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쓰는 작가들, 사라져가는 세계들

김별아 | 소설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입이 싸거나 귀가 얇거나 둘 다이거나, 결핍에 민감하고 외로움에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든 작가가 각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지극히 개별적이라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작가가 하나의 세계다. 모두 달라야 마땅하고 다를 수밖에 없는 삶이다. 그러하기에 백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 부를 파는 백 명의 작가가 절실하다. 한 개의 세계보다는 백 개의 세계가 풍요롭고 보배롭기 때문이다. 세계는 확장되는 가운데 깊어진다.

[낮은 목소리로]성명서 쓰는 작가들, 사라져가는 세계들

2013년 2분기를 기준으로 하루에 스물세 권에 달하는 소설이 출판되었다. 이천백두 개의 세계가 은밀하고 도도하게 열렸다. 하지만 그중에서 독자들과 폭넓게 만나는 기회를 가진 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최근 10년간 가계에서 지출한 ‘오락문화비(문화오락비가 아니다)’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 까닭이 자명하다. 여행과 캠핑 등을 비롯한 (문화라기보다) ‘오락’에 더 가까운 활동들에 대한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역시 불황인 건 매한가지이지만 공연과 강습 따위의 문화 서비스 소비도 어느 정도는 상승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서적 구입비는 해를 거듭해 줄어들어 무려 31퍼센트가 감소했다.

언젠가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매출’이 31퍼센트 감소하는 ‘산업’이 있다면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입 모아 대답했다.“당장 접어야지요!”

당장 접어야 마땅한 것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도 작가들은 글을 쓰고 출판사는 책을 펴낸다. 어찌어찌 소 뒷걸음질에 쥐를 잡는 식으로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으리라는 한탕주의도 없지야 않겠지만, 대부분은 떠밀려 묻혀 버릴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글이 있고 펴내지 않으면 안될 책이 있는 것이다.

동네 진입로 하나를 닦는 비용에 다름 아닌 40억원의 예산으로 한국 문학의 성과를 공유하고, 소외 지역과 계층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며, 출판과 창작을 진흥하고, 작가와 독자의 소통을 지원하는 거창한 사업을 조리차하던 ‘문학나눔’이 폐지된다는 소식에 문단 안팎이 들썩거린다. 보수와 진보(같은 걸 따지는 건 애당초 무의미하지만 어쨌거나 여러 부문에서 태도를 달리하던) 문학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원로(라고 지칭되지만 ‘선배’라고 읽겠다. 작가는 나이와 무관하게 영원한 ‘젊음’이어야 마땅하니까) 작가들까지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참으로 속속들이 들쑤셔 헤집는다. 통합이라는 이름의 통제가 그토록 소박한, 왜소하다시피 한 자구(自救)에까지 손을 뻗치는 것이다.

몇 해 전 문학나눔의 ‘우수문학도서’ 소설 부문 심의위원으로 오십여 편의 응모작 중 십여 편을 선정한 적이 있다. 푼수없는 깜냥에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감히 ‘심사’한다는 사실이 민망했지만,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엿보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뜻깊었던 것은 선정된 우수문학도서들이 독자와 만나는 방식이었다.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오락의 호객 소리에 빼앗긴 독자들을 직접 찾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도서 구입 예산이 부족해 책장이 비어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라곤 학원이 아니면 피시방밖에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 후 아카데미로, 마음을 다쳐 앓는 환자들을 위한 정신건강센터로, 어린 몸을 기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보육원으로…. 문학은 더 이상 맥없이 기다리지 않고 온몸을 밀어 찾아갔다. 그곳에서 벗이 되고 청량제가 되고 치유약이 되어 본디의 쓰임새로 알뜰히 쓰였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난해 말부터 ‘한국작가회의’가 발표한 성명서와 선언서 등이 십여 건을 넘어섰다.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는 작가 137인의 선언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것에 대한 항의를 시발로 밀양 송전탑 공사, 국가정보원 개혁,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일련의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 달에 한 건 이상 입장을 표명했다. 김수영의 시처럼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기를 기꺼워하며 보아주는 이 없이도 기어이 꽃을 피우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존재 가치인 문학이 그 모든 일들의 주동자이자 배후였다.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개판이다, 라고 말하자니 귀엽고 천진한 개들에게 미안한 지경이다. 하지만 이 괴악한 ‘복고(復古)’로 조성된 정국이 옛것처럼 공포로 느껴지기보다 차라리 혐오스럽고 짜증스러운 것을 보면 아무리 발악을 해도 세상은 달라졌고 시대는 돌이킬 수 없다. 모든 것이 극에 다다르면 튕겨져 되돌아가는 물극즉반(物極則反)의 이치를 곱씹는다. 짓밟고 짓이긴다고 없어지랴. 다만 시와 소설 대신 성명서를 써야 하는 작가들의 손끝과 그 갈피짬에 사라져가는 세계가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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