 도륙당한 수백 구의 팔레스타인 아동의 시신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분 단위로 올라오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적인 연대와 지지가 절실한 순간에 많은 이들이 ‘하마스의 잔혹 행위’를 거론하며 팔레스타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를 주저했다. 충격 그 이상이었다. 이미 공격 6일차에 집단학살 전문가들이 이것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할 만큼 전례 없는 학살이 매일 그 규모를 갱신하는데도 주저함은 오래 이어졌다. 많은 동료 시민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고 조직적으로 집단 강간을 자행했다는 이스라엘의 날조를 오랫동안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 날조가,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이 집단학살을 정당화한 근거의 전부다. 이스라엘과 서구는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을 ‘하마스’로 축소시키고, 하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력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가자 민간인들이 겪는 고통은 ‘비극적’이지만 하마스를 지지해서 이 사태를 자초했다고, 즉 피해자에게도 집단학살당하는 책임이 있다는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9·11 이후 미국이 이슬람을 테러와 동일시하며 주창했던 ‘테러와의 전쟁’, ‘문명 대 비문명’이라는 테제는 이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무의식에조차 각인돼 있었다. 그리고 연대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부활해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의 한 세력과 이를 지지하는 가자 주민을 비인간화하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저항력을 낮추는 데 역할을 했다. 시민사회조차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대해 무지했을 뿐 아니라 편견과 편향된 정보가 뒤섞인 채 기초 사실과 전제가 오염돼 있었음을 겪고 나서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슬람주의 계열이든 세속주의 계열이든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은 스스로를 반식민·반제국주의 투쟁의 계보 위에 위치시키며,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 쿠바, 베트남, 카슈미르 등 다른 해방 운동들과 유구한 연대의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대다수 조직이 산하에 무장 분파를 가지고 있으며, 무장투쟁이 국제법상 민족 해방 운동에 보장된 권리임을 강조한다. 하마스도 마찬가지다. 서구 정부와 언론이 요약해주는 ‘반유대주의 이슬람 테러 단체’ 하마스가 아니라 하마스의 공식 성명과 구성원의 글과 인터뷰 등을 직접 읽고 들어보면 이들이 앞선 해방운동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민간인 학살과 집단강간을 조직적으로 기획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 또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아동과 여성을 학살하고 싶어하는 증오에 가득 찬 악마들이 아니고, 이들이 지지하는 현재 해방 운동의 가장 큰 집단인 하마스도 그런 맹목적인 집단이었던 적이 없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리더십을 점하기 위해 민준의 신임을 두고 다른 저항 세력과 항상 경합해왔고 이때 이슬람적 가치 수행은 하마스의 우위를 보장해주는 주요 경쟁력이다. 하마스는 아동과 여성 보호를 최우선시하고, 이스라엘 포로를 인도적으로 처우함으로써 이슬람적 가치를 올바르게 수행한다는 점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끊임없이 어필해왔다. 이 점은 포로 교환 때 가장 두드러졌다.
집단학살 후 가진 두 차례 짧은 임시 휴전 중 포로 맞교환이 몇차례 진행됐는데, 하마스는 포로를 적십자사로 인계하는 장면을 자체적으로 촬영해서 공개하거나 기자들의 취재를 허용해 생중계하기도 했다.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이스라엘 포로들은 가자 주민들에 비해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하마스에게 받은 선물 가방을 들고 환한 얼굴로 자신들을 둘러싼 수백 명의 하마스 전투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개중에는 전투원의 이마에 돌발적으로 키스를 한 이스라엘 포로도 있었다. 생환한 이스라엘 포로들은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을 억류했던 하마스 전투원들에게 느낀 친밀감을 회상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죽음의 위협을 느꼈을 때 억류자들이 자신들의 몸을 덮으면서까지 보호해주려 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포로에 대한 인도적 처우는 국제법상 의무일 뿐 아니라 이슬람적 가치이기도 하다. 이런 증언은 다시 팔레스타인 사회로 돌아와 잔악한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해방 운동의 고결함과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해방 운동 조류 중 이슬람운동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확보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아동과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을 납치하고 학살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뿐이다. 민간인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집단강간하는 것도 이스라엘뿐이다. 2023년 10월 7일부터 시작된 일도 아니다. 식민자로서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한 유럽의 시온주의자들은 원주민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통해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의 속성은 식민국가이다. 그것도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이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 주장하고, 미국에 비해 위선의 전통이 좀 더 남아 있는 유럽 역시도 과잉한 측면은 있지만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국이 점령한 땅의 주민을 상대로는 자위권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세계 최고 법원인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I가 2004년 다른 어떤 국가도 아닌 바로 이스라엘에 대해 판시했던 내용이다. 무장 저항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오직 팔레스타인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위치를 전도시키며 언제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주장해왔고, 유럽 각국은 자신들의 유대인 박해를 반성한답시고 유럽의 반유대주의 역사를 팔레스타인에 투사하며 이스라엘의 피해 서사를 강화해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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