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동양 고전을 서양 인문학과 결부시켜, 대중의 눈높이로 창의적 해석

문학수 선임기자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신정근 지음 | 동아시아 | 376쪽 | 1만6500원

“고전의 높이를 낮추고 무게를 줄여 일반 대중도 대등한 지평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이를테면 <주역>과 <논어> 등은 경전에서 고전의 반열로, 그리고 다시 인문학의 자리로 내려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바라는 대중적 고전 읽기는 “보통 사람이 슈퍼마켓에서 가볍게 물건을 고르듯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자유롭게 읽고 거침없이 상상하자”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위험한 선동이라며 펄쩍 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 책의 저자 신정근은 이미 자신의 지론을 여러 권의 저서로 피력하고 실천해왔다. 그중에서도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를 대중적 동양철학자로서 깊이 각인시켰다.

[책과 삶]동양 고전을 서양 인문학과 결부시켜, 대중의 눈높이로 창의적 해석

이번에 펴낸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의 대중적 인지도를 반영한다. 저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동양 고전의 핵심”으로 25책을 골라 “팔경(八經), 오서(五書), 십이자(十二子)로 나눠” 그 내용을 살핀다. 팔경은 <역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악경> <이아> <효경>이고, 오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이다. 십이자는 <묵자> <노자> <장자> <순자> <손자> <한비자> <상군서> <전국책> <공손룡자> <양주> <추연>이다. <양주>와 <추연>은 책이 전하지 않으나 후대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다른 책 속에 남은 토막글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유학 중심성을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25책의 각각에 대해 저자는 200자 원고지 40~50장 분량으로 핵심을 간추리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주역>에서 자력 구원의 길을, <서경>에서 덕(德)의 나라를, <예기>에서는 상호 존중의 정신을, <춘추>에서는 역사 기술과 사후 심판을, <악경>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한 쾌감의 본능을, <효경>에서는 영생을 향한 인간(남성)의 욕망을 읽어낸다. ‘팔경’과 ‘오서’는 물론이거니와 ‘십이자’에 속하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묵자>에서 급진적 이상주의를, <노자>에서 모순 없는 차이의 창조를, <장자>에서는 변신 유희의 자유를, <한비자>에서는 멸사봉공의 이데올로기를, <공손룡자>에서는 개별자의 존엄성을 핵심으로 꺼내놓는다.

물론 이 대목에서 어떤 독자들은, 몇 해 전부터 소장학자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동양 고전에 대한 새롭고 창의적인 해석의 냄새를 감지할 만하다. 아울러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동양 고전의 주류적 체계에 균열을 내보려는 시도도 눈치챌 수 있을 듯하다. 저자의 그런 관점과 태도는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는 “원전주의에서의 탈피” “고정된 독법과 주석의 절대성에서 벗어날 것” 등의 언술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아울러 거기에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서양 고전이나 철학서, 사상서, 문학 작품들을 결부시켜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고 있다.

[책과 삶]동양 고전을 서양 인문학과 결부시켜, 대중의 눈높이로 창의적 해석

예컨대 한때 경(經)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했던 <악경>은 험한 시절을 만나 ‘불온서적’이 된다. 저자는 진제국 수립 이후 비판자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시황제가 “분서갱유는 물론이고 민간의 서적 제작과 유통 그리고 연구를 금지하는 법률을 반포”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악경>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실종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연결짓는다. “암울하고 억압적인 공간에서도 <악경>을 읽거나 읽고자 했던 사람들”은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델모, 베난티오 등과 같은 운명에 놓였으리라”는 얘기다.

또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묵자도 “세계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변혁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산당 선언>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와 관련지어 서술된다. 저자는 “묵자의 진정성은 당시에 금욕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널리 퍼지지 못했고, “오늘날에는 ‘모순적이다. 전체주의적이다’라는 비판”에 처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문필가적 재치는 중학교 문법시간에 배운 가정법을 통해 <장자>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만약 내가 새라면 당신에게 날아갈 텐데.” 이어서 저자는 “곤이 붕으로 바뀌는” 장자의 변신 놀이를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빗댄다. 물론 두 개의 변신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저자에 따르자면 장자의 변신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보이는 우울함이나 소외감 같은 어두운 구석이 없는 유쾌하며 즐거운 놀이”다. 저자는 고정불변의 가치를 전복하는 장자의 자유로운 변신에서 들뢰즈가 말한 “부정(否定)이 없는 차이”와 국가주의를 훌쩍 벗어나는 “혼란과 유희의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은 ‘단순한 2차 텍스트’로서의 위험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다이제스트다.

저자는 “천박하지 않고 심도 있으며,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가지면서도 균형있는 동양 고전 안내서”를 “아들에게 읽히고 싶어서” 썼다고 집필 계기를 밝힌다.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물건 고르기”는 공연한 너스레처럼 보인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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