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적어도 3개 언어는 할 줄 알아야…"
인문계 취업이 최악이다. 봄 취업 시즌이 시작됐다지만 인문계 취업자들이 넘어야 할 문턱은 훨씬 높아졌다. 취업이 안 되니 창업의 문을 두드려 보는데 인문학도들에게 창업이 만만할 리 없다. 대책은 없고, 고민만 커진다. 일부 언론은 대안이랍시고 학교의 인문계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엉터리 진단까지 쏟아낸다. 답답한 노릇이다.

과연 인문계는 정원을 줄여야 할 정도로 앞날이 깜깜할까. 인문계 취업난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공계보다 더 넓은 취업문이 열릴 수도 있다. 면접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말이다.

“3개 언어쯤은 할 줄 압니다.”

지금은 출판인으로 변신한 1세대 벤처기업인 백일승 대표가 전해준 얘기다. 벤처를 경영하던 시절, 채용을 위해 인도에 갔다고 한다. 한 인문계 응시자가 불쑥 3개 언어를 한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인도 사람이니까 기본적으로 영어는 할 것이고, 그러면 어느 나라 말을 또 할 줄 아느냐고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런 게 아니고요, 프로그래밍 언어 세 가지를 할 줄 안다는 건데….”

C++언어, JAVA언어, HTML5언어…. 아마도 이런 식으로 답을 한 모양이다. 백 대표는 충격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인문학도가 소프트웨어 코딩 능력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니 말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한국에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인문계가 취업 전선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은 결코 인문계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업이 왜 인문학적 사고와 창의성의 소지자를 마다하겠는가. 문제는 세상이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인문계 교육은 여전히 하늘 천, 따 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서당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문학도가 기업에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을 뽑아도 적어도 2~3년간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재교육을 해야 한다. 기업으로선 이런 낭패가 없다.

생각해 보라. 펜과 잉크, 30㎝ 플라스틱자가 사무실에서 퇴출된 게 벌써 언제인가. 지금은 기획 업무도, 회계 업무도 컴퓨터로 처리한다. 심지어 영업도 컴퓨터로 하고, 모바일로 길거리에서 사무를 본다.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게 요즘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인문학도들은 컴퓨터를 모른다. 게임을 하고 워드나 엑셀을 조금 주무른다고 컴퓨터를 안다고 얘기해선 곤란하다. 컴퓨터를 안다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코딩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인문학도가 프로그래머가 됐다고 치자. 당연히 이공계 출신에 비해 프로그램에 다양성과 창의성이 덧칠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창의성이 아닌가. 꼭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다. 인문계 출신 직장인이 코딩 능력이 있다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해 현업에 적용할 수 있다.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지겠는가.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빅 데이터도 프로그래밍 언어로 꿰어야 보배로 만들 수 있는 구슬일 뿐이다. 어느 분야건 코딩을 모르면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코딩 능력은 새로운 문맹의 기준이다. 코딩 교육이 영어보다 중요하다거나, 코딩을 국어나 영어처럼 언어 영역에 포함시켜서 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라는 과정을 만들었다. 국문학 경영학 회계학 디자인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전공자들을 선발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육성하는 제도다. 1기 190명이 교육 과정을 마치고 며칠 전 현업에 배치됐다고 한다. 언제까지 기업들이 이런 교육 과정까지 세워 인재를 자체 공급해야 하는지.

인문계 취업난은 결국 세상이 바뀌는 줄 모르는 한심한 교육제도 탓이다. 20세기는 분할된 전문 지식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통합된 거대 지식의 시대다. 인문학도들을 통섭형 인재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교육개혁 없는 창조경제는 결코 불가능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