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침묵

손연일 월곡중 교사

등교개학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든 것은 급식실에서 한 자리씩 띄어 앉아, 한 방향을 보고, 말없이 식사를 하는 것인데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이전에는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고, 말없이 밥만 먹을 때는 무언가 분위기가 무겁거나 불편할 때였는데 말없이 밥을 먹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손연일 월곡중 교사

몇 주가 지나며 적응하고 있는 것도 있다. 처음에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마스크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를 지키며 아이들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등교를 하자 방역지침을 지키며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모둠 수업도 안 된다, 함께 교재 교구를 쓰는 것도 안 된다. 새 학기 시작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아이들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이름을 외워 불러주기도 힘들었다. 의사소통에서 몸짓이나 표정이 55%를 차지하고 어감이 38%, 어휘가 전달하는 것이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히 소통을 하는 데 마스크가 많이 제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때문인지 아이들은 발표도 덜하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수업이 재미가 없고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공원에서 유치원생들이 마스크를 쓰고서도 재잘거리며 산책하는 것을 보았다.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나만 유독 힘들어 하나? 다른 선생님들도 나처럼 힘들어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마스크 쓰고 일렬로 앉아 있으니 이전보다 더 조용해서 수업하기 편하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마스크 너머 아이들의 침묵이 견디기 힘들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침묵에 대해 탐구할 기회가 있었다. 침묵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묵상하다 700년 전 연꽃 씨앗이 발아해 꽃을 피웠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700년이나 껍질 속에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견딘 연꽃의 긴 침묵의 시간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아마 견디고 있겠지. 다시 맘껏 웃고 떠들 수 있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한창 활동적인 시기인데도 묵묵히 마스크를 쓰고, 방역지침에 따라 거리 두기도 충실히 하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애쓰고 있구나. 반면에 나는 이전의 나의 수업 방식에 얽매여 안 되는 부분에 집중하며 불평하고 있구나.’

내 불평의 원인을 자각하고 인정하자 상황이 금세 바뀌었다. 아이들을 연민과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자 다양한 소통과 수업 방법이 떠올랐다. ‘한계는 자신 안에만 존재한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한계에 집중하면 스스로 장애의 장벽을 쌓아 힘겨루기를 하는 것과 같고, 가능성에 열려 있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면 어느새 장애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

학교 텃밭 상자의 채소들이 비가 오는 날들이 계속되지만 그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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