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김아영(사진)과 그의 스튜디오 매니저들은 올해 11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개인전 개최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지난해 가을 듣고 이렇게 반응했다.
김 작가는 수년 동안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아파트의 작업실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어 왔다. 2022년 여기서 탄생한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는 작가에게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최고상과 ACC 미래상, LG구겐하임 어워드를 안겼다.
이후 김 작가는 호주무빙이미지센터(ACMI) 개인전과 독일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 개인전, MoMA PS1 개인전과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 그룹전에서 전시를 했거나 전시가 예정돼 있다. ‘기적’이란 표현도 그리 과장이 아닌 셈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신작 ‘플롯, 블롭, 플롭’을 공개한 작가를 26일 만났다. ● 아날로그로 빚어낸 최첨단 미술
독일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아영 개인전 ‘Many Worlds Over’의 전시 전경. 사진은 설치 작품 ‘고스트 댄서들 B’(2022년). 이곳에서 전시하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개인전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 제공김 작가는 생성형 인공지능(AI)부터 게임엔진, 모션 캡처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최첨단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작품을 찬찬히 보면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고, 문헌을 뒤져보는 ‘아날로그’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세계관이 강점임을 알 수 있다. AI 등 각종 기술을 활용하는 작가가 적지 않지만, 그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도 이런 세계관이 사회와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 역시 배달 플랫폼이 만들어 낸 현실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함부르거반호프 미술관의 샘 바더웰 관장은 이 작품을 두고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살필 수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팬데믹 시기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며 벌어지는 인간 주체성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미술관들이 흥미롭게 본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을 준비하며 손수 배달 라이더의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배달을 나갔다. 작품에 투영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개념을 폭넓게 연구하기도 했다.
“세종대왕 때 만든 달력인 칠정산에 대해 공부하고, 18세기 인도에서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에 매혹돼 전통 인도 시간관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를 만났어요. 아시아의 전통 나침반인 ‘윤도(輪圖)’를 만드는 무형유산 보유자를 전북 고창으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 “정독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구상”
결국 ‘기술’이 활용되는 건 발품을 들인 조사를 토대로 뼈대를 구성하고 난 다음이라고 김 작가는 말했다. 그는 “AI 같은 기술을 이용한 프로덕션은 가장 마지막 과정”이라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책”이라고 했다.
“편한 차림으로 책가방을 메고 근처 정독 도서관에 올라가 책을 읽고, 메모하고, 여러 문헌을 연결 지으며 저만의 세계관을 만들 때가 가장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에요. 물론 이미지를 만지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구상하는 건 지극히 아날로그한 과정입니다.”
AI를 활용하는 중에도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이어진다. 작가는 “AI 이미지라고 상상하면 그림이 ‘뚝딱’ 나오는 걸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이를테면 여성 라이더를 묘사할 때 대상화되거나 수동적인 모습이 자꾸 나와 아예 몸은 남자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최근 공개한 신작 ‘플롯, 블롭, 플롭’은 작가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 작품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아버지와의 긴 대화와 현지 조사 등 오랜 준비가 바탕이 됐다. 작가는 “제 이야기를 해서 쑥스럽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는 6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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