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3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심리치료 모델, 영국 IAPT 탄생 이야기

저자소개

저자 · 데이비드 클라크
영국의 심리학자로 2011년부터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교수로 일했으며 보건부 국립 임상 고문이기도 하다. 그의 연구는 주로 불안 장애에 대한 인지모델(cognitive models) 및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 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리처드 레이어드와 함께 영국인의 마음 건강을 향상시킨 IAPT를 개발하고 구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저자 · 리처드 레이어드
영국의 노동경제학자로 공공정책이 사람들의 행복과 복지를 목표로 하기를 원한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LSE 부설 경제성과센터를 설립했으며, 경제성과센터 내의 공동체 복지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또한 영국 정부가 심리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IAPT)를 시행하도록 이끈 장본인으로, 실업과 아동기, 정신 건강과 행복에 관한 그의 연구는 영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으로 《실업(Unemployment)》, 《불평등 다루기(Tackling Inequality)》, 《행복(Happiness)》, 《행복의 기원(The Origins of Happiness)》,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을까?(Can We Be Happier?)》, 《웰빙(Wellbeing)》 등이 있다.

1장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나는 평생 너무 먼 곳에서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허우적대고 있었지.

  ― 스티비 스미스,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허우적대고 있었지〉


영국의 유명한 사업가 데니스 스티븐슨은 이따금 찾아오는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자신의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리가 열 군데나 부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아직 문 사이에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닫아버렸던 거죠.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갈 겁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겪는 고통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심합니다. 정말 끔직한 고통이에요.”


정신적 고통도 신체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실재한다.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는 정신적 고통을 느낄 때도 똑같이 활성화되며, 더러는 사람을 더 심각한 불능 상태로 만든다. 그런데 두 고통은 동등하게 취급받지 않는다. 몸이 아픈 사람은 대부분 치료받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3분의 2가 치료받지 않는다. 뼈가 다치면 당연히 치료받으면서 마음이 다쳤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심각한 차별은 전 세계 모든 보건의료 체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특히 문제인 이유는 가장 흔한 정신질환인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위한 아주 좋은 치료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심리치료와 (필요할 경우 제공되는) 약물치료는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또한 치료의 경제성은 놀라울 정도다.


정신질환을 치료하면 복지 혜택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정신질환으로 인해 악화된 신체질환을 치료받는 사람의 수도 감소하는 등 비용을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다. 이를 합리적으로 추산하면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전체 사회 관점에서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3분의 1만 치료받는다. 이는 매우 부당하고 심각하게 비효율적인 일이다. 정신질환을 치료하지 않아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림과 동시에, 추가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그런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 우리가 이 책을 쓴 중요한 목적이다.


더 포괄적 관점에서 살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지난 50년 동안 선진 사회는 상당히 진보했다. 절대 빈곤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신체는 더 건강해졌으며 교육과 주거 수준이 향상됐다. 그러나 미국와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 5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불행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회 문제가 끊이지 않고 가족 내 갈등이 증가하는 한편, 범죄와 반사회적 행동도 늘고 있다. 소득, 교육, 신체 질병, 주거 같은 외적 조건을 해결한다고 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이 있다. 바로 내면의 건강이다.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이상이 생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회가 되면 우리 모두 이익을 얻을 것이다. 정신질환 탓에 치러야 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이 책을 쓴 두 번째 동기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은 많은 독자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우리조차 여전히 놀랄 때가 있다. 다음은 우리의 주요 탐구 질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가


정신질환은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커다란 문제로 그 실제 규모를 알면 대부분 놀란다. 오늘날 영국의 성인은 여섯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이나 심각한 불안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 대륙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림잡아 세 가족 중 한 가족에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구성원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정신 건강 분야에서 일한다고 답하면, “아, 우리 아들이” 혹은 “우리 어머니가요”라며 운을 떼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사실 제가 말이죠”라고 입을 열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덧붙인다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미국에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정신질환은 흔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돌보고 사회적으로 적절히 기능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신체와 정신의 고통을 피하는 능력을 손상시킴으로써 우리를 심각한 불건강 상태로 만든다. 이 측면을 고려하면 우울증이 협심증이나 천식, 관절염, 당뇨보다 평균적으로 50% 이상 더 많은 장애를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질환 규모를 측정하고 그 심각도를 평가한 결과, 선진국의 전체 질환 중 정신질환이 거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뇌졸중, 암, 심장질환, 폐질환, 당뇨는 20% 조금 넘게 차지했다. 아래 도표가 이를 보여준다.


정신질환은 적응하기가 극도로 힘든 편이다. 지속해서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체질환보다 훨씬 더 그렇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아파서 일을 쉬는 날이 거의 절반이라 업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납세자 역시 피해를 보는데 이는 장애수당을 받는 인구의 거의 절반이 정신질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정신질환이 전 세계 보건 기관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할 거라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7년 영국 보건부에 새 장관이 취임하고 3주가 지났을 때 그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회담이 끝날 때쯤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임기를 시작하고 3주동안 40개 회의에 참석했는데, 정신 건강이라는 표현 자체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매년 겨울 눈 덮인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이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60개 고용주 그룹인 ‘사업장 웰니스 동맹Workplace Wellness Alliance’ 회의도 포럼 중 진행된다. 2012년 1월 개최된 세계경제포럼 사업장 웰니스 동맹 회의의 주제는 기업이 당면한 건강 문제였는데 심혈관계질환, 당뇨, 폐질환, 암, 근골격계 등의 문제를 두고 구체적인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병가病暇의 가장 흔한 원인인 정신질환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정신질환은 사람들이 언급을 꺼리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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