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성 시집
너
백년 후에 너는 사라지겠지.
사람들은 먼지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너는 먼지도 아니겠지.
백년 후에는 종이가 남고 글자는 사라지겠지.
사라진 너는 이름도 없겠지. 백년 후에는 풀과 벌레들이 있겠지.
벌레는 글자를 갉아 먹고 검은 글자를 닮은 풀들은 여전히 풀처럼 있겠지.
그리고 모르는 네가 있겠지. 풀처럼 네가 없는 노래를 영영 부르겠지.
종이
그가 죽자 평평하고 납작해졌다. 종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남긴 것을 입에 넣는다. 커다란 호주머니 속에는 달고 진한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이렇게 환하고 단 것들 뒤에는 도무지 뭐가 있을까.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이 생각난다. 그는 단것에 대해 쓴 적은 없지만, 그것은 바스라진 채 종이 위에서 굴러다닐 것이다. 검고 못생긴 것이 끈적끈적 이빨에 달라붙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맛 속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나가는 어린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연민과 증오를 차례로 배워갔더라면
결국 남은 건 이토록 모호한 단맛뿐이라고, 그는 한숨지었을까. 여전히 햇빛이 햇빛이 따갑고 그의 혀에 남은 것이 검은 글자가 아니라 단맛이었으면, 그리고 그건 시를 읽는 것처럼 틀렸을 것이다.
빵
거대한 화덕에서 우린 빵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당신은 꿈속을 걸어 다녔어요.
빵은 검은 침묵에 가깝고 어쩌면 깊은 밤과 같지요. 그러니 오늘 우리가 흥겹게 먹고 마시고 떠들며 웃는 것은 밤의 한쪽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의 꿈이 고요한 빵과 같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면 아득하고 헝클어진 밤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기억이 반짝이는 이중창을 들려줄 텐데……
커다란 접시를 들고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걸 말하지는 않겠어요.
빵은 계속해서 부풀고 불빛 사그라드는 화덕처럼 밤의 한쪽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나는 오늘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빵을 뜯으며 조용히 울었어요.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