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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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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창조보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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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은 19명의 탈핵 전문가들이 함께 쓴 두툼한 책이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만든 교과서'라는 부제에 걸맞게 핵과 핵발전의 기본 현황과 역사, 핵사고 등 핵발전에 따른 문제점, 우리나라의 핵발전과 대안 모색 등 핵발전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이 책은 천주교창조보전연대의 기획과 국내 탈핵운동 진영에 속해 있는 여러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세상에 나왔다. 책의 기획 취지와 의도는 천주교창조보전연대 대표인 양기석 수원교구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이행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핵발전소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순간,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관심사의 한가운데에 '탈핵'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이 기존의 훌륭한 탈핵 저서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탈핵활동가들에게는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고, 수많은 대중들에게는 핵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탈핵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관심과 행동을 확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2~13쪽)

우리에게 탈핵은 왜 필요한가. 그 무엇보다 핵사고가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유례 없는 위험성 때문이다. '세계 핵발전소 중대사고'(3장)를 토대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28주년, 사망자는 10만 명

오는 4월 26일은 1986년 구소련(현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핵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28주년이 되는 날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정전사태 발생에 대비한 비상전력공급체계 작동 실험 중에 일어났다. 이날 새벽 1시 24분에 일어난 최초의 폭발로 64미터 높이의 원자로 건물 윗부분이 파괴되었다. 1000톤에 달하는 원자로 지붕도 날아가버렸다.

사고 당시 체르노빌 4호기에는 불과 2년의 가동으로 원자로 안에 히로시마형 핵폭탄의 약 2600발분의 방사능이 쌓여 있었다. 그중 외부로 유출된 것은 약 800발분이며, 그 오염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2005년, 유엔과 관련국들 간의 공식 조직인 '체르노빌 포럼'의 집계 결과 사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수치'만 4000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포럼 보고서를 비판하는 'TORCH(The Other Report of Chernobyl)'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암 사망자를 약 3만~6만 명으로 예상한다. 그린피스 위탁으로 발표된 연구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로 전 세계에서 9만3000명이 죽고 13만7000명이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망자를 10만 명으로 추산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기 7년 전인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서스쿼해나 강 가운에 있던 쓰리마일 핵발전소 2호기에서 멜트다운(meltdown;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했다. 가동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만의 일이었다.

쓰리마일 사고는 순환펌프라는 간단한 장치의 고장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쓰리마일 사고를, 핵발전 설비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기술장치가 사소한 고장으로도 큰 위험이 초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하고 있다.

쓰리마일 사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핵 발전에는 '안전신화'가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책 곳곳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노먼 라스무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1975년에 미국 정부에 제출한 일명 라스무센 보고서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라스무센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능이 소량 유출되는 노심용융사고는 100만년에 1회, 방사능이 대량 유출되는 괴멸적 사고는 10억년에 1회 일어난다고 추산했다.

보고서 책임자였던 라스무센 교수는 원자로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양키 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보다 낮다"는 발언까지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보고서로부터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쓰리마일 핵발전소사고가 터졌다. 핵발전소의 중대사고로 개인이 사망할 확률이 200억분의 1이라고 한 추정이 무색해져 버렸다고 한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도 마찬가지다.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06년 1월 회의 의사록에는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두 개 다 작동하지 않을 확률은 10-8~10-9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확률적으로 볼 때, 핵발전소사고가 거의 일어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로 인해 발전기는 모두 멈추었고, 결국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독일 막스플랑크재단의 화학연구소는 2012년 5월 <중대 핵발전소사고로 인한 방사능 낙진의 전 지구적 위험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의 민간 핵발전소 가동시간과 노심용융 사고 건수로 계산할 때, 앞으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10~20년에 한 번 꼴로 나왔다고 한다. 이는 과거 전망치보다 200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노심용융과 같은 중대 핵사고는 핵발전소 개수가 높은 나라 순으로 일어나고 있다. 현재 세계 다섯 번째로 핵발전소 개수가 많은 우리나라가 위험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자주 지목되는 이유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에 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어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주변에 인구가 밀집해 있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리핵발전소 주변 30km 내에 342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 부산과 울산, 경주를 이은 고리, 월성 동해안 일대에만 총 1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예정인데, 이 인근에 4백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려 있다. (290~291쪽)

문제는 핵발전소에 겹겹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정부가 말하는 안전을 믿을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추악하게 펼쳐지는, 이른바 핵 마피아들의 원전비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 따르면, 검찰은 2013년 5월부터 100일간 이루어진 원전비리 수사를 통해 원자로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부품납품과 설비공사 계약 등의 금품수수, 인사 청탁 등 기타 비리와 관련하여 구속 43명, 불구속 54명 등 모두 97명을 기소했다. 여기에는 한수원 전 사장과 한전 부사장 등 관련 업계의 최고위층 간부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 밀착 인사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복마전 비리라 아니할 수 없다.

