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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완전도서정가제가 만들 문화적 가능성을 희망하며
[이병국의 문화톡톡] 완전도서정가제가 만들 문화적 가능성을 희망하며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21 11:37
  •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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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완전도서정가제가 만들 문화적 가능성을 희망하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도서정가제 폐지에 반대한다. 오히려 현재의 부분적 도서정가제는 완전도서정가제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1월 도서정가제가 어떻게 개선(혹은 개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섣부른 일이 될 수 있겠으나, 현행 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작가나 서점 등 책을 창작/생산, 유통하는 존재를 떠나 책을 읽는/소비하는 독자/소비자에게도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없다.

올해 11월, 일몰이 다가오는 도서정가제는 책의 정가를 정하고 할인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제도로 2003년 2월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참고서 등의 실용서나 출간 후 18개월이 지난 간행물의 경우에는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다가 2014년 11월 21일에 개정으로 발간 기간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간행물로 확대되었다. 물론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격할인과 간접할인을 포함하여 도서 정가의 15% 이내에서 할인을 허용한 불완전한 제도였다. 이때 발간 18개월이 넘은 도서는 출판사가 정가를 조정하여 실질적 할인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나 정가 조정을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가격 경쟁을 막고, 소형 출판사와 서점들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최근 도서정가제 개정에 반대하는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카드뉴스 ‘도서정가제 10문 10답’을 참조하여 말하자면, 전국 서점의 수는 도서정가제 이후 그 감소폭이 줄었으며 특히 독립서점, 이른바 동네책방의 수는 2015년 101개에서 2020년 650여 개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도서정가제가 책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독서인구는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책을 읽는/소비하는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는 복합적이어서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의 의견처럼 책값을 할인하여 소비자 후생에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한다고 해서 독서인구가 늘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사회에서 출판계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시장주의적 관점일 수도 있을 텐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놓는다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사회 각 분야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대 논리로 책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문화적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책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어 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체부 산하 2018년 책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서장애 요인으로 ‘시간이 없어서’는 19.4%였던 반면,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는 1.4%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책을 할인한다고 해서 독서인구가 늘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책은 올드 미디어이기 때문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의해 언제나 위협받는다. 텔레비전, 영화 등의 매체도 지금은 온라인에 기초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시장이 축소되거나 뉴미디어에 종속되는 추세이다.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미디어에 비해 책은 오랜 시간 투자해야 할 슬로우 미디어인 것도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는 어떤 점에서 책이 지식과 정보의 층위에서 읽히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의 교육 과정 속에서 책은 여가를 보내거나 위로와 공감을 얻기 위해 향유되는 미디어라기보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읽기를 강요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 그러한 교육 과정을 거친 이들이 성인이 되어 실용적인 차원에서 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경험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인이 ‘읽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은 스마트폰 화면이 늘 게임이나 영상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읽기 매체는 포털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제외하더라도 웹툰, 웹소설 등 웹 플랫폼을 활용한 장르의 글도 포함된다.

어쩌면 이번 도서정가제 개정의 핵심은 이 웹툰과 웹소설 등의 미디어를 종이책과 어떻게 차이를 둘 것인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종이책과 동일한 기준에 의해 도서정가제를 시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재 방식의 노출이나 무료 맛보기 제공, 종이책으로 인쇄되는 것보다 플랫폼 노출 빈도에 따른 수익 배분 문제와 도서정가제에 포함됨으로써 얻게 되는 면세 혜택 등. 복잡한 사안들이 걸려 있어 단순히 도서정가제에 포함하느냐 제외하느냐로 구분 지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는 전자책이 종이책과 웹소설 등과 교차하는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상호 간의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민감한 지점을 형성하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을 필자가 낼 수는 없다. 다만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에 맞는 제도적 장치를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점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하이브리드 시대이니만큼 모두를 아우를 포괄적인 법률 제정도 필요하겠지만 유연하게 세분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행령을 마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본다. 그러니 이 지면에서는 웹에 기반을 둔 플랫폼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필자는 여전히 올드 미디어인 책을 더 선호하며 종이책을 읽는 시간이 비종이책 미디어에 접속하는 시간보다 긴 사람이라는 점을 괄호 쳐 본다.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니까.)

