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책은 한권의 영혼" 작고 소설가의 유작들

김유태 기자
입력 : 
2020-07-05 17:01:02

글자크기 설정

코로나19로 유명 달리한
칠레 출신 루이스 세풀베다
스페인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등
최근 세상 떠난 작가 작품 출간
사진설명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 스페인의 한 소설가가 사망한 지난달 19일, 해당 작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문구다.

소설가의 이름은 고(故)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1964~2020)으로, 위의 문구는 전 세계 42개국에 출간돼 1200만부가 팔린 그의 대표작 '바람의 그림자'의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소설에 관한 소설' 혹은 '책에 관한 소설'이던 책의 저 문장은 저자 자신의 영원한 안식일에 이르러 스스로를 추념하는 문장이 됐다.

죽음과는 아직 거리가 먼 나이에 떠난 사폰의 사인은 암이었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세계적 작가는 사폰뿐이 아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쓴 칠레의 대표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1949~2020)도 지난 4월 16일 코로나19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폰과 세풀베다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겁다. 그들이 남긴 유작을 되짚어봤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는 한국에선 문학과지성사가 처음 출간했다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됐다. 사폰의 작품을 이해하는 관문은 '잊힌 책들의 묘지'이다. 단지 인물, 사건, 배경으로 소설이 이뤄지는 단계를 넘어서서 책 그 자체를 다루는데 인간에게서 '완전히 망각된' 책들만 꽂힌 미로와 같은 도서관이 배경이다. 마치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1990년작 영화 '시네마 천국'을 떠오르게 한다.

1945년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다니엘은 아버지에게 이끌려 거대한 미로의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는다. 방문자에겐 두 원칙이 있다. 그곳의 어느 것도 발설하지 말 것, 그리고 도서관의 책 한 권을 양자로 삼을 것. 다니엘은 훌리안 카락스란 이름의 수수께끼 작가 '바람의 그림자'를 택하고 다니엘은 카락스를 조사한다.

'이곳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책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 새로운 영혼의 수중에 들어가길 기다리며 영원히 살고 있지. 가게에서 우리는 책들을 사고 팔지만 사실 책들은 주인이 없는 거란다. 여기서 네가 보는 한 권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겐 가장 좋은 친구였었지.'('바람의 그림자' 중에서)

프랑스 르몽드는 사폰의 대작 '바람의 그림자를 "문학이 최고의 형태로 구현된 한 권의 책"이라고 극찬했다.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일찌감치 세계 최정상 자리에 오른 대문호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 부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한국에서도 열린책들에서 출간돼 꾸준한 호응을 받고 있다.

소설은 폭압적인 언행으로 무지막지하게 이(齒)를 뽑는 치과의사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가 썩은 건 본인이 아니라 "정부 탓"이라며 환자를 거칠게 대하는 치과 의사는 문명의 이기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의사는 해당 지역의 아마존 거주 노인에게 연애소설 두 권을 주고 떠난다.

글을 읽을 줄만 알고 쓸 줄은 모르는 노인 안토니아 호세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평범한 연애소설에 관심이 없고 오직 불행을 겪은 이후에 행복을 찾는 연애소설을 즐긴다. 아마존의 현실과 타자로서의 외부 세계가 조응하면서 여정과도 같은 인간 삶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에 관한 성찰을 준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연애 소설 읽는 노인' 중에서)

지난달 20일에는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 '역사의 끝까지'도 열린책들에서 출간됐다. 한때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변혁의 최전선에 섰지만 이제 황혼에 이른 혁명가 벨몬테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세풀베다는 피노체트의 정권 장악 이후 망명했던 지식인이었다.

'어디로 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과거에 우리가 했던 것, 그리고 과거 우리의 그림자가 마치 저주처럼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다닌다'('역사의 끝까지' 중에서)란 그의 문장은 소설가로 기억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고민을 일러주는 것 같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