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하며 도시계획 정책 대안 책 ‘한반도 그랜드 비전’ 탈고한 건축가 김석철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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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세종시로 옮기고 국립대 통합본부 두자”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가 대표로 있는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에는 그가 중학생 시절부터 사다 모은 도자기와 그림들, 그리고 그가 세계 곳곳에서 설계한 도시와 건축물 사진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암 수술을 4차례나 받은 김 교수는 “연필로 그림도 그리고 원고도 쓰는데, 글을 쓰는 건 몹시 힘들지만 그릴 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가 대표로 있는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에는 그가 중학생 시절부터 사다 모은 도자기와 그림들, 그리고 그가 세계 곳곳에서 설계한 도시와 건축물 사진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암 수술을 4차례나 받은 김 교수는 “연필로 그림도 그리고 원고도 쓰는데, 글을 쓰는 건 몹시 힘들지만 그릴 땐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는 허기를 못 느낀다. 2002, 2005년 두 차례 암 수술로 식도 전체와 위의 70%를 제거했고 올해 5월 다시 두 차례에 걸친 수술에서 나머지 위를 거의 다 떼어냈다. 식도와 위의 기능은 장이 대신한다. 암세포는 깨끗이 제거했지만 식욕을 잃었다.

그러나 설계의 욕구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밥 때를 넘겨서까지 HB 연필로 그리고 또 그린다. 건축가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69·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의 최근 ‘설계 대상’은 바로 한반도였다. 북쪽으로는 나진-선봉부터 남쪽으로는 낙동강 하류까지, 한반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도시 설계다.

한반도 도시계획을 담은 책 ‘한반도 그랜드 비전’(창비)을 막 탈고한 김 교수를 23일 서울 대학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막역지우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3년 체제’를 내놓자 그 체제의 공간에 관한 제안으로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는 틈틈이 쓴 책이라고 했다. 여의도와 한강부터 중국 취푸(曲阜)와 중동의 신도시까지 ‘도시’를 설계해온 주인공답게 스케일이 컸다. 수시로 링거를 맞는 그는 말할수록 신이 났지만 기자는 그 스케일을 따라가느라 머리가 아팠다.

남북 지도자에 7가지 프로젝트 제안

―‘한반도 그랜드 비전’은 차기 정부를 염두에 둔 책인가요.

“책의 1장 1절이 ‘2013년 대통령이 해야 할 7가지 프로젝트’입니다. 차기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참고하라고 쓴 겁니다. 결정권자만이 상상력을 가질 수 있어요. 2인자는 상상력이 없지요.”

―다음 달 정부부처가 이전하는 세종신도시와 관련한 내용이 궁금합니다.

“지금 세종시는 과천이 이사한 것 정도밖에 안되지요. 저는 국회를 이전하고 박물관을 신축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문화박물관과 함께 한국이 자랑할 만한 기술을 보유한 분야인 항공, 자동차, 전자 관련 과학박물관을 짓는 겁니다. 국립대 통합본부를 두고요. 지역구 의원들 입장에서, 그리고 전국의 국립대 입장에서 세종시가 가운데 위치 아닙니까.”

[채널A 영상]‘17번째 광역단체’ 세종시 우여곡절 끝에 공식 출범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요.

“지금의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던 국회를 여의도로 옮긴 게 접니다. 1972년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설계했는데 당시 여의도는 비가 오면 강이 되는 습지였고 배를 타고 가야 했지요. 지금은 여의도에서도 요지에 국회가 들어서 있지 않습니까.”

김 교수는 7가지 프로젝트 가운데 최우선 순위는 지방권의 경제적 자립이라고 했다. ‘지방권’이란 수도권을 뺀 나머지 지역을 말하는데 이곳에 농수축산물 수출용 국제공항을 건설하자는 제안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가들이 위축된 가운데 오히려 농수축산물을 주력 수출품으로 삼자는 역발상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공항 설계 관련 원서들이 놓여 있었다.

“대구∼광주 고속도로와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만나는 곳에 합천댐을 수원으로 하는 농수축산 수출 전용 공항을 건설하는 겁니다. 전국의 우수한 농수축산물이 모두 이곳에 모여 보관, 분류, 포장을 거쳐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곳곳으로 보내지는 것이지요. 농업 보조금을 주기보다 그 돈으로 공항을 지어 네덜란드 튤립처럼 우리의 한우와 홍어도 수출하면 되는 거지요.”

―나머지 지방 공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머지 4개 공항은 국내선 전용으로 두면 됩니다. 동남권 신공항을 새로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고요.”

1인 창업 독려해 도시산업 일으켜야

―수도권은 어떻습니까.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 전략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요.

“예전엔 경인공단이 산업을 주도했지만 지금 수도권 산업은 무너졌습니다. 땅값이 올라 부(富)를 창출하던 공장이 밖으로 이전해가고 대신 아파트만 들어섰어요. 저는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인 인재가 일하는 1인 회사 창업을 독려해 도시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봅니다. 옛날 세운상가엔 명문대 출신들이 1인 회사를 만들어 삼성전자 같은 곳에 부품을 조달했어요. 뉴타운도 변두리에 아파트 짓듯 개발하지 말고 도시형 산업을 이루도록 했어야지요. 아파트 지하에 시장과 공장을 만들어 1인 회사를 설립하는 겁니다. 위층 입주자들은 지하의 회사를 운영하거나 임대해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겁니다.”

김 교수의 ‘한반도 그랜드 비전’은 북한 개발 제안으로 완성된다. 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대와 중국 칭화대에 초빙교수로 간 이유 중 하나도 북한의 도시계획 관련 자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설계의 결과물이 나진-선봉과 두만강 하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이다.

“통일이 되려면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절반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경학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곳입니다. 인접국인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고, 러시아는 천연가스 부국이지요. 나진-선봉과 두만강 하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두만강 하구쪽 북한 중국 러시아 3국의 영토가 겹치는 곳에 공항과 항만 시설을 만들어 개발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나머지 7개 프로젝트엔 ‘낙동강 상류에 있어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대구와 구미공단은 이전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설계하고 싶은건 미술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로도 그는 바쁘게 스케치를 한다. 암 투병으로 중단했던 예멘 아난 신도시와 아제르바이잔 바쿠 신도시 프로젝트, 그리고 제주 서귀포시에 짓고 있는 리조트 ‘힐링파크’를 마무리해야 한다.

“진통제와 수면제 약효가 사라지고 나면 너무 아파요. ‘신병을 비관해 자살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정도로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릴 땐 아픈 것도 잊어요. 설계가 마약인 셈이죠.”

그가 마지막으로 설계하고 싶은 건 도시가 아니라 미술관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석 달 치 용돈을 털어 조선 자기를 샀어요. 제 첫 컬렉션이죠. 지금까지 모아놓은 자기와 그림 등이 꽤 됩니다. 국보급도 몇 점 있어요. 제 눈에 뽑힌 한국 미술의 정수를 모아놓은 미술관을 짓고 싶습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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