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말만 무성할 뿐 검증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떤 분야에서는 이미 현실로 느끼고 있다. 놀랍게도 그림 업계가 그렇다. 물론 그중에서도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파장은 작지 않다. 비단 한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소설을 ‘웹소설’이라고 한다. 웹소설 작가가 되려면 네이버·문피아·조아라 등 플랫폼에 무료 연재를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독자 반응이 좋으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계약을 하는 식이다. 이때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작가들은 글도 잘 써야 하지만, 매력적인 제목을 다는 등의 전략을 써야 한다. 일단 독자들이 클릭을 해야 하니까.

웹소설 작가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법의 하나가 ‘표지’다. 그동안은 그림판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리거나, 작가가 사비를 들여서 '인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외주를 줬다. 이게 달라졌다. ‘스테이블 디퓨전 웹 UI’ ‘노벨AI’ ‘미드저니’ 등 이른바 이미지 생성 AI로 만화체 그림을 꽤 준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알려지면서, 웹소설 표지 시장에서 AI 표지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벨피아’라는 웹소설 플랫폼의 경우 랭킹 상위 10개 작품 중 5개가 표지를 AI로 만들었다고 명시했다(5월3일 오후 3시 기준).

노벨피아에서 활동하는 웹소설 작가 ㄱ씨도 자신의 소설에 AI 그림을 쓴다. “다른 작가님들이 AI 그림을 다 쓰기에 올 2월쯤 사용을 시작했다. 처음 만들어보고 ‘이 정도면 작품에 올려도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퀄리티(품질)는 아직 사람이 낫고, 수정 사항도 사람이 더 잘 반영해준다. 하지만 그림 한 장에 최소 15만원이 드는데 AI는 가격이 무료라서 비교가 안 된다. 인간 일러스트레이터는 대기기간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 최소 2주, 길면 한 달이 걸리는데, AI 그림은 10초 만에 생성되는 데다 여러 번 돌려볼 수 있다.”

한 웹소설 출판사에 따르면 유명하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표지 제작에 100만원 안팎, 이름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200만~300만원이 들며, 의뢰부터 완성까지 한 달이 소요된다(출판사가 의뢰하는 표지는 가격이 더 높다). 프리랜서들이 일감을 올리면 고객을 매칭해주는 플랫폼 ‘크몽’에서 인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10만원대~40만원대에 최소 10일에서 한 달 걸려 웹소설 표지를 제작해준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똑같은 플랫폼에서 AI로 만든 웹소설 표지는 대체로 가격이 1만~5만원 선이며 작업 기간도 1~5일에 불과하다. 이 플랫폼은 ‘AI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를 아예 따로 만들었다. 앞서의 웹소설 작가는 “다가올 큰 변화가 일러스트 쪽에 먼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웹소설 플랫폼 '노벨피아' 랭킹 상위 10개 작품 중 5개가 표지를 AI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중 AI로 만든 표지는 3번, 4번, 8번, 9번, 10번이다(5월3일 오후 3시 기준). ⓒ노벨피아 갈무리

대학에서 그림 관련 전공을 했고, 2021년부터 웹소설 표지 외주를 의뢰받고 있는 전업 일러스트레이터 이 아무개씨는 이런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아직까진 확실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최근 단가 협상에서 기존보다 협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AI가 관련되어 있다면 무척 심란하다. 삽화 전문가 지망생 중에서도 너무 불안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분들이 많다.”

오픈 소스로 ‘통제 불능’ 된 AI

‘기술발전으로 특정 직군의 일감이 줄어들고 단가가 낮아지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문제 제기하는 것은 단순히 AI 기술 자체가 아니다. “AI가 학습한 그림과 사진에는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들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다. 이러한 AI로 결과물을 만들고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 창작자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윤리적인 지침과 규제가 필요하다(앞서의 일러스트레이터 이 아무개씨).”

이쯤에서 AI가 그림을 그리는 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용자가 ‘프롬프트’라 불리는 작업 지시 메시지를 영어로 입력하면, AI는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AI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스테이블 디퓨전이라는 이미지 생성 AI의 경우, 개 이미지에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무작위의 점(잡음, 노이즈)을 단계별로 추가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림을 망가뜨린다. 그런 뒤에, 이번에는 반대로 '개(dog)'를 의미하는 이용자의 프롬프트 입력에 맞게 노이즈를 제거해 원래 그림을 복원한다. 이런 방식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AI는 노이즈를 얼마나 제거하면 어떤 특성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지 예측한다. 이 예측에 딥러닝 알고리즘이 적용된다.

