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동아리가 시골 학교를 바꿨어요.”
지난달 경남 합천여중 도서관. 점심시간인데 학생 20명이 책을 펴놓고 토론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요즘 경남에서 새로운 ‘글짓기 명문’으로 통한다. 지난해 전교생 158명 중 125명(중복 포함)이 전국의 크고 작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탔다. 학생 10명 중 8명이 글짓기 대회 수상자인 셈이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경남에서 제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어 비결이 뭔지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에선 “해마다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 위기에 빠진 합천에서 새 희망을 찾았다”는 말이 나온다.
합천여중이 ‘글짓기 명문’이 된 건 2023년 부임한 국어 교사 김수선(33)씨가 독서 동아리 ‘무궁무진’을 만들면서다.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알거나 ‘혼숙’을 ‘혼자 숙박’으로 이해하는 아이들이 많은 시대잖아요. 난독(難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무궁무진이란 이름은 교화인 무궁화와 ‘아이들의 잠재력은 끝이 없다’는 뜻을 담았다. 처음에 20명이 모였다.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1시간 일찍 등교해 김씨와 함께 ‘동물농장’ ‘오만과 편견’ ‘허생전’ ‘구운몽’ 등을 읽고 글을 썼다.
김씨가 강조한 건 책을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筆寫)였다. 김씨는 “필사를 하면 좋은 문장의 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고 작법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해 5월 동아리 학생 15명이 경남청소년문학대상에 출전해 3명이 상을 탔다. 당시 3학년이었던 김나현양이 2등상인 북돋움상을 탔다. 학교는 정문에 수상자들 이름을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은 입시생 대신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로 붐볐다. 밤 11~12시까지 불을 밝혔다.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신간 200권을 구입했다.
학교 안에 글쓰기 바람이 불었다. 작년 4월 ‘세계 책의 날’엔 1년 동안 읽은 책을 놓고 퀴즈 대회를 열었다. 수상자가 늘어나면서 수상작을 전시하는 시화전도 열었다.
‘근화수기’라는 졸업 기념 문집도 내기 시작했다. 졸업생들이 쓴 글귀를 모은 것이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졸업 앨범뿐 아니라 자기 글이 담긴 문집도 받게 됐다. 문성국 교장은 “요즘처럼 학교가 시끌벅적한 건 처음”이라며 “제일 감동적인 건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를 보는 대신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 한강 작가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