핵발전소 문제는 심각한 핵사고와만 관련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핵발전소 주변의 자연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온배수 문제다. 핵발전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인 뒤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와 똑같다. 다른 점은 연료로 방사능을 배출하는 우라늄이 쓰인다는 점, 뜨거운 증기를 식혀 물로 만든 다음 다시 증기를 만드는 과정에 투입하기까지 많은 양의 냉각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냉각수로 쓰이는 바닷물-기자 주) 양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인데, 핵발전소 1기당 초당 50~60톤에 이른다. 이 온배수는 주변물의 온도보다. 평균 7도 정도 높은 상태로 배출되는데, 이것이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한 장소에 6기씩 발전소가 몰려 있기 때문에 초당 300톤 이상의 더운 물이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219쪽)

초당 300톤이면 1분에 3600톤, 1시간에 21만6000톤이다. 하루 24시간으로 계산하면 518만40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온배수의 영향 범위를 익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영광 5·6호기 건설 당시의 환경영향평가에서 한수원은 환경영향 범위를 남으로 4.5km, 북으로 6km으로 예측해 1136미터의 방조제를 건설했다. 하지만 실제로 2001~2005년 한국해양연구원 연구결과로는 남으로 20km, 북으로 17km까지 온배수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핵발전을 향한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히 커졌다. 덕분에 핵발전의 안전성 신화는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런데 핵발전의 경제성 논리는 여전히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핵발전=가장 저렴한 에너지'라는 등식으로 인해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핵 산업계가 내세우는 경제논리, 현실 '왜곡'

실상은 어떨까. 이 책은 핵산업계가 내세우는 경제 논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핵발전 비용에서 연료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핵발전의 경제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길게는 50~60년, 짧게는 30~40년으로 전망되고 있는 우라늄 매장량도 그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발전설비별 발전원가 재산성표(245쪽)를 보면, 발전원가만 놓고 보았을 때 핵발전은 47.9원(kwh당, 80% 이용율 기준)으로, 62.4원인 석탄이나 119.6원인 가스에 비해 낮다. 하지만 과세 및 대기오염 비용·지중화 비용·사고위험 비용 등을 고려하여 원가 재산정을 한 결과를 비교해 보면, 핵발전 95~143원, 석탄 88~102원, 가스 92~121원으로 그 비용이 가장 높다.

국내·외 핵발전에 관한 경제성 연구결과들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첫째, 핵발전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둘째, 핵발전 사용으로 인한 사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존재한다. 넷째, 최대한 합리적인 가정을 하고, 핵발전 사고 위험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감안하면서 최신의 경제학적 기법을 동원하여 핵발전 비용을 계산한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발생하는 핵발전의 이익은 과다 계산되고,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핵발전 비용은 과소 계산되는 경향이 있다. (249쪽)

이와 관련하여 2012년 환경운동연합에서 영광·고리·월성핵발전소 1호기를 대상으로 한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를 보면 매우 충격적이다. 영광에서의 거대사고(방사성물질 방출량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정도인 경우) 모의실험 결과, 바람이 서울 방향으로 불었을 때는 암 사망 55만 명, 피해값 267조 원으로 나왔다. 월성 1호기에서 거대사고가 날 때는 최대 90만 명의 인명피해와 1019조 원의 경제피해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이번 분석에서는 인명피해를 중심으로 인명피해의 경제적 환산가치와 피난 비용과 피난으로 인한 소득상실 비용만 경제적 피해로 산출했다. 핵발전소사고가 발생하기 전으로 복구하기 위한 방사능오염 제거작업(제염작업)이나 사고 수습비용, 폐로비용, 사고로 인해 발생한 방사성오염수나 폐기물 비용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비용이 포함된다면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 (307쪽)

핵발전의 문제는 핵사고와만 관련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압 송전선은 전국적으로 4만1545개에 달한다고 한다. 1999년 녹색연합이 내놓은, 신가평~신태백 구간 76만5천V 초고압 송전선로 조사 자료에 따르면, 317개의 송전탑 설치 과정에서 772개의 산사태가 일어났으며, 훼손 산림 규모만 잠실 주경기장 부지면적의 200배에 달하는 440여만제곱미터에 달했다. 밀양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도 심각하다. 생태계 훼손, 사회적 정의와 불평등의 문제 등이 두루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핵'운동은 단지 에너지원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인류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핵발전이 지닌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과정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핵발전이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괴물은 사라지겠지만, 또 다른 괴물이 사회적 약자와 미래세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33쪽)

덧붙이는 글 |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김기진 외 17인 지음,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엮음 /무명인 / 2014. 3. 11. / 408쪽 / 18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한권으로 꿰뚫는 탈핵 -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만든 교과서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엮음, 무명인(2014)


태그:#<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 #천주교창조보전연대, #무명인, #핵발전소사고, #탈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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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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