그런데 AI가 개를 포함한 온갖 동식물과 물건과 풍경과 개념의 이미지를 텍스트에 연결 지어 ‘복원(생성)’해내려면,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쌍이 필요하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인터넷상에서 긁어모은 50억 개가 넘는 이미지-텍스트 쌍을 학습했다. 출처는 워드프레스 같은 개인 블로그 플랫폼, 디비언트아트 같은 아트 플랫폼, 게티 이미지 같은 이미지 플랫폼 등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따로 동의를 구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게티 이미지는 스테이블 디퓨전 개발을 지원한 기업 ‘스태빌리티AI(Stability AI)’ 등을 상대로 지난 1~2월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스태빌리티AI 측이 이미지 수백만 장을 게티 이미지의 허가 없이 불법적으로 복사하고 처리함으로써 저작권을 침해했다”라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지난 1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세 명이, 어떠한 동의나 보상 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학습에 이용했다며 스태빌리티AI와 미드저니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미지 생성 AI가 “21세기 콜라주(조각들을 오려붙여 그림을 만드는 미술 기법) 도구”라며, 스테이블 디퓨전 등이 지금처럼 계속 운영된다면 “예술가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의 향방은 ‘공정 이용(fair use)’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특정한 상황에 한해 저작권이 있는 작업물을 허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변형해서 이용했는가’이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학습 데이터와 충분히 다르다면, 공정 이용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 연구에 따르면, 스테이블 디퓨전은 학습된 이미지의 일부를 거의 그대로 복제하지만, 그 비율은 0.03%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래서 스태빌리티AI 측은 이러한 소송이 기술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미지 조각을 어딘가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각 데이터의 특성 내지 패턴을 수학적 표현으로 압축했다가 프롬프트에 맞게 생성하기 때문에, ‘콜라주’가 아니라 ‘변형’이라는 논리다.

또한 AI 학습이 상업적이지 않은 용도로 이뤄졌다면 공정 이용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스테이블 디퓨전 자체는 스태빌리티AI의 자금 지원을 받아 독일 뮌헨 대학 연구진이 개발했다. 데이터를 수집한 주체도 독일의 비영리단체 'LAION'이다. 물론 스태빌리티AI는 이렇게 훈련된 AI를 기반으로 상업적인 서비스 ‘드림 스튜디오’를 만들었지만, 이처럼 AI 개발과 학습 단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이를 두고 ‘AI 회사들이 데이터에 대한 책임을 세탁하는 방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일부 학습 데이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지만, 그 비율은 낮다. 위는 AI 생성 이미지, 아래는 학습 데이터다. ⓒ'Diffusion Art or Digital Forgery? Investigating Data Replication in Diffusion Models' 논문 갈무리
스테이블 디퓨전은 일부 학습 데이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지만, 그 비율은 낮다. 위는 AI 생성 이미지, 아래는 학습 데이터다. ⓒ'Diffusion Art or Digital Forgery? Investigating Data Replication in Diffusion Models' 논문 갈무리
스테이블 디퓨전이 일그러진 게티 이미지 로고를 생성한 모습. ⓒ게티 이미지 소장 갈무리
스테이블 디퓨전이 일그러진 게티 이미지 로고를 생성한 모습. ⓒ게티 이미지 소장 갈무리

하지만 설령 스테이블 디퓨전의 학습이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의 사용이 결과적으로 불법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는 특히 스테이블 디퓨전이 2022년 8월 오픈 소스로 배포되어 누구나 그 설계도에 접근하고 수정할 수 있게 되고, ‘오토매틱1111(Automatic1111)’이라는 개인이 ‘스테이블 디퓨전 웹 UI’를 개발하면서 이용자들이 전보다 더 쉽게 이 AI를 이용하게 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켜 특정 스타일을 생성해내는 여러 파생 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허깅페이스’ 같은 사이트에 공유했다. ‘애니싱(Anything)’이나 ‘어비스 오렌지 믹스(Abyss Orange Mix)’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그림체를, ‘칠아웃 믹스(Chillout Mix)’를 통해 ‘아시아 여성의 사실적인 그림체’를 적용하는 식이다. 이런 모델이 정확히 어떤 이미지를 학습했는지는 불분명하며, 학습 또는 생성 단계에서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침해할 수 있다(앞서 일본 만화풍 이미지 생성으로 인기를 얻고 해킹되어 모델이 유출된 ‘노벨 AI’는 스테이블 디퓨전에 무단 이미지 전재 사이트 ‘단부루(danbooru)’의 그림을 학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이용자들은 인터넷상에 공유된 모델을 ‘미세 조정(fine-tuning)’할 수도 있다. 예컨대 스테이블 디퓨전에서 로라(LoRA, Low-Rank Adaptation) 같은 도구를 활용하면, 이미지 수십 장만으로도 특정 캐릭터나 그림체를 학습시키고, 이를 모방해 새로운 이미지를 이용자 자신의 프롬프트만으로 생성할 수 있다. 텍스트로 이미지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 아예 이미지에서 이미지를 뽑아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현존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넣어서 AI로 ‘리터치’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AI로 변형한 결과물을 올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돈을 모으다가 논란이 되어 모금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

