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마을의 구심점임을 알려준 고양이 ‘듀이’

백승찬 기자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y Readmore Books)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양이였다. 1987년 11월 혹은 12월쯤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양이는 2006년 11월 위종양에 걸린 뒤 안락사했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 등 250여개 매체가 듀이의 부고를 실었다.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이하 <듀이>)는 2009년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됐다. 한국에서도 같은 해 나와 지금까지 20만부가 팔렸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청소년용, 어린이용 책도 따로 나와 한국에도 번역됐다. 이 고양이가 무슨 일을 했기에 수많은 독자들이 그 행적에 관심을 가진 걸까.

1988년 1월,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시 도서관의 사서 비키 마이런은 출근 직후 도서 반납함을 정리하다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반납함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생후 8주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다. 마이런은 직원과 시를 설득해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키우기로 한다. 듀이라는 이름은 도서관에서 사용되는 십진분류법 창안자의 이름을 땄다.

[베스트셀러 탐구]도서관이 마을의 구심점임을 알려준 고양이 ‘듀이’

듀이는 도서관, 그리고 스펜서시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당시 스펜서시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우울에 빠져 있었다. 소규모 자영농이 대규모 기업농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농부와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었다. 듀이는 “바닥 없는 수렁”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사람에 대해 타고난 사교성을 지닌 고양이 듀이는 책을 읽거나 이력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의 무릎팍에 뛰어올라 천연덕스럽게 잠을 청했다.

이 도서관에서는 인근 초·중등학교 특수교육반 아이들이 독서 수업을 받곤 했는데, 듀이는 이 수업 시간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듀이를 쓰다듬는 것조차 힘들어 했지만, 아무런 편견이 없는 듀이는 아이들의 발에 몸을 비비고 무릎 위에 뛰어오르며 시간을 보냈다.

<듀이>는 도서관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도서관 예산 증액안에 대해 시의회 의원들은 “우리 시에 필요한 건 일자리지 책이 아니”라고 반응한다. 마이런은 다시 답한다. “도서관은 창고가 아닙니다. 도서관은 마을의 중요한 구심점이에요. … 새로 포장한 도로도 물론 좋지만, 그걸로 우리 마을의 정신이 고양되는 건 아니거든요.” 듀이의 존재로 인해 시민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자, 의원들의 마음도 차츰 녹는다.

격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을 내고 있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대학은 이미 몰락했다”며 “이제 ‘대학 밖의 대학’에서 희망을 보는 시대이고, 도서관이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전문지식과 경험으로 돈을 버는 ‘엑스퍼트’가 아니라, 전문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상대의 요구에 맞게 제공하는 ‘프로페셔널’이 돼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스스로 사유하는 것이 프로페셔널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모임의 백화현 교사는 “도서관을 책에 연계시키는 것은 옛날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제 도서관은 책뿐 아니라 웹 자료도 구비하고,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되고, 지역에 대한 정보를 주는 곳이다. 현재 한국의 도서관은 책을 대출하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이는 도서관 기능의 10분의 1만 활용하는 것이라고 백 교사는 지적했다.

<듀이>의 인기는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애묘족(愛猫族)’의 증가세와도 관련 있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개를 키우는 사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었으나, 도시의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키우는 데 손이 덜 가는 고양이가 반려동물로서 인기를 높이고 있다. <듀이>를 번역한 배유정씨 역시 길고양이, 분양받은 고양이 등 6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그는 “개는 자주 산책과 목욕을 시켜줘야 하고 혼자 두면 외로움을 타지만, 고양이는 독립적이라서 아파트에 사는 도시 사람들이 키우기에 조금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듀이>는 도서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비키 마이런은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이혼한 후 복지 수당에 의존해 살아야 했고, 예상치 못한 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동시에 홀로 사춘기의 딸을 키웠다. 평탄하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가던 마이런은 듀이와의 교감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배씨는 “<듀이>는 고양이라는 매개를 통해 굴곡 많은 인생을 굉장한 정신력으로 극복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작은 생물에게 사람이 위로받고 마을 분위기가 밝아지고 공동체가 힘을 얻어나가는 과정이 독자들에게 위안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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