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파급력 커져 입양아들에게도 뿌리를 찾을 선택지가 생겼다" 스웨덴 입양아 소설가 트로치

글·사진 이영경 기자
한국 입양아 출신 스웨덴 소설가 아스트리드 트로치를 지난달 28일 스웨덴 예테보리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어릴 땐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 나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도 선택지가 없었다”며 “한국문화가 점점 더 호응을 얻고 파급력이 커지는 시기를 사는게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국 입양아 출신 스웨덴 소설가 아스트리드 트로치를 지난달 28일 스웨덴 예테보리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어릴 땐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어 나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도 선택지가 없었다”며 “한국문화가 점점 더 호응을 얻고 파급력이 커지는 시기를 사는게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에 비친 한국의 얼굴은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 소설가 한강의 문학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한국을 이야기할 때 ‘입양아’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9000여명의 한국 출신 입양아들이 있으며, 아직도 해마다 150여명의 입양아들이 스웨덴으로 오고 있다. 지난달 말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국제도서전에도 한국 출신 입양아들이 많이 찾았다. 한국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한 스웨덴 기자는 자신의 입양서류를 가져와 자신의 부모나 출생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상실감은 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스웨덴의 소설가 아스트리드 트로치(49)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첫 소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스웨덴에서 입양아로서 성장하며 겪은 혼란 등을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트로치에게 한국은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었다. 지난 5월 세계의 한인 작가들을 초청한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트로치는 예테보리도서전에서 김행숙·신용목·진은영 시인 등의 낭독회 행사 사회를 맡았다. 그를 지난달 28일 예테보리도서전에서 만났다.

“스웨덴의 입양아 대부분은 1980년대에 입양됐어요. 저는 입양아들 가운데 가장 윗 세대에요. 1970년 1월에 태어나 6월에 스웨덴에 입양됐어요. 사실 제가 ‘배달’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스웨덴에서 저는 항상 눈에 띄었어요. 한국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외모가 비슷하니까 익명성이 부여될 것 같았어요. 백인들이 주류인 스웨덴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외모를 지녔다는 게 항상 불편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보지도, 한국어를 하지도 못하지만 한국에 소속감을 느껴요.”

트로치가 어린 시절, 한국은 지도상에 위치한 반도국가일 뿐이었다. 일본이나 중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와 구별되지도 않았다. 트로치의 부모님은 그에게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 중국 공연, 일본 영화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트로치는 “어릴 때 스웨덴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없었다. 한국 문화의 파급력이 세계적으로 커지는 시기를 살고 있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입양아들에게 ‘뿌리’를 선택할 선택지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남매들도 한국에서 입양됐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트로치에겐 스무살 아들이 있다. 트로치는 아들에게 ‘한국에 대한 선택지’를 주기 위해 아들이 8살 때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사춘기가 되어 정체성 혼란이 오기 전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예술사를 공부하는 아들은 <올드 보이>등 한국 누아르 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트로치는 1995년 첫 소설을 쓰면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다른 사람과 같아 보이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지만 입을 열면 상황이 달라졌다. 다시 “넌 어디에서 왔니?”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입을 닫고 고요히 한국의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트로치는 스웨덴에 번역된 한국 문학을 거의 다 읽었다. <채식주의자> 등 한강의 소설은 스웨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강의 작품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며 “동년배 여성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겐 한국 가족이 없는데,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한강이 세계적 작가가 된 점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아스트리드 트로치는 1970년에 스웨덴으로 온 ‘윗 세대’ 입양아다. 그는 아직도 연간 150여명의 입양아들이 스웨덴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트리드 트로치는 1970년에 스웨덴으로 온 ‘윗 세대’ 입양아다. 그는 아직도 연간 150여명의 입양아들이 스웨덴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예테보리도서전 주제는 성평등(Gender Equality)였다. 트로치는 “스웨덴에서 성평등은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 스웨덴은 복지나 성평등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늘어나는 이민자와 난민은 사회적 이슈이며 이에 반대하는 정당도 있다. 스웨덴 남부의 한 지방자체단체는 성소수자 권리를 주장하는 ‘프라이드 깃발’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은 ‘미투 운동’에 따른 스웨덴 한림원의 성폭력 파문으로 발표를 미루고 올해 두 명의 수상자를 한꺼번에 발표했다. 트로치는 노벨문학상이 취소된 것에 대해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투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며 “하지만 백래시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여성들이 비난받는다. 앞으로 꾸준히 토론되고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로치는 스웨덴작가조합 부의장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지냈다. 스웨덴 작가조합은 작가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픽션·논픽션 작가, 번역가, 아동책 작가 등 네 분야의 작가들을 모두 포괄한다. 트로치 소설과 희곡, 어린이책 등 다양한 방면의 저서를 낸 트로치는 네 분야에 모두 속한다.

“작가 권익 대변하는 단체로 작가들의 원고료와 저작권료 등 법적 문제를 다룹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면 일정 금액이 작가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공공대출권 제도’를 작가조합의 요구로 도입하게 됐어요. 의무는 아니고 권고사항입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작가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작가조합의 노력으로 작가들의 인세 수준도 높은 편이다. 유명 작가는 인세의 50%까지 받는다. 트로치는 26% 정도를 받는다고 밝혔다. 한국 작가들이 통상 10% 수준의 인세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트로치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2001년 국내에 출간됐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됐다. <이 땅의 이방인들> <애국자들>과 같은 그의 작품들은 편견과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 차별과 외로움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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