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6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저자소개

저자 · 이은희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20대에는 과학자로, 30대에는 과학 논픽션 작가로 일하다가, 40대가 되어서야 픽션 분야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호모 사피엔스 여성으로 겪은 날것 그대로의 재료를 과학과 픽션이라는 이질적인 요리법으로 잘 섞은 퓨전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꿈이다. 지은 책으로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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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겪은 일은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시청하던 텔레비전 아침 드라마 혹은 주말 드라마는 대개 ‘화목한 가정’을 표상하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들로 가득했습니다. 남편 쪽의 부모와 조부모, 아들 내외에 성인이지만 아직 독립하지 않은 남편의 형제자매들까지 예닐곱 명의 어른들만 가득 앉은 아침 식탁. 제일 먼저 일어나 이리저리 종종거리며 가족들 식사를 챙기다가 제일 늦게 식탁 한쪽 구석 자리에 앉은 새 며느리가 급하게 국을 한술 뜨다 말고 헛구역질을 합니다. 그 소리가 그리 큰 것도 아닌데,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던 가족들은 귀신같이 그 소리를 알아채고 일순 모든 행동을 정지한 채 그녀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 식구들은 박수치며 환호하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부산스럽게 그녀를 모든 가사 노동에서 제외합니다. 조금 전까지는 물 한 잔도 제 손으로 떠다 마시지 못해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던 이들이 갑자기 제 발로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그녀가 빈 그릇 하나라도 들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손사래를 치기 시작합니다. 새 며느리는 순식간에 가족 내 가장 낮은 서열에서 손대면 깨어질 것 같은 유리 인형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고요? 그녀는 임신을 했거든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들을 너무 흔하게 보고 자란 탓인지, 저 역시도 처음에는 임신을 하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또한 저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아주 힘들게 아이를 가졌기에, 임신 중에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아이를 임신했던 그 몇 달 동안은 제 인생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운동 중독의 시기였습니다.


고대하던 아이를 임신하고 초기 불안했던 시기를 넘어 드디어 안정기에 들어서자, 다니던 난임 병원을 ‘졸업’한 뒤, 집 근처에 있는 중견 규모의 여성 전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난임 전문 병원에서는 안정기에 들어선 임산부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거나 담당 의사를 바꾸어 줍니다. 이를 ‘졸업’이라고 하는데, 같은 병원을 다녔지만 아직도 임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거죠.) 그렇게 새로 만난 담당의는 제게 운동을 권했습니다. 임신 중에 지나친 몸무게 증가는 여러모로 좋지 않으며 자연 분만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는 게 좋다는 거였죠. 그런데 그중 ‘자연’ 분만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찔렀습니다.


임신을 전후해 수많은 의학적 처치를 받았습니다. 복강경 시술에 자궁 내막 자극술도 받았고, 거의 3개월을 매일매일 배와 엉덩이에 호르몬 주사를 맞았습니다. 임신 전에는 아기만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임신 기간이 자꾸 지나가자 그동안 눌러 두었던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뱃속 아기가 무사히 잘 크고 있는지, 어디가 잘못된 건 아닌지 하는 문제는 모든 임산부의 불안거리이지만, 제 걱정의 뿌리는 그 결이 좀 달랐습니다. 제 배에서 자라는 아이가 이른바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자리 잡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과배란 주사를 통해 강제로 배란시킨 수십 개의 난자들을 주사 바늘을 이용해 하나하나 몸 밖으로 빼낸 뒤, 역시 인위적으로 몸 밖으로 배출된 정자와 페트리 접시에서 만나 만들어진 수정란에서 탄생한 아이였습니다.


수정 후 첫 일주일간 배아는 배양액에 담긴 채 온도와 습도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유지되는 실험용 인큐베이터에서 자랐습니다. 일주일 후 포배기에 들어서자 배아를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배양액을 제거하고 부동액으로 채워진 작은 플라스틱 튜브에 담아 섭씨 –196도 이하의 액체 질소 탱크에 보관했습니다. 배아는 그 튜브 속에서 6개월 동안이나 얼어 있다가 다시 해동된 후에 제 몸에 이식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어렵게 제게 깃든 아이였습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현대 의학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기적이라고 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과정이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그런 모든 일을 겪어도 아기가 괜찮을지 걱정을 가장해 답 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심지어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는 일 같아 소름이 돋는다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순간, 서늘하고도 무거운 침묵의 감정이 등줄기를 스치고 내려갔습니다.


당시 전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정의되지 않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던 것이죠. 하지만 대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가 남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저와 제 아이의 존재에 대한 부정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재생산의 과정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하나의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체로서 가져야 하는 존재 의미에 대한 평가 절하를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첫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연 분만에 집착했고, 낳은 후에는 모유 수유를 고집했습니다. 운동이 자연 분만에 좋다는 소리를 들은 뒤로, 안정기에 들어선 임신 16주부터 출산 때까지, 일주일에 3회씩 임산부 요가 클래스와 아쿠아로빅 수업을 들었습니다. 라마즈 분만 호흡법 강좌를 들었고, 주말에는 강변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다행히 입덧도 별로 없었고 임신 전까지만 해도 이상 없이 건강했던 편이라 운동이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운동한 게 도움이 되었는지 혹은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첫 아이의 출산은 잔뜩 겁먹었던 것에 비해서는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또한 두 번째 관문이었던 모유 수유 역시도 젖몸살이나 유량 부족 등의 문제 없이 금방 익숙해졌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정말로 행복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그제야 뭔가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뭔가 해냈다는 안도감이 느껴지자, 주변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죠.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서 만난 또래 엄마들은 아기를 만난 기쁨과 함께, 제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들을 저마다 다른 이유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연 분만을 시도하다가 아기가 태변을 보는 바람에 감염 위험이 생겨 급하게 수술을 했고, 아기도 병원에서 며칠 입원해야 했습니다. 아기가 나오다가 산도에 걸려 흡입기를 사용해 출산하는 바람에 아기의 머리 모양이 다소 길쭉하게 변형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조리원으로 왔다는 아기는 체구가 아주 작아 고만고만한 갓난아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현대 의학은 이 아이들이 별다른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장해 줄 겁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아기에게 미안해했습니다.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세상과 만나게 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죠. 아이를 낳는 데는 별문제가 없던 이들이라고 모두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젖이 잘 돌지 않아 아기에게 충분한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이도 있었고, 젖은 도는데 함몰 유두나 유두 균열로 젖을 물릴 수 없는 이도 있었으며, 흔히 젖몸살이라 불리는 유선염이 심해서 엄마가 열이 펄펄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아기가 모유를 거부하고 젖병만 찾아 유축기로 짜낸 모유를 젖병에 담아 먹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 아기를 만나는 엄마들은 이런 상황에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럴 때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하는 이들은 주로 가족과 친구 같은 가까운 이들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위축된 초보 엄마 앞에서, 자연 분만을 해야 혹은 모유 수유를 해야 엄마 몸도 금방 회복되고 아기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데 그러지 못해 어떡하냐는, 또다시 걱정을 가장한 답 없는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그들이니까요. 내가 뭔가 잘못해서, 내 몸이 뭔가 이상해서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그 ‘자연스러운’ 일조차조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이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면, 아직 산고에서 회복되지 않은 산모의 몸과 마음은 쉽게 바스러지고 맙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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