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방에 내다팔지 않을 만한 ‘멘토’책

김류미|‘어크로스’ 편집자

박홍규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

엘리엇 부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서점에 나가보면 ‘개나 소나’ 멘토질을 하는 시대다. ‘꼰대질’과 ‘멘토질’은 “내가 니 마음을 아는데”가 붙어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청년 세대를 위한 멘토서라면 크라잉넛에 대한 부러움으로 시작하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책도 어울릴 것이다.

왜 힘들게 살게 되었는지보다는 “힘들지, 힘내!”라고만 말하는 책이 팔린다. 저자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좋아할 듯한 그럴듯한 경구는 맥락이 없다. 문제를 꿰뚫는 통찰이나 삶을 살아낸 선배의 연륜, 인생에 대한 태도,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춘세대를 힘들게 만든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들이 아닐까. 열심히 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처럼 안정적이고 남들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은 소수다. 나머지 인생은 그런 그들이 만들어 파는 약을 팔아줘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2030 은근발랄]중고책방에 내다팔지 않을 만한 ‘멘토’책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진짜 멘토서와 같이 느껴지는 책이 몇 권 있었다. 하나는 ‘박홍규 교수의 조금만 더 천천히 행복하게 사는 법’인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다. 르네상스적인 인물로 불리는 저자분이지만 서른 이후를 위한 인생 조언이라기에 펼쳐보지 않았었다. 도서 담당 MD로 일할 때 받은 책이었는데 12시 넘어 퇴근하거나 더 늦게 퇴근하면 출근하는 아버지를 집 앞에서 마주쳤던 일상이라 책을 펼쳐볼 여유도 없었다.

마침내 그 회사를 때려치우고서야 이 책을 펼쳤는데, 저자의 슬로 라이프가 부럽고 그것을 위한 일상의 노력들이 참으로 멋져서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슈퍼맨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발견’했다면 노출도 잘해주고 많이 밀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못내 담당 영업자의 얼굴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지금도 이 책을 가까운 곳에 꽂아놓고 어떤 상상을 하며 산다.

[2030 은근발랄]중고책방에 내다팔지 않을 만한 ‘멘토’책

두 번째 책은 황당한 제목을 가진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다. 저자 이름은 ‘엘리엇 부’인데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일단 헷갈린다. 책을 펼치면 더 당황스러운데 왼쪽에는 사진이, 오른쪽에는 경구가 각기 한글과 영어로 적혀있다. 그런데 이게 가관이다. “인생에는 오직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분주한 자와 지친 자만이 있을 뿐이다-스콧 피츠제럴드”라고 써있고 그 아래 “나는 지친 자. 그래서 회사를 때려 치웠다-엘리엇 부” 이렇게 써있는 식이다.

“인생은 연극이다-플라톤”의 다음에는 “이왕이면 코미디-엘리엇 부”, “모든 예술의 본질은 기쁨을 나누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데일 카네기” 다음에는 “비즈니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엘리엇 부”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이 별을 ‘지구’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거의 바다로 이루어져있거늘-아서 C.클라크”에 대해서 쓴 사족(?)은 “삶보다 죽음이 더 길거늘. 이를 ‘인생’이라 부르는 것처럼-엘리엇 부”이다.

전문직 고소득자로 추정되는 저자의 시니컬함이 책 제목처럼 위트로 드러나는데 이게 진심이 담긴 위로로 느껴진다. 제목과 같은 이런 식의 자조적인 자신감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맥락이 떨어진 채 돌아다니는 명사들의 명언을 오늘의 언어로 해석하고 다른 관점을 던져보는 것이다. 실체 없는 권위를 해체하는 재밌는 방법이다.

청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안철수 전 후보는 무료로 ‘청춘 콘서트’라도 했는데 ‘청춘이라는 약’을 팔아 돈을 버신 분들은 청춘을 위한 장학재단 정도는 설립하시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을 해보며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다시 서가에 꽂아둔다. 적어도 이 두 권의 책은 중고 책방에 가져가 팔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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