스테이블 디퓨전 웹 UI 이용자들은 특정 스타일의 이미지를 추가 학습시킨 모델을 적용한다. 비슷비슷한 얼굴의 AI 그림을 볼 수 있는 이유다. ⓒAI Designer Allan 제공
스테이블 디퓨전 웹 UI를 응용하면 포즈를 지정해 애니메이션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AI Designer Allan 제공
스테이블 디퓨전 웹 UI를 응용하면 포즈를 지정해 애니메이션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AI Designer Allan 제공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된 것으로, 아직까지 AI가 만든 그림을 AI의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AI 그림에 이용자가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였느냐에 따라 인간의 저작권이 인정될 여지도 있다. AI 그림이라고 해서 저작권법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이는 원저작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생성 AI 규제해야” 국회 청원도

신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려면 결과물이 유사할 뿐 아니라(실질적 유사성), 보고 베낀 대상이 있어야 한다(의거성). AI에게 특정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학습시키거나, 어떤 작품을 아주 조금만 바꾼 정도에 불과할 경우, AI로 만든 이미지라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해당 그림을 만드는 데 AI와 이용자가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그림 창작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10일 ‘AI 이미지 생성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에 관한 청원’이 국회 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한 달 사이에 5만명(100%) 동의를 채웠다. 청원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AI 기업이 사용하는 학습 데이터에 저작권 있는 이미지가 포함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라이선스를 준수하도록 ‘AI 학습 데이터 세트의 투명성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둘째, AI로 만든 이미지에 대해 AI 모델, 원작자 등의 출처를 표시하고, AI로 만든 이미지임을 검증할 수 있도록 워터마크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이미지 생성 AI의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활용을 위해 저작권·초상권 등 관련 인식 개선과 교육을 실시하고 사례별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현실성 없는 제안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스테이블 디퓨전이나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 AI’나 챗지피티 같은 ‘글 생성 AI’가 개발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사용했을 경우 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논쟁은 결국 AI 학습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대한 보상을 지급할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례도 있다. 게티 이미지와 비슷한 이미지 플랫폼인 셔터스톡은 이미지 생성 AI 달리(DALL-E)를 만든 오픈AI와 협력해, AI 학습에 이미지를 제공하는 콘텐츠 생산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일일이 동의를 받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가능하더라도 소수의 대기업만 AI를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지(스태빌리티AI는 영국에 있는 스타트업이며, 특정 기업의 기술 독점을 막기 위해 오픈 소스를 고수한다), 또는 이런 조치가 기술발전을 늦추지 않을지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스태빌리티AI를 지지하는 비영리 연구기관 일루서AI(EleutherAI)의 ‘리서치 리드’ 양기창씨는 조심스럽게 “인간의 학습과 AI의 학습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돈을 내야만 접근할 수 있거나 소수에게만 공유되는 데이터를 무단으로 학습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적어도 인터넷상에 공개되어 누구나 볼 수 있는 데이터에 한해서는, AI에게 학습시키는 행위에 제한을 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인 표절은 규제해야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AI와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물론 인간 창작자들은 이런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국회 청원에 동의한 일러스트레이터 이 아무개씨는 “인터넷상에 공개된 이미지들은 공공재가 아니다. 작가들 한 명 한 명이 시간과 정성을 쏟은 결과물이고, 적어도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라고 그린 게 아니다. AI 학습이 말이 좋아 학습이지 결론은 도용 아닌가? AI의 학습과 인간의 학습이 똑같다는 주장은, 인간이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노동력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림 하나를 잘 그리기 위해,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쌓은 노력들을 모두 무시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AI 이미지 생성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에 관한 청원. 한 달 안에 5만명이 동의했다. ⓒ국회 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AI 이미지 생성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에 관한 청원. 한 달 안에 5만명이 동의했다. ⓒ국회 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논란의 핵심에 ‘화풍’이 있다. 인간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하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데 국내외적으로 화풍(그림체·스타일)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표현’이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장려하는 취지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화풍이고, 어디부터가 표현인가? 생성 AI의 등장으로 누구나 짧은 시간에 특정 아티스트 스타일의 작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해당 예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할까? AI로 만든 작품들이 원작자의 그림과 경쟁함으로써 원작자의 생계를 위협한다면, 이것이 해당 예술가의 현재 또는 잠재적인 시장가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근본부터 생각해야”

