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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학의 주요 무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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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학의 주요 무대가 되다

입력
2021.09.2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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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조해진, 김금희 등 대표 작가들
나란히 제주도 신작 소설 배경으로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된 18일 관광객들이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된 18일 관광객들이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서로 긴 타원의 섬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1948년 미군 기록물이라는 자막 위로, 해안선에서부터 오 킬로미터를 표시하는 경계선이 두드러진 굵기로 그어져 있었다(…) 초가지붕들이 불탔다. 검은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검이 장착된 장총을 멘 옅은 색 제복의 병사들이 현무암 밭담을 뛰어넘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

최근 출간된 한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에 이어 또 한번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다. 친구의 급한 연락을 받고 제주로 향한 주인공이 칠십 년 전 그곳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친구의 가족사를 알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오랫동안 변방이었던 제주도가 최근 한국 문학의 주요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한강 작가 외에도 최근 국내 대표 작가들이 나란히 제주를 신작의 배경으로 삼았다. 4·3사건의 슬픔이 서린 역사적 공간인 동시에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천혜의 섬, 지형에서 비롯하는 독특한 문화가 살아숨쉬는 등 복합적인 요소가 제주를 문학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조해진 '완벽한 생애', 김금희 '복자에게'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조해진 '완벽한 생애', 김금희 '복자에게'


지난주 출간된 조해진 작가의 소설 ‘완벽한 생애’ 역시 제주도가 배경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표류하는 배처럼 살던 주인공이 제주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는 친구의 초대로 제주로 향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소설에서 제주는 "익숙한 일상에서는 기만이나 거짓으로 모른 척했던 진심”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볼 수 있게 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지난해 나온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복자에게’도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제주가 배경이다. 1999년 제주도 본섬에서도 배를 더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의 고모에게 맡겨진 이영초롱은 그곳에서 당찬 제주 소녀 복자와 친구가 된다. 훗날 판사가 되어 다시 제주도로 향한 이영초롱은 복자와 함께 실제 제주도 한 의료원에서 있었던 산재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켄 리우 외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전석순 외 '소설 제주'

켄 리우 외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전석순 외 '소설 제주'


제주의 다양한 설화를 이야기의 출발로 삼은 책도 있다. 지난 5월 출간된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은 1만8,000여 개의 구비서사가 전해지는 제주도의 풍부한 설화와 일본, 중국 설화를 SF세계관으로 새로 써낸 작품집이다. 일곱 명의 한국 작가는 아흔아흡골 설화, 설문대할망 신화, 서복 전설, 용두암 설화 등 일곱 개의 제주 설화를 현대적 SF로 다시 썼다.

전석순, 김경희, 윤이형, 구병모 등 젊은 작가 6명이 참여한 ‘소설 제주’는 요즘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구좌읍의 벨롱장, 협재와 송당, 사려니 숲과 절물 휴양림, 강정마을과 용머리해안까지 다양한 제주의 모습을 담아냈다.

르 클레지오 '폭풍우', 리사 시 '해녀들의 섬'

르 클레지오 '폭풍우', 리사 시 '해녀들의 섬'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작가들에게도 제주는 매력적인 문학의 공간이다. 그중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전통 직업이자 2016년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는 자주 소설의 영감이 되어 왔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2014년 제주 해녀들에게 헌사하는 작품 ‘폭풍우’를 썼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본 제주 해녀 기사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가 훗날 직접 제주를 찾아 해녀들과 만난 뒤 썼다. 국내에는 2017년 번역됐다. 2019년 국내 출간된 미국 작가 리사 시의 장편소설 ‘해녀들의 섬’ 역시 제주 해녀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외국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제주의 풍경과 언어, 생활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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