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는 '상처' 드러낸 해골이고 내장이죠" 흑인 여성 퀴어의 고통을 노래한 시로 인스타를 사로잡은 이르사 데일리워드

이영경 기자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인스타그램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시를 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미투운동에 대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이 여러 삶을 구할 것입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인스타그램 캡처

이르사 데일리워드는 인스타그램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시를 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미투운동에 대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이 여러 삶을 구할 것입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인스타그램 캡처

““울지 마./ 좀 있으면 너도 좋아할걸”이라고 말한/ ‘하나’로부터.// 그리고 일이 벌어진 후 고맙다고 말하며/ 네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던 ‘둘’…그리고 종종 그들은 말한다/ 네가 그걸 원하는 거라고/ 그리고 가끔은 너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천만다행으로 너는/ 끝없이 리셋하고/ 세팅하고/ 리셋한다.// 안 그러면 어떻게 찢긴 살을 봉합할까?/ 안 그러면 어떻게 몸이 살아남을까?”(‘뼈’)

팔로어 16만명을 거느리고, 아이폰 메모장에 쓴 시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30)의 시다. 맛있는 음식, 멋진 여행지, 일상의 하이라이트만을 전시하는 ‘자랑’에 최적화된 플랫폼 인스타그램에 데일리워드는 자신의 치부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시를 올린다.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찢긴 살과 뼈를 그대로 보여주는 시들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데일리워드는 시인이자 배우, 모델, 퀴어활동가, 페미니스트다. 영국에서 자메이카계 이민 2세대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데일리워드는 싱글맘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름답고 성장이 빨랐던 데일리워드는 “당신의 몸이 언제나 어린 자아를/ 배신했기 때문”에 “남자의 무게나, 가슴앓이나, 아기를 감당할/ 나이도 못 된 채로/ 여자의 일을 하게 만들었”(‘그녀를 사랑하는 이유와 방법’)다. 데일리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성폭력과 2차 가해를 당했고, 마약 중독과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성폭력, 퀴어로서의 정체성, 마약 중독 등 자신의 치부를 날것으로 드러낸 시편을 선보인다.

“그 시들은 해골이고 내장입니다. 내면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시집 <뼈>(문학동네)와 에세이 <테러블>(문학동네)을 출간한 데일리워드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시는 몸에서 지면으로 감정을 옮기는 놀라운 수단”이라고 데일리워드는 말한다. 그의 시에 화려한 꾸밈은 없다. 몸과 뼈 속에 새겨진 고통과 상처를 응시하는 흔들림 없이 단단한 시선이 있다. 화려한 치장이 난무하는 인스타그램에서 단순하지만 강렬한 그의 시는 대중의 눈길을 붙잡았다. 2014년 자비출판한 시집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7년 펭귄출판에 의해 정식 출간됐다. ‘인스타 셀럽’을 넘어 ‘대중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데일리워드는 자신의 시에 대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 의미 있고 새로운 것, 소음에 대한 해독제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언제나 아름답다. 예쁘건 예쁘지 않건”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데일리워드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흑인·여성·퀴어라는 이중삼중의 소수자성을 가진 데일리워드는 그것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의 삶이 곧 시다. 그는 “그걸 쓰기 두렵다면,/ 좋은 징조다./ 죽도록 겁이 난다면 지금 쓰고 있는 게/ 진실임을 안다는 뜻이겠지”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 시를 게재하는 이르사 데일리워드.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시를 게재하는 이르사 데일리워드.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펴낸 <테러블>은 자서전적 에세이로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시라는 형식에 기댄 얇은 보호막조차 걷어버리고 날것의 상처를 드러낸다. 나이 서른에 치부를 모조리 드러낸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걱정은 뒤로 미루고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 이야기는 절대 글로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통 아침 시간에 글을 썼습니다. 저의 머리와 심장이 깨끗하고, 기억력이 가장 좋을 때죠. 그것은 아름다운 훈련이었습니다.”

데일리워드의 글을 읽어나가는 건 쉽지 않다. “이해하려면 이십년이 걸리고 간이 망가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데일리워드는 친구 아버지의 은근한 시선을 즐겼고, 마약에 중독돼 삶을 방기하기도 했다. ‘끔찍한 것(terrible)’들은 그의 안에도 밖에도 있다. 치부마저 끌어안고 상처의 맨 살을 열어보이는 그의 글은 강렬하게 시선과 심장을 사로잡는다. 고통을 직시하고 수용하는 인간은 강인하고 아름답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낀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당신은 무엇이든 물리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르사 데일리워드. ⓒ Mike Kobal

이르사 데일리워드. ⓒ Mike Kobal

데일리워드는 싱글맘인 어머니 마샤 밑에서 자랐다. 오빠와 남동생은 서로 다른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어머니는 야간근무를 하며 힘겹게 돈을 벌었다. 노력이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마샤는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다. 데일리워드는 엄격한 조부모에게 맡겨졌고 어머니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운동회 날엔 야간근무로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옷을 뒤집어 입고 데일리워드의 학교를 찾았다가 운동회가 취소돼 헛걸음을 하기도 한다. 사랑과 원망, 연민이 교차했던 존재였을 어머니에 대해 데일리워드는 “마샤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녀 자신은 영영 보지 못할 유산을 만든 사람.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워드는 런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무대를 옮겨 배우와 모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엔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와 ‘모든 것과 유대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협업을 하기도 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드러내고 긍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데일리워드의 가장 큰 재능이자 무기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운동’에 대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이 여러 삶을 구할 것이다.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에서 혐오와 차별에 고통받는 소수자들을 향해서도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위로와 사랑을 찾으세요.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내 시는 '상처' 드러낸 해골이고 내장이죠" 흑인 여성 퀴어의 고통을 노래한 시로 인스타를 사로잡은 이르사 데일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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