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책을 싫어한다고요? 어떤 책 읽을지 몰랐을 뿐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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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 20대가 몰려든다
‘아그레아블’ ‘문토’ 등 독서모임 20대 회원 늘어… 80% 넘는 곳도
고전-인문과학서적 주로 다뤄
“내 삶의 외연이 넓어지는 느낌… SNS의 공허함 책으로 채워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세계 안에서 10대를 지낸 20대에게 독서모임은 취업 준비 등으로 폭이 좁아진 삶의 외연을 넓히는 공간이자 또 다른 인생을 만나는 항구와 같다. 이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독서를 ‘배울’ 준비가 돼 있다. 소셜 살롱 아그레아블의 독서모임. 아그레아블 제공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세계 안에서 10대를 지낸 20대에게 독서모임은 취업 준비 등으로 폭이 좁아진 삶의 외연을 넓히는 공간이자 또 다른 인생을 만나는 항구와 같다. 이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독서를 ‘배울’ 준비가 돼 있다. 소셜 살롱 아그레아블의 독서모임. 아그레아블 제공
“내가 난독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음으로 책을 완독해 봤다.”

작가 이묵돌(26)이 운영하는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한 일부 20대 회원의 소감이다. 이 작가는 올 초부터 유료 회원 50명을 모집해 한 달에 4회,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 50명 중 20대가 약 80%다.

10대 시절을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획돼 ‘책이라고는 교과서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낸’ 20대가 독서모임에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30대 직장인을 겨냥한 독서모임 중심의 유료 회원제 소셜 살롱인 ‘아그레아블’ ‘트레바리’ ‘문토’ 등에도 20대 회원이 점차 늘고 있다. 회원 800명가량인 아그레아블은 20대가 20∼30%를 차지한다. 월간지 ‘신동아’가 지난해 꾸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는 무료 독서모임 ‘지식커뮤니티 북치고’ 역시 예상 밖으로 회원 60여 명 중 20대가 80%를 넘었다.

종이책하고는 벽을 쌓은 것 같고, 독서 문화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자인하는 20대가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박기수 씨(24)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 드라마 등은 SNS에서 공감대가 넓지만 책 이야기를 하면 “아는 척하냐”는 또래의 반응에 숨이 막혔다는 뜻이다. 경찰 공무원인 박 씨는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평소 듣지 못하던 얘기를 들으면 내 외연이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지만 주위에 내용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독서모임에 발을 들여놓는 20대도 적지 않다. 대학에 와서 우연한 계기로 책의 세계에 빠져 문예창작으로 전공을 바꿨다는 정혜성 씨(24)가 그렇다. 아그레아블 모임에 나가는 정 씨는 “이 모임에서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고 말했다.

SNS 친화적인 데다 대학 동아리 활동도 폭이 좁아지고 취업 준비에 매몰되면서 다른 자극을 바라는 마음도 한몫한다. 독서모임이 ‘삶의 환풍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작가는 “SNS에 떠도는 가벼운 콘텐츠의 공허함을 채우고 싶고, 유튜브 넷플릭스의 콘텐츠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찾는 것도 같다”고 풀이했다.

중고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나온 정소라 씨(26)는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독서모임의 플랫폼 역할에 주목한다. 정 씨는 “독서모임은 소설이나 고전 한 권을 다 읽도록 시키는 미국 영어 수업과 유사하다”며 “책에 대해 생각을 나누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독서모임 회원인 윤현수(가명·26) 씨는 “활자 속에서 얻는 위로와 모르는 사람이 전해주는 공감이 새삼 고맙다. 묘하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 독서모임에서는 국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접수한 에세이류보다는 국내외 고전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다룬다. 20대가 평소 많이 접하지 않는 새로운 ‘장르’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정답을 찾는 공부 습관과 누군가 핵심을 정리해주는 데 익숙한 20대에게 독서모임은 ‘책읽기에 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윤 씨는 “20대는 책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책을 접한 적이 없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드는 우리 세대의 속성상 독서에도 깊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은 이들에게 새로운 식습관을 들게 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독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독서모임#작가 이묵돌#독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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