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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거리 조형물에서도 볼 수 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국 거리 조형물에서도 볼 수 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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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중에는 알고 먹으면 약이 되지만 모르고 먹으면 도리어 독이 되는 게 있습니다. 책에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읽고 잘 새기면 지식도 쌓고 지혜도 얻을 수 있게 되지만, 자칫 잘못 새기면 엉터리 지식을 갖게 하거나 가치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와 <삼분사략(三分事略)>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사실에 허구적 내용을 부연하여 흥미 본위로 쓴 통속 소설입니다 

<삼국지연의>는 후한(後漢) 말에서 삼국시대까지의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분쟁을 배경으로 조조와 유비, 동탁,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 등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쉬운 문체와 거친 필법을 사용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소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허구를 전제로 하는 소설이니 읽는 이 또한 소설로만 새길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직 세상 물정이나 이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청소년들이 잘못 새기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는 책입니다. 역사와 허구에 대한 분별이 불분명한 청소년들에게 자칫 왜곡된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잘못된 동경과 평가가 인격형성에도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사의 잣대로 제대로 살펴보는 <평설 인물 삼국지>

<평설 인물 삼국지>┃지은이 김경한┃펴낸곳 (주)북오션┃2014.3.21┃1만 6000원
 <평설 인물 삼국지>┃지은이 김경한┃펴낸곳 (주)북오션┃2014.3.21┃1만 6000원
ⓒ (주)북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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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인물 삼국지>(지은이 김경한, 펴낸곳 (주)북오션)는 <삼국지연의> 등장인물들을 정사의 잣대에 맞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조조를 나쁘게만 평가하는 이유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면 왜 <삼국지 연의>는 조조에게 악평을 퍼부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삼국지연의>가 형성된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 <평설 인물 삼국지> 24쪽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힘 있는 자들이 남기는 기록입니다. 누군가를 희생시킴으로 정통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면 역사적 왜곡이나 날조쯤은 조금도 서슴지 않는 게 권력의 속성입니다. 중국이라고 해서, <삼국지연의>라고 해서 그 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에서 벗어날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삼국지의연>에서는 장비를 개백정 출신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합니다. 조조는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써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을 정도로 여자를 좋아하고, 관우는 살인범에서 공자와 함께 유일하게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삼국지> 최고의 용사는 장요이고, 공손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동소는 공문서위조의 달인이었고, 제갈량은 황제를 능가할 정도로 권력을 행사하던 권신이었습니다. 육손은 백전백승의 명장이었고, 방통은 유비에 있어 제일가는 책사였습니다. 

책에서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를 역사적 가늠자에 올려 다시금 가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이면(裏面)'과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허구적 사실을 '위(僞)-거짓말'로 정리해 설명하고 있어 자칫 혼동하거나 착각할 수도 있는 역사와 허구를 반듯하게 교정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환관세력의 무능·부패한 형태였다. 원래 환관 세력들은 탐욕이 많았다. 달리 추구할 만한 가치나 목표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궁중생활만 하다 보니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저 쥐어짜면 돈이 나오는 기계 정도로 여겼다."
- <평설 인물 삼국지> 68쪽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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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도 환관이 득세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관들의 득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찬성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게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자의건 타의건 박근혜 후보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박정희 품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박정희는 밀어붙이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식소사번 만기친람, 다른 말 같은 뜻

조조가 나라를 세우는데 정치참모 역할을 한 동소는 정치공작과 위조의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작금 우리나라 여론 한가운데 있는 공문서 조작과 그 조직이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던 제갈량이지만 직무태도는 식소사번(食小事煩), 식사하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바쁘게 일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식소사번이라는 사자성어는 제갈량이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의가 주변 사람들에게 "제갈량이 머지않아 죽겠구나"하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식소사번, 언뜻 열심히 일하는 것을 칭찬하는 좋은 말 같지만 그 속 뜻을 살펴보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언급하고 있는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빗대어 일컫고 있는 만기친람(萬機親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주부主簿 양과楊顆가 제갈량에게 충언했다.

"다스림에는 체계가 있어야 하고 위와 아래가 서로를 침범해서는 아니 됩니다. 집안일을 살펴보아도 어떤 이는 밭을 갈고 어떤 이는 밥을 지으며 닭이나 개, 소나 말도 각자 맡은 일이 있어야 집안일이 질서 있게 돌아가는 법입니다. 집주인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 들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 끝내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집주인의 지혜가 닭이나 개, 노비보다 못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가장으로서의 법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 <평설 인물 삼국지> 296쪽

북경 동인당에 모셔져 있는 화타 흉상. 화타는 조조를 치료하던 중 조조를 속이고 치료를 거부하다 결국 죽임을 당하고, 조조는 화타를 죽인 걸 후회한다.
 북경 동인당에 모셔져 있는 화타 흉상. 화타는 조조를 치료하던 중 조조를 속이고 치료를 거부하다 결국 죽임을 당하고, 조조는 화타를 죽인 걸 후회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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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 거리를 비추는 불빛들은 알록달록 화려하지만 그 불빛 이면에 드리운 사연은 구구절절하고, 홍등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우여곡절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국가는 본시 남의 것을 약탈해 자신의 후생을 극대화하려는 강도단에서 시작됐다"고 하고, "국가나 정권 핵심 구성원들의 본질은 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평설 인물 삼국지>를 통해 다시 가늠해 보는 삼국지 속 인물들을 어쩜 현재진행형 역사에 등장하는 권력자나 정치인들을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늠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걸음 더 다가가 들여다보는 역사의 이면, 거짓된 바를 바로 알아가는 허구를 통해 오도된 영웅의 신화를 벗겨가다 보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역사적 진실이며 시나브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역사적 평가라는 것을 아지랑이를 감지하는 듯한 느낌으로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평설 인물 삼국지> 지은이 김경한 / 펴낸곳 (주)북오션 / 2014.3.21. / 1만6000원



평설 인물 삼국지

김경한 지음, 북오션(2014)


태그:#평설 인물 삼국지, #김경한, # (주)북오션, #만기친람, #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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