스테이블 디퓨전 초기 버전에서는 ‘in the style of(~의 스타일로)’라는 문구만 넣으면 고흐나 모네뿐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술가 스타일의 그림을 무한대로 생성할 수 있었다. 최근 개선 버전은 특정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려를 받아들인 모습인데,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정도 생성 AI가 나오기 전에, AI나 빅데이터 학습을 위해서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정을 향유하지 않는 경우에는 저작권법상 면책조항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국회에 같은 취지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런데 AI로 원저작자의 작품을 변형해 비슷한 스타일을 창작해내고, 그것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면, 그것을 ‘향유’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신용우 변호사).”

글로벌 최대 웹툰 플랫폼 ‘네이버웹툰’은 자동 채색 서비스 ‘AI 페인터’를 선보였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한 1500여 작품의 약 12만 회차분에서 이미지 데이터 30만 장을 추출해 웹툰스러운 채색 스타일을 학습시켰다. 지난해 말까지 AI 페인터로 채색한 작품 수가 누적 72만 장에 달한다. 네이버웹툰은 AI 기반 ‘오토 드로잉(자동 그리기)’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는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개발이며, 데이터 수집에 작가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네이버에 연재하려면 사인해야 하고, 협상력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설명과 동의가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 데이터 제공을 한 번 허락했다고 해서 영원히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도 불공정하다. 네이버가 이미지 생성 AI로 이익을 내기 시작한다면, 음악 저작권료처럼 소액이라도 웹툰 작가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술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걷어보면 결국 본질만 남는다. 누가 실제 일을 하고, 생산의 결과로서의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노동이 안정되고 주체적으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세계라면, AI가 숙련을 일부 해체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이 네이버웹툰에서 개발한 'AI 페인터'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그는 "네이버가 작가들이 제공한 데이터로 이익을 낸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AI 그림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흔히 카메라나 자동차의 등장을 예로 든다. 기술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맥락에서다. 그러나 카메라나 자동차와 달리, AI 그림은 때때로 원작자의 작품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경쟁한다. 깃허브의 코드 생성 AI ‘코파일럿’이 오픈 소스로 축적한 코드를 무단으로 복제했다며 지난해 11월 개발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깃허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데서 보듯, 이것은 기술에 뒤처진 특정 직군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력하고 기여한 자가 보상받아야 한다는 인간의 도덕관념에 대한 이야기다. 인류는 이미 디지털 시대의 음악에 대해 보상 규칙을 세운 바 있다.

일본에서 2021년부터 활동 중인 웹툰작가 ㄴ씨는 “AI는 창작의 개념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를 사용하는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사람도 이미지 합성기다’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창작에 빚지고 있다. 그럼에도 기존 원본과 유의미한 차이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해석해내려는 그런 수고가 창작자들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고 고민 아닐까. 우리는 왜 만화를 보고, 창작은 왜 우리 사회에서 가치가 있으며, 마우스 버튼을 딸깍 누르면 10초 만에 그림이 완성되는 시대에 ‘독창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스태빌리티AI CEO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 엑셀이 회계사들을 대체하지 않았듯, 스테이블 디퓨전이 예술가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리라고 낙관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글쓰기·음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단행본 표지와 앨범 커버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권 아무개씨(34)는 “나도 AI 그림과 사람 그림을 구분할 자신이 없다. 심지어 AI가 더 잘 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웃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림을 보는 건 그저 예뻐서라기보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가 궁금해서다. 결국은 (AI를 쓰든 안 쓰든) 창작자 자신이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가 AI 시대에 차별점이고 오리지널리티(고유성)이지 않을까.”

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주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을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제임스 앨런이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로 만들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예술은 죽었다. AI가 이기고, 인간이 졌다"라는 말을 남겼다. ⓒ뉴욕타임스 갈무리
지난 4월 독일 출신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젠이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WPA)'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에서 '전기공(The Electrician)'이라는 작품으로 1위를 차지한 뒤, AI로 만든 사진임을 밝히면서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사진의 영역은 AI 이미지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가? 아니면 (내 수상은) 실수였을까? 이 논쟁이 더 가속화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보리스 엘다크젠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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