이 지면이 문화를 다루는 지면임을 고려해 볼 때, 도서정가제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은 강조하고 싶다. 불완전한 상태이긴 해도 도서정가제는 동네책방의 증가를 불러왔다. 이는 단순히 서점이 증가하여 독자/소비자에게 책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책방의 증가는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들과는 분명한 차별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문화톡톡 지면을 통해 동네책방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만 동네책방은 책을 지식과 정보의 수단이 아닌 즐거움을 주는 존재임을 독자/소비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네책방은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특정한 시선을 배제한다. 소비자는 곧 독자이고 독자의 증가는 책방에서 책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의 증가를 불러온다. 읽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지점이 형성되는 것이다.

독자와 소비자는 각각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사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독자나 소비자나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맥락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을 독자로 볼 것이냐, 소비자로 볼 것이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에 우위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 관점의 차이가 책을 문화적 공공재 혹은 자본주의적 소비재로 만든다. 소비재는 개인의 소비가 절대적이다. 그것은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움직이며 가격이 저렴할수록 판매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꼭 가격만이 판매율을 늘리진 않는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시피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건 자본의 힘이기에 노출 빈도, 즉 홍보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뉴미디어에 노출되는 책은 더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다. ‘미디어셀러’라는 말은 이제는 공공연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런 이유로 단순히 공급/수요 법칙에 의해 소비하는 소비자와 그렇게 소비되는 소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이 소비자를 몰지각한 존재로 만들지는 않는다. 각각의 소비자는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이기를 원하며 최대한의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 소비를 한다. 단지 그 과정이 복합적일 뿐이다.

문화적 공공재 역시 개인의 소비가 절대적이지만, 이때의 관점은 책을 사는 것보다 책의 내용을 나누는 데 방점이 찍힌다. 지식과 정보의 전달이라는 실용적 측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개인의 영역에 제한하지 않고 상호 소통 가능한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문화적 층위에서 책을 향유하도록 이끄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책을 소비하게 만든 이들이 상실한 그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하는 문화적 접근이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책을 산업적 차원에서 도태될 올드한 미디어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임과 영화 등의 뉴미디어 역시 그 기원은 책에 기반을 둔 문화적 다양성에 있다. 책 읽는 재미를 느끼고 나눌 수 있는 동네책방이라는 장소를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동네책방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필자의 문화톡톡 8,9월 글을 참조하길 부탁한다.)

덧붙여 책은 단지 많이 팔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을 담보해야 하기도 하다. 물론 질 좋은 책을 많이 팔면 좋을 것이다. 작가도 먹고살아야 하고 출판사나 서점 등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많이 팔기 위해서 책을 만드는 건 문화적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독자의 효용이 제한적인 연구서, 학술서 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특정 독자층을 타켓팅한 기획 전문서적들이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 자기계발서나 (최근 동학개미운동으로 주목받는) 주식투자서 등도 필요한 것처럼 전문서적들도 판매량은 적지만, 필요한 책임은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책은 싸게 많이 팔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의미 있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에 놓여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정한 운동장이 필요하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기능한다. 15% 할인이 가능한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이득을 충분히 취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도서정가제의 빈틈인 할인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송기사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저임금 구조의 무료배송 시스템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할인이 가능하게 되는 구조 즉 책이 공급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형서점과 동네책방의 공급률이 차등이 발생하는 것, 그로 인해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의 할인이 가능하게 되는 불공정한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_네이버 블로그 Sound body Sound mind
사진출처_네이버 블로그 Sound body Sound mind

그런 점에서 도서정가제 폐지가 아닌 완전도서정가제의 도입이 절실하다. 그것이 안 된다면 책 공급률을 공정하게 조정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평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온라인 공룡인 아마존을 가져오는 것은 올바른 경우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약육강식의 논리일 따름이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면 우리 삶은 각자도생의 피폐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책이 아니라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상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자리 등의 경우들에 적용해 볼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상해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유럽의 도서정가제의 예를 드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질 좋은 책의 생산과 독서인구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삶의 기반이 되며 그 한 층위를 담당하고 있는 책의 지속 가능한 영향을 위해서라도 도서정가제의 긍정적 측면을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완전도서정가제로 말미암아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동네책방들의 상생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소비자로 하여금 책 읽는 즐거움과 그것을 나누는 보람을 경험하게 하여 우리 삶의 다른 가능성을 향유하게 되는 내일을 상상해본다.

글 :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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