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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책 파격할인·새벽배송…쿠팡, 서점업계 `메기` 되나

김슬기 기자
입력 : 
2020-09-21 17:06:21
수정 : 
2020-09-21 17: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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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직거래 제안서 보내
"내년 매출 6000억 1위 되겠다"
서점업 본격적으로 확대 선언

업계, 책 배송전쟁 재점화
교보·인터파크도 새벽배송
사진설명
1조원 이상 규모로 성장한 온라인서점 시장에 쿠팡이라는 '공룡'이 선전포고를 했다. 21일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쿠팡이 출판사들에 보낸 '직거래 사업 제안서'에 따르면 쿠팡은 올해 도서 매출을 2500억원으로 추산하며, 서점업계 '빅4' 진입을 공식화했다. 내년에는 매출 6000억원을 올리며 업계 1위가 되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쿠팡은 여기에 더해 입점한 상위 18개 출판사 매출이 2년간 평균 431% 증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최근 출판사들에 공격적으로 직거래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도 오픈마켓인 옥션, G마켓 등은 주문을 받아 대형 서점을 통해 배송을 하는 판매대행을 해왔고, 카카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대형 서점에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책 판매를 해왔다. 하지만 유통업계 1위인 쿠팡은 기존 인터넷서점 인력을 영입해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직거래를 통해 서점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있다.

올 들어 코로나19 효과로 매출이 급증한 걸 반영하지 않더라도 지난해 쿠팡 매출은 7조1531억원으로, 서점업계 1위인 교보문고에 비해 10배 넘는 덩치를 자랑한다. 일일 사용자 수도 400만명으로 온라인서점 1위인 예스24 대비 10배 규모다. 쿠팡은 2017년 도서 매출 31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18년 624억원, 지난해 1019억원으로 매년 100%가량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 기준 온라인 3사와 오프라인 3사를 합친 6대 대형 서점 매출액은 1조8817억원. 이 중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75% 선인 1조4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미 쿠팡은 시장을 10% 장악했다.

직거래 제안을 받은 한 출판사 대표는 "올 들어 특정 도매상 매출이 급증해 이유를 알아봤더니 쿠팡 매출이 증가해서였다. 출판계에서는 이미 쿠팡이 '4대 서점'이 됐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무기는 배송과 할인이다. 쿠팡은 자정 전까지 주문 시 다음날 7시까지 새벽배송을 해주고, 휴일에도 배송을 쉬지 않는다. 할인 공세도 무섭다. 현재 쿠팡에서는 일부 아동서는 최대 80%에 달하는 '폭탄세일'을 하고 있다. 아동서 전집 등 세트 도서는 재정가를 매길 수 있어 자유로운 할인이 가능하고, 사운드북·놀이북 등 책과 놀이형 키트가 결합된 일부 도서는 정가제 대상이 아니라 할인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15%인 현행 할인율에 더해 쿠페이 머니 1%를 추가 적립해준다. 로켓와우 회원들은 금액에 상관없이 무료배송·반품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쿠팡 유저들은 밤 7~11시에 집중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쿠팡 도서 주문량 중 62%는 어린이, 유아·초등 참고서, 수험서다. 장보기를 하는 엄마들이 다음날 아침에 배송된 책으로 학습을 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미 엄지족 쇼핑 습관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출판사와 작가들은 쿠팡을 서점이라 생각지 않지만 독자들은 로켓처럼 배송되는 서점으로 생각한다. 그게 가장 두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쿠팡이라는 '메기'가 시장을 뒤흔들면서 서점업계에 배송전쟁이 다시 점화됐다. 인터파크는 지난 5월 15일 인터넷서점 중 처음으로 아침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교보문고도 5월 21일부터 이마트 쓱닷컴과 업무 제휴해 인기 도서 200종에 한해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6시 전에 받는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유통 공룡이 위협적인 것은 서점업이 '파레토 법칙'(매출 80%가 상위 20%에서 발생)이 통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은 100만종이 넘는 책을 유통하고 있지만 인기 도서 100종 매출이 절반에 달할 만큼 집중되어 있다. 자체 물류센터에서 인기 도서만 직거래해도 영업이익이 급증할 수 있다. 소외받는 신간이나 양서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소개하고 유통하는 기존 서점과 달리 시장의 과실만 따먹는 영업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출판업계에는 공포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출판사들은 대형 서점의 공급률 압박에 '완전 도서정가제' 등 규제를 요구하며 대립하고 있다. 이 벌어진 틈을 박리다매와 유통 혁신으로 공략하는 쿠팡의 진격이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 출판사와 대형 서점이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하는 사이 쿠팡이라는 '외계인'이 시장을 잠식해버리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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