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아버지 뭐 하시니?’ 일상에서 만나는 인권침해

서영찬 기자

▲휴먼필…공선옥 외 지음 | 삶이보이는창 | 280쪽 | 1만3000원

장애인인 작가 방귀희는 대학 수석 졸업 후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패널로 나왔던 교수에게 “방귀희씨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라고 무심코 물었다. 이 질문에 교수는 “아마 안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또다른 패널이 “왜 결혼을 못 할 거라 생각하느냐”며 되받아쳤다. 생방송 도중 설전이 오갔다. 방귀희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생방송 추억은 오랫동안 씁쓸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시인 신동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날 담임은 “아버지 뭐 하시니?”라고 물었다. 신동호는 호기롭게 “통장님”이라 대답했다. 순간 담임의 반응은 싸늘했다. 어린 신동호는 그 알듯말듯한 어른의 냉담함이 상처로 남았다. 이후 그는 어른들이 “아버지 뭐 하시냐”고 물을 때마다 쥐구멍부터 찾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자리로 아이의 자리를 규정하는 어른들의 태도 앞에서 속절없이 주눅든 경우는 신동호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책과 삶]‘아버지 뭐 하시니?’ 일상에서 만나는 인권침해

<휴먼필>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인권 침해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 등 작가 54명의 일화가 생생하다. 이들이 말하는 인권은 거창하거나 딱딱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늘 접하지만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권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소설가 공선옥이 주장하는 ‘엄마젖 먹일 권리’는 인권 문제의 재발견이라 부를 만하다. 공선옥은 우리 사회가 모유를 먹이기 힘든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직장이나 공공장소에 수유시설이 부족하고 직장 여성에게 수유 시간을 허하지 않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선옥은 소젖에 비해 차별받는 엄마젖의 권리를 되찾자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족하다고 본다.

인권 문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차별은 어찌 보면 마음의 문제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차별의 장벽은 쉬이 허물어진다는 것이 <휴먼필>에 깔린 울림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자신을 ‘차별의 수혜자’라고 고백한다. 2녀1남의 ‘일남이’로 태어나 맛있고 좋은 것은 독차지했으며, 가부장으로, 또 젊은이로 살다보니 여성·노약자 차별의 가해자였고 그로 말미암아 차별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민규는 한국 남자들에게 “우리 함께 고백하고, 서로 사죄의 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가 박범신과 전성태는 같은 아시아인을 내려다보는 우리의 시선을 꼬집는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곧잘 “아빠 엄마랑 함께 살지 않는 사람 손들어 봐”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혼 가정 아이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다는 김형진의 지적도 공감간다. 김종광은 군대에서 일상화된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고, 김하기는 감옥에서 직접 체험한 ‘비녀꽂기’ 고문에 대한 체험을 털어놓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권 침해는 우리 삶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인권’에 실렸던 글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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