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도서, 더는 구입 안 합니다”···도서관의 ‘결단’ 어떻게 나왔나

전지현 기자
서울 동작도서관의 경제학 서가에 10일 ‘부동산 및 주식 투자’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동작도서관 제공

서울 동작도서관의 경제학 서가에 10일 ‘부동산 및 주식 투자’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동작도서관 제공

서울 동작도서관에서 장서구입 업무를 담당하는 19년차 사서 장성우씨. 그는 올해 초 교대근무로 자료실을 점검하다 ‘경제학’ 서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재테크 관련 서적이 6칸 높이의 책장 3개를 꽉 채울 정도로 빼곡했다. 돈되는 빌라, 실전투자, 미국주식, 해외ETF 등 ‘부자되기’를 전면에 내세운 책들이 사회과학 분야 서가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많더라”고 느낀 장씨는 재테크 도서가 서가를 메운 이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재테크 서적을 ‘들여달라’고 많이 신청한 게 주된 이유였다. 동작도서관은 이용자가 구입을 신청한 책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책을 구비하는 ‘희망도서 신청 제도’를 운영하는데, 재테크 서적에 도서 신청이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재테크 분야의 희망도서 신청 비율이 유독 높았다. 최근 2년간 새로 구입한 사회과학 도서 중 경제학 비중이 54%를 넘었고, 그 중 금융도서 비중이 35%에 달했다.

장씨는 가득 들어찬 책들을 보며 2년 전까지만 해도 꺼질 것 같지 않던 부동산 열풍이 떠올랐다. ‘영끌’ ‘벼락거지’ 등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한국 사회가 들썩였고, 부동산 투자 관련 도서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장씨는 “그때는 부동산 열풍이 정점을 찍었지만 지금은 잠잠해지 않냐”며 “그때 도서관들이 구입했던 신청도서들이 서가에 계속 쌓여 있는 셈”이라고 했다.

재테크 관련 책은 시장이 급변하는 특성상 시류에 맞을 때 몇 번 대출된 이후에는 다시 대출되는 일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장씨는 “재테크 도서 중 꾸준히 나가는 건 극소수고, 참고용으로 한번 들춰보고 끝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동작도서관은 지난달 28일 “장서불균형 심화로 재테크 희망도서의 구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동작도서관 홈페이지 갈무리

동작도서관은 지난달 28일 “장서불균형 심화로 재테크 희망도서의 구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동작도서관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몇 년간 쌓여온 서가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도서관은 최근 결단을 내렸다. 재테크를 주제로 한 도서에 한해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희망도서 신청을 받지 않기로 했다. 동작도서관은 지난달 28일 “주제별 장서균형을 위해 5월부터 ‘시세차익형 재테크(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도서 구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이 도서관은 희망도서 신청이 활발한 편이다. 전체 도서관 자료구입비의 44.7%가 책정된 올해 희망도서 예산(6100만원)은 이미 절반 이상 집행을 마쳤다. 도서관은 예산의 50% 이상이 소진된 이후에는 ‘자료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선별, 구입할 수 있다’는 기존 공지에 근거해 재테크 도서 구입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이용자들의 선호에 반하는 결정이기에, 쉽게 내릴 수 있는 조치는 아니었다. 이번 조치에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장서를 꾸려가야 하는 사서들의 고충도 녹아있다.

장씨는 희망도서 신청 제도의 취지처럼 이용자들이 원하는 책을 전부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관리자로서 균형을 잡는 것’이 숙제라고 했다. 장씨는 “‘사람들이 꾸준히 보는 책은 무엇인지’ ‘이 책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책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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