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4

팡팡 장편소설

저자소개

저자 · 팡팡
본명은 왕팡王方. 195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난 팡팡은 이후 우한에서 성장했다. 공장하역부로 짐수레를 끌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이 시기에 대해 “4년 동안 사회라는 대학을 다녔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짐꾼으로 일하던 중 아버지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우한대학교에 들어가 중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된다. 도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다. 2010년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50년의 토지개혁을 다룬 소설 『연매軟埋』로 2017년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곧장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2020년 1월 25일, 우한에 거주하고 있던 팡팡은 도시가 봉쇄된 지 사흘째부터 인구 1천만의 대도시가 하루아침에 멈춰버린 우한의 참상과 생존기를 웨이보에 써나가기 시작한다. 당시 중국 네티즌들은 ‘살아 있는 중국의 양심’ ‘우울한 중국의 산소호흡기’라며 극찬했다. 정부 검열로 그녀의 웨이보가 차단되고 글이 계속 삭제당하자, 중국 네티즌들은 팡팡의 일기를 댓글로 각자 이어서 올리는 댓글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결국 팡팡의 일기는 SNS를 넘어 해외 언론에 소개됐고 날로 유명해졌다. 이후 『우한일기』에 지지 의사를 밝힌 학자들이 정부 당국에 불 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팡팡 자신도 고발당했다. 그러나 팡팡은 중국 내부에서의 탄압과 비판에 맞서 “작가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진실하게 쓸 뿐이지 쇼를 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우한일기』는 미국,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러시아, 일본, 베트남 등 세계 15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나, 출판이 정부 허가제인 중국에서는 끝내 출판되지 못했다. 『우한일기』로 코로나19의 참상과 성찰을 전 세계에 증언한 팡팡은 우리나라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2020년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으로 선정되었다.
역자 · 문현선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와 같은 대학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며 프리랜서 번역가로 중국어권 도서를 기획 및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원청』, 『오향거리』, 『아Q정전』, 『경화연』, 『삼생삼세 십리도화』, 『봄바람을 기다리며』, 『평원』, 『제7일』, 『사서』, 『물처럼 단단하게』, 『작렬지』,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피아노 조율사』, 『색, 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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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투쟁



여인은 줄곧 자기 스스로와 투쟁을 벌여왔다.


이미 나이가 꽤 들었다. 온 피부가 탄력을 잃어 굵직한 주름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축축 늘어졌다. 얼굴과 목 곳곳에는 미세한 주름이 빽빽했다. 피부가 워낙 하얘서 그런 흔적들은 시간의 칼에 의해 무작위로 새겨진 게 아니라 가느다란 붓으로 하나하나 그려진 듯했다. 눈동자도 이미 상당히 혼탁해졌지만, 갑자기 눈을 크게 뜰 때면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그녀는 한곳을 멍하니 쳐다볼 때가 많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도 하고 하염없이 지루한 듯도 보였다. 그런 모습에 가끔 지나가던 사람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하고 묻기도 했다.


그럴 때 여인은 망연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몇 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사실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주 이상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바깥을 향해 뛰어오르며 자신의 기억을 자극하려 한다고만 느꼈다. 그런데 그것들은 그녀가 평생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였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녀의 저항은 수시로 뚫고 나오려는 마귀를 빈틈없이 덮고 옥죄는 커다랗고 촘촘한 그물 같았다. 그녀는 평생토록 그 그물을 손에 든 채 그것들과 싸웠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그녀에게 기억을 한번 떠올려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뭔가가 생각나면 마음이 편안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따라 진지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힘껏 기억을 되짚어봤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무수한 바늘이 인정사정없이 몸을 찌르듯 초조함이 엄습해왔다. 그 강렬한 기세에 오장육부가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그녀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피곤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녀가 절망에 빠져 “강요하지 마요.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어요. 생각만 하면 죽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깜짝 놀라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요. 대신 최대한 할 일을 찾아봐요. 몸이 바쁘면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


그녀는 남편의 말대로 매일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특별한 직업이 없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안일밖에 없었다. 그녀는 매일 바쁘게 쓸고 닦은 집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녀의 집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깔끔하다고 칭찬했다. 의사인 그녀 남편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의 생활은 점점 정상적인 모습을 찾아갔다.


여인은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보냈다. 한 해 한 해의 시간이 세밀하고 촘촘한 막처럼 그녀의 기억 뒤편에 놓인 것들을 층층이 덮었다. 한 해에 한 장씩, 시간이 흐르면서 얇았던 막이 두껍게 쌓였고 판처럼 굳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의식 속에 깊이 숨겨진 마귀들이 모조리 봉인되었다.


그런데 그건 무엇일까?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이 사라진 건 1952년 봄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온 그녀의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어 병원에서 매일 회의가 열리고, 누군가 그의 이력에 문제가 있다는 대자보를 썼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서 잔뜩 긴장했다. 그때 남편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당신한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요. 내가 보호할 테니. 당신 과거는 평생 떠올리지 말아요. 당신의 가장 큰 적은 외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이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이야. 누가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해. 그러면 돼요.


그녀는 남편의 위로와 주의하라는 경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숨겨놓은 자신의 원수를 남편이 이미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대체 뭘까? 설마 나도 모르는 걸 그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 두려움이 그녀 옆에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분 매초.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깊이 사랑한 사람이 두려운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일까?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그녀는 당혹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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