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4

1980~1990년대, 불온하고 정치적인 10대들의 기록

저자소개

저자 · 조한진희
여성·평화·장애 운동을 넘나드는 활동가. 팔레스타인에서 인권활동 중에 건강이 손상되면서, 질병에 관해 사유하게 되었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잘 아플 권리’(질병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명의 연극을 기획했으며, 《한겨레》 《일다》 《민중언론참세상》 등에 질병, 페미니즘, 진보사회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역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활동을 중시하며,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동료들과 질병권과 돌봄 관련 운동을 개척 중이다. 저서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공저), 『질병과 함께 춤을』(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비거닝』(공저), 『고등학생운동사』 등이 있다.

들어가는 글


유배되고 고립된 개인의 기억에서,

세상을 바꿔내온 사회적 기억으로


  ─ 조한진희


고운, 잃어버린 현대사의 한 조각을

기록하고 해석하기


한국 사회에서 낯선 말, 고등학생운동.


특정 시기 뜨겁게 불타오르고 사라진,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한 조각이 있다. 사회적으로 호명조차 제대로 된 적 없는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고운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생의 사회·정치적 활동은 낯설고 특수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떠올려보자. 근대 교육제도 도입 이후 10대가 거리에서 투쟁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던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해방 이후 4·19혁명은 고등학생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항쟁, 1989년 전교조 교사 집단해고, 1991년 5월투쟁, 그리고 이승만부터 2025년 현재 윤석열까지 대통령 퇴진 운동에 10대가 광장에 서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10대의 정치활동은 매번 ‘재발견’되고, 왜 이토록 낯설까?


역사는 선별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만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평가되며 의미가 생성된다. 특정한 역사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누락된다. 1980~990년대에 고운 활동을 했던 이들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묻어두고자 했고, 사회는 무의식적으로 소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운에 몸담았던 이들은 고통스러운 기억, 실패한 운동이라는 좌절감, 열사가 된 친구들과 살아남았다는 미안함 때문에, 혹은 소위 ‘86세대’가 과거를 기억하는 태도와 독점에 질려버려서…… 고운의 기억을 저편으로 유배시켰다.


통상 지배계급은 권력을 잡으면 가장 먼저 역사에 손을 댔고,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반면 진보운동 사회는 역사 기록에 여전히 인색하다. 그래서 불나방처럼 뛰어들어서 활활 타오르고 사라지는 역사가 반복되어온 경향이 있다. 왜 매번 우리는 열정만으로 뛰어들고,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수십 년째 반복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 온 많은 이들이 지닌 문제의식일 것이다.


이 책은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의 출현과 발흥, 소멸을 담고 있다. 특정 사회운동이 어떻게 변화·발전했고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과 이해는 이후 더 나은 사회와 전망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고등학생운동 시절 평가 시간에 ‘운동은 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실제로 고운이 과학적이었다고 평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운동을 열정만으로 해서는 안 되고, 현실을 엄밀히 분석하고 역사적 오류를 검토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류를 검토하려면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윤석열의 2024년 12·3 계엄 선포로 인해 거꾸로 돌아간 역사, 파괴된 민주주의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분노로 광장이 연일 들끓고 있다.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갈 민주주의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진행 중이다. 우리의 저항은 훗날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당대를 극복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87체제’나 ‘86세대’를 비롯해서 과거를 다시 읽어보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고등학생운동을 살펴보는 것은 87년 6월항쟁을 포함해 1980~1990년대 역사를 재검토하고, 계엄이 사어死語가 되도록 역사를 밀고 나가는 데도 유의미하다.


지금 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전제 위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역사가 정말 진보하는 것일까. 부분의 역사가 진보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12·3 계엄 같은 것을 보면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사실상 되풀이되는 게 아닌지 의구심과 회의감이 든다고 말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했고, 18세기 역사학자 비코는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역사가 2차원의 원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것인지, 3차원의 나선형처럼 발전하는 것인지, 인류는 정말 일관된 방향의 역사를 구축할 수 있는지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이는 수학공식처럼 종이 위에서 논증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투쟁과 삶으로 입증해야 하는 영역에 가까울 것이다. 고운 활동가들은 역사의 발전을 믿었던 이들이고, 이 책은 역사가 원처럼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각도를 조금 비틀어 나선형으로 진입시켜보려는 노력에 가깝다.


고운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회


고운은 왜 거의 기록되지 않았을까. 고운 활동을 했던 당사자들이 이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회에서 관심을 가지면 자료 등을 통해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19년 청소년인권운동단체에서 주최했던 토론회에 참여했던 때의 일로 이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시는 전교조 30주년이었고, 전교조 주최로 전국 각지에서 행사가 열리고 언론도 다양한 기획기사를 내보내던 해였다. 그나마 고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989년 전교조’를 떠올릴 만큼 고등학생 운동과 전교조는 긴밀하다. 전교조가 출범하던 1989년 1,500여 명의 교사가 집단해고됐고, 고운에서는 전교조 교사 지키기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그해 47만여 명의 중고생이 수업 거부, 방학 거부, 철야농성, 교문 밖 시위, 평민당사 농성과 단식 등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은 체벌로 인해 실신하고 입원하거나 징계를 받는 등 여러 탄압을 겪는다. 당시 전교조 학생사업국 자료에 따르면 1989년 학생 징계 현황은 구속 5명, 불구속 10명, 퇴학 8명, 무기정학 27명, 유기정학 40명, 근신 72명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때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일부만 집계된 통계라는 게 많은 의견이다. 그리고 이듬해 전교조 지키기 운동 과정에서 고등학생 열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전교조 30주년을 기념하는 그 많은 행사와 기사 어디서도 고운을 언급하지 않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이에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토론회를 개최한다며 패널 요청을 해왔다. 당시 토론회 제목은 ‘8090 참교육운동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마당: 그때, 우리는 학교와 정권에 맞서 싸웠다’였고, 나는 고운을 사회 전반에서 기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전교조에서조차 호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다소 슬픈 마음으로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운이 기억되지 않고 회자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10대를 정치적인 주체로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연령 하향 운동은 한국에서 아주 어려운 운동이고, 인권교육현장에서도 청소년 보호주의를 넘어서기가 굉장히 어렵다. 청소년인권을 말하는데 이것을 보호주의 담론으로 포섭해버린다. 그리고 청소년 보호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10대를 정치적 주체로 보는 것을 가장 어려워하는 집단 중 하나가 교사들인 것 같다. 물론 진보적 교육운동을 하는 교사들을 비롯해 다른 관점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교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전교조가 출범했던 해부터 몇 년 동안 수십만의 중고생이 징계와 퇴학을 불사하며 싸웠는데도 전교조에서 고운을 기억하지 않고 호출하지 않은 것. 이 또한 10대를 정치적 주체로 보기 불편해하는 흐름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과거 10대가 투쟁했던 역사가 현재에 중요한 청소년인권운동 영역에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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