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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삼십이 되어서는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며(立), 사십이 되어서는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여 다른 길에 유혹되지 아니하였으며(不惑), 오십이 되어서는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 준 사명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며(知天命), 육십이 되어서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충고를 순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으며(耳順), 칠십이 되어서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所慾不踰矩)."

공자님 말씀이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공자 나이 칠십이다. 마음속의 욕심을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니! 이는 수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거듭될수록, 또 길어질수록 점점 더 새롭고 더욱 세찬 감탄과 숭배와 존경심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 위에서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저 광활한 우주속의 수많은 별들은 어떤 심오한 운행 질서를 가지고 있길래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또,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칸트의 깨달음이다. 80세까지 산 칸트도 말년에 공자와 같은 득도를 한 성인군자라 할 수 있다.

칸트는 독일 쾨니히스베르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평생 동안 떠나지 않았다. 칸트의 성격이 배어나는 대목이다. 칸트 하면 우리는 시계처럼 완벽한 그의 일과를 떠올린다. 5시에 하인 카우프만이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하면 그때부터 기상을 하여 완벽한 스케줄에 따라 하루 일과를 살아간다. 세시 반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하여 마을 사람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곤 하였다. 딱 한 번 늦은 적이 있는데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너무 심취하여 산책시간을 놓쳤다.

칸트는 일생도 그렇게 살았다. 그는 독신으로 80세까지 살았는데 노년을 대비하여 젊을 때부터 저축을 생활화하였다. 시간강사를 하면서 월급을 받으면 일단 50%는 먼저 저금을 한 다음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하였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그 대학을 나와 잠시 가정교사를 하다가 쾨니히스베르그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였다.

그의 나이 46세가 되어서야 철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물론 중간에 문학과 교수로 임용 요청이 들어왔으나 거절했다. 62세에는 쾨니히스베르그 대학 총장에까지 선출되는 영예를 누렸다. 일생도 완벽한 로드맵에 따라 살아간 것이다. 이러한 생활은 그의 도덕철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칸트는 자신의 감정에 의해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흄이 제시한 도덕의 원천은 감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였다. 흄이 제시한 것이 공감이라는 개념인데, 우리가 옳다고 하는 것은 '아! 그것은 좋은 것이야!' 라고 함께 느끼는 감정이 도덕의 기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칸트는 흄의 이 사회적 시인설에 대하여 11년간 고민했다. 과연 사회적으로 승인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도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숙고 끝에 내린 칸트의 결론은 도덕은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멸의 도덕법칙을 따라 행동할 때 그것이 곧 선(善)이라고 보았다. 그 도덕법칙이 바로 정언명령이다.

첫째 명령은,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이다. 우리의 행동이 항상 언제나 옳은 보편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르고 저기서 다르고 이때 다르고 저때 다르면 그것은 도덕이 아니다. 둘째 명령은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 이른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명령이다. 인간을 수단시하지 말아라! 칸트의 명령이다.

칸트를 공부하다 보면 두가지 어려운 개념이 나온다. 하나는 칸트가 인간을 이중적 존재로 보았다는 대목이고, 다른 하나는 칸트는 인간이 가진 자연적 경향성에 반대하였다는 대목이다.

칸트가 인간을 이중적 존재로 보았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는 말이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인간을 이중적 존재라고 본 것이다.

또 하나 자연적 경향성이라는 개념인데, 이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상인이 물건 가격을 제대로 받고 물건을 파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상인의 마음속에 물건 가격을 제대로 받아 신용을 쌓아서 장사를 더 잘하려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자연적 경향성이다. 칸트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행위이긴 하지만 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인의 정직한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오직 의무나 선의지에 따른 순수한 행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화술, 유머, 재치, 농담, 부드러움, 진리에의 겸손함 등" 칸트의 제자 요한 헤르더가 칸트를 묘사한 단어들이다. 157cm의 작은 체구의 칸트였지만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물론 인기와 결혼은 별개이지만. 80세까지 독신으로 산 칸트는 죽기 전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태그:#김재훈, #철학 칼럼, #인문학 교실,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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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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