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에서 본 서구의 힘읽음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서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아시아가 서구의 지배에 도전하는 21세기 초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중 하나다. 서구 중심적 시각을 대변하는 경제사학에서는 서구의 부상에 대해 개인적 창의력과 시장의 에너지가 발휘될 수 있는 소유권의 확립이나 법치국가의 전통 등 시장 친화적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적 접근법에서는 통일 제국을 장기간 유지한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의 정치적 분열이 국가 간 경쟁을 촉진시켜 과학기술이나 군사력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서구 비판적 시각은 막강한 군사력에 기초한 해외 침략과 수탈이 서구의 번영과 기타 지역의 빈곤을 초래했다는 입장이다.

[국제칼럼]잘츠부르크에서 본 서구의 힘

각각 시장과 국제경쟁, 제국주의 등을 강조하는 서로 다른 이론적 시각은 서구 지배 현상의 한 부분을 잘 설명하지만 해답은 역시 이들의 조합과 균형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정치학자로서 18~19세기 절정에 달한 서구 고전음악이 이러한 조합과 균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기원과 세속적 열정이 조합을 이루고, 격동적 감정은 수학적 표현으로 균형을 찾는 클래식. 작곡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연주자의 독창적 해석과 표현을 빌리는 조합, 그리고 마에스트로의 일사불란한 지휘를 따르는 오케스트라의 조직적 힘의 균형은 고전음악의 핵심이다. 교향곡이나 오페라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군대와 관료조직, 기업체 등을 통한 서구 문명의 세계 지배의 기제를 엿볼 수 있는 이유다.

지난달 말 일주일 동안 말로만 듣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고전음악 축제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클래식 애호가에게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공연을 집중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환상적이었다. 바르톨리가 부르는 헨델의 오페라와 바렌보임의 슈베르트 연주, 베를린 필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과 빈 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등을 연이어 듣는다는 것은 축구팬이 매일 월드컵 결승전을 보는 것과 같은 흥분과 기쁨의 절정이다. 놀라운 것은 공연이 거의 매번 만석이었고, 이런 리듬이 매년 7월과 8월에 매일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매년 축제에서 100번을 넘는 공연을 관람하는 두꺼운 층의 관람객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19세기 후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시작한 모차르트 축제는 1920년 보다 광범위한 고전음악 축제로 확대됐고 이제 100주년을 향한 마무리 단계에 있다. 빈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오스트리아에서 잘츠부르크는 예술과 축제의 도시로서 위상을 높였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주변국의 관객을 매년 유혹하는 유럽 소프트파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11년 작성된 ‘잘츠부르크 축제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축제 관객의 70% 이상은 음악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잘츠부르크를 찾는다. 또한 관객의 60%는 이미 열 번 이상 축제를 찾은 단골 손님이며, 평균 7일 정도 도시에 머물면서 2000유로 이상을 숙박과 음식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축제의 경제적 효과를 통해 거두는 세금은 1100만유로의 정부 지원금을 뛰어넘는다. 잘츠부르크 축제가 오스트리아 경제에 돌아오는 직간접 경제 가치는 2억7000만유로에 달한다.

유럽에서 잘츠부르크 축제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다. 잘츠부르크 관객은 바이로이트, 뮌헨, 바덴바덴 등 클래식 축제의 단골 고객이기도 하다. 여름 휴가철 유럽 전역에서는 수백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예술 축제가 열리면서 유럽 문화산업의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과시한다. 서구가 세계의 선두에 서게 된 이유, 그리고 그 리더십을 쉽게 내주지 않는 이유, 쇠퇴하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 문화적 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분석한 대로 종교적 열정이 자본주의라는 세속적 제도의 발전에 기여했듯이 예술에 대한 ‘비생산적’ 열정이 장기적으로 생산적 국제 리더십과 소득을 창출하는 현상을 잘츠부르크 모델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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