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첫 토론회가 열렸다. 출판 노동자들은 열악한 출판 외주 노동 실태를 개선할 노사정 테이블 마련을 요구했다. 사용자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이 불참한 가운데 출협 상무가 ‘프리랜서들이 자기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출판노동자들의 반박이 나왔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가 참석한 가운데 출판 외주 노동 문제를 논의한 첫 자리다. 안명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출판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이 자리에서 ‘무늬만 프리랜서’인 출판 외주 노동자 문제가 갈수록 열악해지지만 정부가 실태 파악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사용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이날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3세미나실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사용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은 이날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출판계 70%가 5인 미만? “외주노동 쓰니까”

발제에 나선 안명희 지부장은 이 자리에서 출판업계 노동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영세 사업장이 많다’는 반론을 반박했다. 외주·프리랜서 남용이 허용되기 때문에 외려 출판업계에 5인 미만 사업장이 많다는 것이다. 안 지부장은 “출판사가 내부 인원을 아주 적게 둬도 출판사는 책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출판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5인 미만 출판사가 전체의 69%를 차지한다. 50인 이상 출판사는 2.4%다. 2020년엔 새 책 1권을 내는 데 자사 2.3명, 외주 1.7명이 들었다. 출판사들이 지난해 연간 책 한 권을 내는 데 들인 지출액에서 인건비는 23.2%, 편집비, 즉 편집·디자인 외주비는 12.1%였다. 안 지부장은 “책 한 권 만드는 인원에 출판사가 고용하지 않은 외주 노동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아웃소싱(외주) 시스템 탓에 이 문제가 나타난다”고 했다.

‘상근인데 외주’ 절반이 계약서 안 써, 하도급 중간착취도 

출판업계엔 ‘무늬만 프리랜서’가 고착화했다. 이른바 ‘상근 외주’란 이름이다. 안 지부장은 “출판사는 외주노동자를 출퇴근시키며 일하게 한다. 출판사의 지휘·감독에 업무 내용이나 업무수행 결과가 결정된다. 출판사가 정한 분량, 콘셉트, 방향에 맞춰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이들은 재직자와 팀을 이뤄 일한다.

▲안명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이 지난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안명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이 지난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출판사들은 외주 노동자와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0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선 출판사업체의 53.5%가 서면 계약을 하며 36.6%는 구두 계약을 한다고 답했다. 10%는 둘 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쓰더라도 출판사가 일방으로 유리한 내용을 강제한다. 노동자의 업무 완수 기한을 적으면서도 출판사 급여(작업비) 지급 기한은 적지 않거나 손해배상 등 위험 비용을 외주 노동자에 떠넘기는 내용들이다.

안 지부장은 출판 외주 노동자들이 낮은 작업 단가에 여러 외주 작업을 동시에 소화하느라 상시적으로 야간 노동을 하며 급여에 해당하는 작업비 지급마저 밀린다고 설명했다.

사측은 이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일한다거나 작업 도구를 개인이 준비한다며 프리랜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안 지부장은 이를 두고 외주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반증이라고 했다. 안 지부장은 “이들은 (임금 단가가 낮아) 동시에 여러 출판사 일을 해야 한다”며 “최근엔 외주 편집자들도 출판사가 요구하는 기기들을 사용해야 한다. 나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출판사가 요구하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단계 하도급 중간 착취 문제도 나타난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번역가들은 출판사가 아닌 중간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안 지부장은 그 수수료가 기본 30%에서 50%까지 이른다고 했다. 최근엔 편집·디자인 업무 중개 플랫폼까지 나타났다. 안 지부장은 “이 모든 산업 구조가 전혀 확인되거나 조사되지 않고 있다. 조사는 10년 전에 멈춰 있지만 현장은 훨씬 더 열악하고 교묘해졌다”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동자로도, 예술인으로도 보호 못받아 가장 열악

출판 외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도, 예술인으로도 법적 인정받지 못하면서 문화예술 산업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 놓였다. 문체부 제정 표준계약서가 없고,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으로 명시되지 않아 최소한의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출판 외주 노동자에도 예술인고용보험을 시행했지만 용역 지침서엔 출판이 빠지고 출판사들이 계약서도 쓰지 않아 현장에선 효과가 미미하다. 산재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안 지부장은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인으로 인정하고, 산재보험 당연 가입 대상을 출판 외주 노동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참여단체로 출판근로자를 명시해 출판 외주 노동자도 포괄하도록 요구했다. 안 지부장은 “그 기반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사용자 단체와의 테이블이 필요하다. 오늘이 그 자리라 생각하고 왔다”고 했다.

문체부는 출판 외주 노동환경 정기 실태조사와 표준계약서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예술인복지법에 출판 노동자도 포괄하겠다고 했다. 김도영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향후 (출판계 근로환경 실태) 정기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외주 근로환경 세부 항목을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표준계약서 마련도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성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윤성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윤성천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안 지부장이 “출판 노동자도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그렇다”며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인, 번역은 당연히 되는 거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들은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오현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예술인에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는 부분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지난한 과정이 많이 필요할 것”며 “예술인 특정이 되지 않으면 사업주나 노무 제공자가 보험료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다단계 구조 등에서) 사업주를 누구로 할지도 쟁점”이라며 “자체적 (보험의)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윤철호 회장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참석한 출협의 류원식 총무담당 상무이사(교문사 대표)는 출판 외주 노동자들이 프리랜서 노동 환경에 만족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프리랜서들이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 지금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며 “몇 분에게 입사 권유를 하면 대부분 거절한다”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류원식 총무담당 상무이사(교문사 대표)가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객석에서 플로어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류원식 총무담당 상무이사(교문사 대표)가 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객석에서 플로어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류 상무는 “출판사 의견과 상황이 달라 출판계를 대변한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왔는데 (플로어에) 자리도 안 내줘 사실 좀 서운하다. 투명인간 취급 받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이에 “핵심은 회사가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사용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부분, 사용자 단체로서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며 “여성의 경우 육아나 임신 가능성 등에 면접 자리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자유를 선택해 프리랜서를 한다는 건 상황 전반을 너무 모르는 말씀”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저희는 항상 대화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도 했다.

안 지부장은 “출협은 출판사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출판계 전체의 요구라며 정부에 많은 요구를 해왔다. 그럼에도 출판 노동에 있어서만큼은 ‘회원사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핑계”라고 했다.

회장 불참, 출협 관계자 “논의하는 자리 나가겠다”

류호정 의원은 “문제가 실제 있고 이를 인지하신 것이지 않나. 원해서 프리랜서가 된 거라고 하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방송스태프 쪽도 연말부터 외주 제작사 협회와 방송스태프노조, 문체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테이블을 만들어 소통을 시작했다. 돌아가셔서 테이블을 만드는 데 같이 힘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류 상무는 “출판계 문제나 실태에 대해 공유하고 인식 개선을 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일 테니 그에 대해 논의할 자리가 있거나 그러면서 얘기 많이 듣고 아이디어를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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